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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해당 이종헌 Sep 06. 2019

하늘이 우는 소리를 들어라


현해당의 인문기행 21


지금처럼 제주도 여행이 보편화되기 전에는 많은 학교들이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갔다. 사시사철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외설악의 명승들과, 보기만 해도 가슴이 뻥 뚫릴 것 같은 일망무제의 동해바다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잠시나마 학업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통일전망대가 바로 지척에 있으니 안보교육은 덤이었다.


설악동 여관촌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하루는 통일전망대로, 또 하루는 외설악의 비선대와 흔들바위로, 그리고 마지막 날은 낙산사 경포대를 거쳐 학교로 돌아오는 2박 3일의 빡빡한 일정은 유난히 수학(修學)을 강조하시는 교장선생님의 뜻에 따른 것이었지만 그래도 밤에는 여행의 재미가 쏠쏠했다. 서른 명이 넘는 아이들이 한 방에 자면서 몰래 술병을 돌리기도 했고, 카세트테이프를 틀어놓고 리듬에 맞춰 신나게 고고를 추기도 했다.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 2층 창문에서 뛰어내리다 다리가 부러진 아이도 있었고 쓸 데 없이 여학교 숙소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붙잡혀 밤새 벌을 서는 친구들도 있었다. 벌써 30년도 더 전의 일이다.



그 땐 정말 설악산에 사람이 많았었다. 주차장에는 학생들을 싣고 온 관광버스가 줄을 이었고, 크고 작은 음식점과 기념품 가게에는 손님들이 넘쳐났다. 그 시절의 추억을 생각하며 30년 후, 다시 찾은 설악산에는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이 없다.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아무리 평일이고, 또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초여름이라지만 간간이 외국인 관광객들만 눈에 띌 뿐, 부지런히 권금성을 오르내리던 케이블카도 움직임이 없다. 사람이 없으니 좋은 점도 있다. 상인들은 장사가 안 돼서 울상이지만 사람이 많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사람이 없으니 비로소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산이건 바다건 간에 역시 사람이 없어야 그 진면목을 느낄 수 있나 보다.

계조암 석굴과 흔들바위.  조선후기 이곳을 찾은 수많은 선비들이 바위에 이름을 남겼다.. 


신흥사를 지나자 멀리 울산바위가 언뜻언뜻 그 위용을 드러낸다. 울산바위는 해발 873m의 바위산이다. 둘레가 4km에 달하며 모두 여섯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산의 형태가 울타리를 닮아 ‘울산[籬山]’이라고도 했고, 미시령을 넘어온 바람이 바위에 부딪혀 내는 소리가 하늘이 우는 소리 같다고 하여 우리말로 ‘울산’, 한자로 ‘천후산(天吼山)’이라고도 했다. 또 경상도 울산에 있던 바위가 설악산으로 옮겨왔다는 전설도 있다.


조물주가 금강산을 만들기 위해 전국에 있는 빼어난 봉우리들을 모두 불렀을 때, 경상도 울산에 있던 바위도 그 소식을 듣고 길을 나섰다. 그러나 워낙 덩치가 크고 몸이 무겁다 보니 정해진 기일을 넘기고 말았다. 그리하여 금강산의 주역이 되지 못한 울산바위는 체면 때문에 고향으로도 돌아가지 못하고 지금의 설악산 울산바위 자리에 눌러 앉고 말았다. 또 훗날, 울산 고을의 원님이 바위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며 신흥사 주지에게 과도한 세금을 물리자 절의 동자승이 이를 지혜롭게 해결한 이야기도 있다. 동자승이 울산바위는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쓸모없는 바위이니 세금은커녕 당장 울산으로 옮겨가라고 요구하자 교활한 울산 부사가, 바위를 재로 꼰 새끼로 묶어 주면 가져가겠다고 했다. 이에 동자승이 사람들에게 새끼를 꼬아 울산바위를 동여매게 하고 그 줄을 불로 태워 재로 꼰 새끼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신흥사 주지는 더 이상 세금을 물지 않게 되었다.

울산바위 전망대에서 본 설악산 전경.  설악산은 크게 내설악과, 외설악, 그리고 남부설악으로 나뉘며, 1970년 3월 24일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1979년 강원도에서 발간한 『향토의 전설』(최승순 외)에 실려 있는 이야기들이다. 신흥사를 지나면서는 문득, 공원 입구에서 문화재 관람료 3,500원을 징수당한 것이 혹시 옛날 신흥사 주지가 울산부사에게 당한 분풀이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혼자 웃었다. 계조암, 흔들바위를 지나 전망대에 오르자 앞으로는 권금성과 공룡능선, 대청봉, 소청봉 등의 봉우리가 한 눈에 들어오고, 뒤로는 울산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가파른 철제 계단을 오르며 힘들 때마다 멈춰 서서 올려다본 울산바위는 아무리 봐도 화가 이중섭의 ‘황소’ 그림을 빼닮았다. 분노 같기도 하고 절망 같기도 하고 체념 같기도 한 저 소의 형형한 눈빛을 보라. 뼈와 뼈 사이에서 느껴지는 근육질의 단단한 힘은 금방이라도 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설 것 같은 기세다. 예로부터 소는 민(民)의 상징이다. 민은 곧 하늘이니 저마다 위민(爲民)을 기치로 내세우는 이 땅의 위정자들이여, 부디 이곳 천후산에 와서 하늘의 울음소리에 귀 기울여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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