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 Oct 30. 2022

가족

가족환상곡 *8

나는 가난을 자초했다. 살아오면서 내가 부모님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은 “조금만 더 기다려 줘”였다. 가도 가도 길이 안 보일 땐 더 늦기 전에 다른 길로 가 보는 게 맞는지도 모른다. 놓을 줄도 알아야 잡을 수 있는 법인데, 나는 잡는 데만 혈안이 되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쳐 버렸다. 그놈의 꿈이 뭐라고, 곧 죽어도 음악을 해야 했던 나는 부모님의 ‘잘 되어 가냐’는 물음에 기다리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네버랜드를 떠나지 못한 피터 팬처럼 나는 음악의 끈을 놓지 못한 채 원대한 꿈만을 좇고 있었고, 그러는 동안 나의 부모님은 차가운 현실 속에서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고 있었다. 현실적 감각은 얻다 줘붜렸는지 이상적 삶에 대한 열망은 서서히 내 영혼을 갉아먹고 있었다. 


엄마의 머리카락은 말라붙은 소금처럼 허옇게 바래 버렸고 머리숱마저 몰라보게 줄어들었다. 늙음이 아무리 자연의 섭리라지만 피할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세월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원하고 싶다. 제발 못 본 척 지나가라고. 부모님의 인생 시계가 아주 천천히, 느리게 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차피 늙을 거라면 멋지고 근사하게 나이 들어갔으면 좋겠다.


언젠가 엄마가 핀란드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겨울을 겨울답게 보낼 수 있는 나라. 그곳에는 여름에 해가 지지 않는 백야, 겨울에 해가 뜨지 않는 극야가 존재한다고 한다. 한여름 밤은 11시까지도 훤한 백야가 이어진다는데 온종일 해가 떠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쉽게 잠들지 못 할 걸 알면서도 백야 현상을 체험해 보고 싶어진다. 순백의 어둠 속에서 빛나는 핀란드. 눈 덮인 울창한 자작나무 숲, 18만개의 눈부신 호수, 밤하늘을 수놓은 오로라. 이것만으로도 핀란드에 갈 이유는 충분하다. 혹시 아나. 루돌프 사슴이 끄는 썰매를 탄 산타클로스를 만날지. 눈의 여왕이 썰매를 타고 내 곁을 지나갈지. 보름달에 소원을 빌면 언젠가 핀란드에서도 오로라를 보며 소원을 빌 수 있지 않을까. 낭만을 꿈꾸며 무작정 떠나고 싶어진다. 이왕 갈 거 크리스마스에 간다면 대박일 텐데. 할머니도 같이 갈 수 있을까. 캠핑카를 끌고 다녀야 하나. 머릿속의 나는 이미 핀란드였다. 상상만으로도 벌써 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렸다. 핀란드에 발길이 닿는 순간 너무나 감격스러워 울음이 터질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턴가 습관처럼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촬영하는 버릇이 생겼다. 특히 가족과 있을 땐 더 발동이 걸린다. 사진으로는 오롯이 담을 수 없는 순간의 생생함이 좋다. 영상을 재생하면 그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빠져든다. 마치 그곳에 있는 것처럼 영상 속 표정, 목소리, 몸짓으로부터 그때의 감정이 느껴지고, 기억이 살아난다. 그래서 언제든 꺼내볼 요량으로 영상을 찍는다. 

 

거리를 걷다 보면 눈길을 끄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보면 우리 가족이 생각난다. 그 때문에 자연스레 오지랖을 부리기도 한다. 길모퉁이에 쪼그려 앉아 나물 파는 할머니를 보았다. 주름투성이의 앙상한 손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할매 생각에 나물 한가득 담은 검은 봉지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뭐 이렇게 많이 사 왔냐고 누가 다 먹을 거냐고 당연하게도 엄마에게 한 소리를 들었다. 한동안 식탁 위는 초록색 물결로 일렁였다. 그야말로 온통 나물 천지였다. 이건 뭐 토끼인지 사람인지 분간이 안 갔다. 다른 건 몰라도 초식 동물은 환장할 진수성찬임은 분명하다. 


회사 다닐 때의 일이었다. 그날은 유난히 추운 겨울날이었다. 이른 아침 출근하는 길에 회사 건물 앞에서 전단을 나눠주는 할머니를 발견했다. 얇은 옷을 입은 할머니는 맨손을 호호 불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전단을 나눠주고 있었다. 말할 것도 없이 우리 할매가 떠올랐다. 일단 사무실로 올라가 출근 체크를 하였다. 전단 할머니가 자꾸 눈에 밟혔던 나는 급히 편의점으로 가서 손난로, 장갑, 쌍화탕을 사 들고 나왔다. 일찍 출근한 덕에 근무 시작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나는 곧장 할머니에게 가서 “잠시 쉬다 오세요”라는 말과 함께 편의점 물건들이 든 검은 봉지를 건넸다. 할머니가 쌍화탕을 마시는 동안 나는 할머니 대신 사람들에게 전단을 나눠주었다. 손에 쥔 전단이 줄어들수록 마음 부자가 된 듯 든든하였다. 잠시라도 물질적 돈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진 기분이 들었다. 할머니의 겨울이 부디 춥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녀의 순박한 미소를 보고 있자니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곡식을 좋아하는 참새가 방앗간을 찾듯 책을 좋아하는 나는 서점을 자주 찾는다. 특히 자주 가는 서점이 있는데 그 근처에 ‘빅이슈’라는 잡지를 판매하는 아저씨가 있다. 그 아저씨를 보면 아빠가 생각난다. 아빠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아저씨는 추우나 더우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같이 같은 자리에서 빅이슈 잡지를 팔고 있었다. 빅이슈는 영국 런던에서 창간한 잡지다. 빅이슈란 이름은 굶주리고 무관심 속에 방치된 홈리스 문제가 모두의 이슈가 되기를 바라는 창립자의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노숙인들의 자립을 돕는 잡지다. 좋은 취지를 알게 된 뒤로는 서점 앞 빅이슈 아저씨를 통해 매달 한 권씩은 꼭 사게 되었다. 어떤 달은 똑같은 잡지를 두 권 사기도 했다. 그래도 표지 인물은 각각 달랐다. 


사실 빅이슈 잡지를 살 때마다 쭈뼛거린다. 힘이 돼 주고 싶은 마음과 달리 왠지 모르게 쑥스러웠다. 그래서 잡지를 사기 전 미리 카드를 준비하고 심호흡을 한 번 크게 내뱉은 후 아저씨에게 다가간다. 잡지 하나 사는 게 뭐가 그리 어렵다고 긴장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책장에 꽂혀 있는 빅이슈 잡지들을 볼 때마다 흐뭇함에 긴 여운이 남는다. 빅이슈 아저씨가 다시 길거리로 돌아가는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더불어 따스한 봄바람이 아저씨의 인생을 꽃피우기를 바란다.


이런 오지랖들이 내게는 일상다반사다. 나에게 있어 가족은 버티고 살아가는 힘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작으나마 힘이 되고 싶다. 착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강한 사람에게는 더없이 강하고 약한 사람에게는 한없이 약해만 진다. 이른바 강강약약인 사람이 바로 나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은 모르지만 적어도 강약약강만큼은 되지 않으려 한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그동안 부모님에게 받아 온 사랑을 소외된 사람들과 나누며 살고 싶다. 긴긴 시간 외롭고  상처 받았을 그 마음을 만져 주고 싶다. 내가 너무 이상주의인 건 아닌가 싶다가도 어느새 누군가를 돕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어쩔 수 없다. 아무래도 이건 유전이라 고치지 못할 것 같다. 타인의 고통과 어려움을 외면하지 못하는 태생적 오지랖 말이다. 가능하면 사람과 사람 틈에서 오래, 더 가까이서 마음껏 오지랖을 부리고 싶다. 




이전 07화 사랑한다는 흔한 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