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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국부랑자 Nov 04. 2019

독일 맥주, 99%는 맛없다

흔해빠진 고퀄리티 독일 맥주시장

독일 맥주 이야기, 그 지루한 이야기를 조금 비틀어보고자 한다. 맥주 이야기를 할 때 독일을 빼놓고 얘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독일 맥주에 관한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관점에서 얘기해볼까 한다.


먼저, 독일 맥주는 왜 유명할까?


2017년 기준 독일에는 1492개의 맥주 양조장이 있으며 82개의 양조장이 15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는 도시별로 최소 1개 이상의 전통적인 맥주 양조장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어딜 가나 그 지역의 유명한 맥주 브랜드와 개인 맥주 양조장이 존재한다. 더 나아가 이 맥주 양조장들은 여전히 "맥주 순수령"에 의거하여(정제수, 맥아, 홉만을 맥주의 재료로 허용한다는 15세기 말의 법령) 맥주를 만들고 있다. 그렇기에 보리 맛이 느껴지지 않는 물탄 맥주는 있을 수가 없다. 이것은 지금의 독일 맥주를 있게 한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다.


평준화되어버린 독일 맥주지도


독일 맥주의 맛은?


한국에서 카스와 하이트만 마셔오던 사람이 처음 독일 맥주를 먹었다고 가정해보자. 개인적으로는 독일 맥주가 대중화되기 전에 어떤 작은 펍에서 바이엔슈테판의 밀맥주 마신 것아 독일 맥주와의 첫 만남이었다. 첫인상은 매우 강렬했다. 화사한 꽃, 바나나, 이국적 스파이시 등의 향이 코를 덮쳤고 입안에 가득 찬 맥주는 처음 느껴보는 묵직한 질감을 선사했다. 정말 맛있다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그 이후로 파울라너, 슈무커 등 한국에 수입되던 독일 맥주에 한동안 빠져 살았다. 누가 마셨어도 맛있다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으리라 확신할 만큼 독일 맥주는 맥주 그 자체였다.


잘 만든 바이첸비어의 전형 rothaus


과거로 돌아간 나는 다시 독일 맥주를 찬양하고야 말았다. 하지만 난 왜 독일 맥주는 맛없다는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글을 쓰고 있을까.  독일에 와서 '비어 로드'를 걷고야 말리라는 나의 다짐은 왜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린 걸까?


그 이유는 바로 지금의 독일 맥주를 있게 한 맥주 순수령과 독일인들의 지독한 지역 맥주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다. 맥주 순수령은 맥주의 재료를 제한하여 다른 첨가물이 들어가지 못하게 막음으로써 맥주의 퀄리티를 향상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최소한 독일에서 만들어지는 맥주는 진짜 맥주다. 그 맥주의 맛이 사람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뿐. 그렇게 높아진 맥주의 퀄리티가 도대체 무엇이 문제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높아진 맥주의 퀄리티는 맥주의 다양성에 족쇄를 채워버린다. 그렇게 독일 맥주는 평준화되고 있다고 나는 감히 생각한다. 어느 수준 이상으로 사랑받은 맥주 양조장들은 큰 차이를 느끼기 힘들다. 어느 정도로 맛있고 늘 그렇듯 평범함이 밀려온다. 이것이 지금 현재 독일 맥주가 미국, 벨기에 등에 밀려나가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럼 맥주에 대한 자부심은 무엇이 문제일까? 그들은 자기네 맥주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도통 다른 맥주를 마셔볼 생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아, 참고로 여행에서의 새로운 맥주 체험은 제외하고 말하자. 아무튼 이들은 집에서는 늘 지역에서 생산되는, 적어도 그 근교에서 생산되는 맥주를 주로 소비한다. 그것도 박스로 잔뜩 사서 차에 싣고서 말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동네의 슈퍼에서는 한국 편의점보다 못한 맥주의 다양성에 마주하게 될 것이다. 지역맥주 2-3종과 독일 전역에서 활동하는 전국구 맥주 5-6종 그리고 수입맥주 4-5종이 보일 것이다. 이게 다라니? 충격적이기 짝이 없다. 편의점에만 가도 가히 수십 종류의 캔맥주가 진열되어있는 우리나라가 그리워지는 시점에 본인이 맥주 종주국인 독일에 있음 인지할 수 있다. 이렇듯 높은 맥주 소비량과 지나친 맥주 부심은 지역맥주를 유지하는 근간이 되지만 동시에 그 맥주를 지역에 가두고 발전을 저해하는 양날의 칼이다.


다름슈타트와 하이델베르크의 지역맥주들


이렇게 지역의 고인물이 되어버린 맥주가 바로 99%의 맛없는 독일 맥주이다. 비록 맛이 있다고 해도 그 맥주는 그 지역을 벗어날 확률이 매우 낮다. 그렇게 전 세계의 맥주 팬들에게 독일 맥주는 점차적으로 뻔한 맥주로 인식될 것이다. 비록 최근에 몇몇 대도시에서  젊은 양조자들 사이에서 힙한 스타일의 크래프트 비어가 유행하고는 있지만 소비층이 제한적이기에 대중적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나이지만 여전히 나는 독일 맥주를 사랑한다. 또한 1%의 독일 맥주는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99%가 맥주 순수령에 따라 지극히 평범한 고퀄리티 맥주를 만들고 있을 때 1%는 그 제약 속에서 위대한 창의성을 발휘한다. 오렌지 껍질을 넣어서 오렌지향이 나는 맥주는 맛있지만 당연한 것이다. 오렌지를 넣었으니까. 꽃잎을 넣어 화사한 꽃향이 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것은 예술이 아니라 생산인 것이다. 하지만 물, 맥아, 홉 이 세 가지의 단출한 재료들로 만들어내는 풍부한 과실 향, 화사한 꽃향, 향신료의 향과 맛들은 위대한 예술품이란 증거가 된다. 독일에도 가끔은 정말 꾸준한 노력으로 찾아다니면 그런 위대한 예술품을 만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독일 맥주의 저력, 지역의 작은 브루어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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