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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한 것은 오직 사랑뿐이었으므로

박완서 산문집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박완서 작가는 나이 마흔이 넘어 소설가로 등단한 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꾸준히 작품을 발표했다. '죽을 때까지 현역 작가로 남길 원했던' 그녀는 아들과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는 극한 슬픔과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도 문학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산문집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는 박완서 작가가 생전에 쓴 산문 660편 중에서 베스트 35편을 추려서 추모 10주기에 엮어 펴낸 것이다. 손으로 필사하다 보면 작가가 자주 쓰는 어휘들이 보인다. '여간' '공연히' '순전히' 등 소소하게 사용하는 단어들이 글을 맛깔스럽게 만든다. 작가가 마지막 문장을 어떤 식으로 끝맺는지도 산문마다 눈여겨볼 수 있다. 하루에 한 편씩 짬을 내어 필사하다 보면 박완서 작가만의 문체를 조금씩 느낄 수 있다.


올겨울도 많이 추웠지만 가끔 따스했고, 자주 우울했지만 어쩌다 행복하기도 했다. 올겨울의 희망도 뭐니 뭐니 해도 역시 봄이고, 봄을 믿을 수 있는 건 여기저기서 달콤하게 속삭이는 봄에의 약속 때문이 아니라 하늘의 섭리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가끔' '자주' '어쩌다' 등의 빈도부사가 한 문장에 연달아 등장하는데도 부담스럽지 않고 담백하다. 봄을 믿을 수 있는 건, 아무리 겨울이 혹독하고 추워도 때가 되면 봄이 온다는 불변의 진리, 하늘의 섭리에 대한 믿음 때문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지금 우리도 폭염 속 한여름을 지나고 있지만, 머지않아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고 단풍 드는 계절이 온다는 것을 안다. 그 또한 하늘의 섭리다.


산문집 속 '친절한 사람과의 소통'이라는 제목의 글에는 이런 구절도 나온다.


"혼자 걷는 게 좋은 것은 걷는 기쁨을 내 다리하고 오붓하게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다리를 나하고 분리시켜 아주 친한 남처럼 여기면서, 70년 동안 실어 나르고도 아직도 정정하게 내가 가고 싶은 데 데려다주고 마치 나무의 뿌리처럼 땅과 나를 연결시켜 주는 다리에게 감사하는 마음은 늘 내 가슴을 울렁거리게 한다. "


경기도 구리 근처에 집을 짓고 살면서 산길을 따라 홀로 산책하던 일상을 즐겼던 박완서 작가가 글 속에서 '걷는 기쁨'에 대해 표현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나 역시 올 한 해는 계단 오르기를 통해 단단한 허벅지 근육을 만들어 평지와 등산로를 걸을 때 내 다리와 오붓하게 걷는 기쁨을 나누고자 한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계단을 오른다.


한국문학의 가장 크고 따뜻한 이름, 박완서

진실하고 소박한 체험에서 우러나는 눈부신 삶의 문장들


자랑할 거라곤 지금도 습작기처럼 열심히하는 것밖에 없다. 잡문 하나를 쓰더라도, 허튼소리 안 하길, 정직하길, 조그만 진실이라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길, 매질하듯 다짐하며 쓰고 있지만, 열심히라는 것만으로 재능 부족을 은폐하지는 못할 것 같다. 작가가 될까 말까 하던 4년 전의 고민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채다. (p.202) '중년 여인의 허기증' 중에서


양말 깁기나 뜨개질만큼도 실용성이 없는 일. 누구를 위해 공헌하는 일도 아닌 일, 그러면서도 꼭 이 일에만은 내 전신을 던지고 싶은 일, 철저하게 이기적인 나만의 일인 소설 쓰기를 나는 꼭 한밤중 남편의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하고 싶다. 규칙적인 코 고는 소리가 있고, 알맞은 촉광의 전기스탠드가 있고, 그리고 쓰고 싶은 이야기가 술술 풀리기라도 할라치면 여왕님이 팔자를 바꾸재도 안 바꿀 것 같이 행복해진다. 오래 행복하고 싶다. 오래 너무 수다스럽지 않은, 너무 과묵하지 않은 이야기꾼이고 싶다. (p.206) 남편의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한 편 한 편의 에세이는 자연스레 필사를 부를 만큼 솔직하고 담백하다. 35편의 에세이를 하루 한편씩 느긋하게 필사하거나 낭독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생의 시련을 딛고, 문학으로 자신을 치유하면서 따뜻하고 환한 미소를 잃지 않았던 생전 박완서 작가의 모습이 글 속에 그대로 녹아있는 에세이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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