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 작가의 단편소설집 <애쓰지 않아도>에는 총 14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그 단편들 중에서 뽑은 논제로 2시간가량 독서토론을 했다. 토론 참여자들이 토론 말미에 이구동성으로 했던 말은 "그냥 혼자 책만 후루룩 읽고 덮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작가의 의도와 묵직한 메시지가 토론을 통해 선명하게 드러난 것 같다"라는 소감이었다. 토론 전과 후에 책에 대한 별점을 올린 분들도 있었다.
최은영 작가가 각각의 단편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가 토론을 통해 비로소 분명하게 와닿았다. 14편 모두 일관된 주제와 관점 (약자에 대한 위로와 공감. 폭력에 대한 저항)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메시지를 대놓고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자연스럽게 혹은 은밀하게 전달하는 작가의 탄탄한 내공이 느껴졌다.
작가는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 편견, 차별, 폭력적 행동에 대해 주인공들의 사연과 목소리를 빌어 자연스럽게 경각심을 느끼도록 한다. 호의를 갖고 하는 행동과 말들이 때로는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고, 두렵게 하고, 곤혹스럽게 할 수도 있음을 지적한다. 폭력인 줄도 모르고, 상처 주는 행동인 줄도 모르고, 세상 이치를 잘 안다는 이유로, 상대방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는 판단으로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고 주장하고 더 나아가 조언하는 일들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어그러진 관계, 엇나간 우정과 사랑이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기는지도 보여준다.
읽고 있자면, "그렇구나.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구나. 그 생각은 못 했구나. 다를 수 있겠구나."를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혼자 읽을 때는 그런 사실들이 그렇게 크게 와닿지 않았다. 밋밋하리 만치 의도가 숨겨져 있다. 토론에 참여했던 한 분은 "모래흙 속에서 진주를 다시 찾아낸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이 맛에 토론하는 거라는 뿌듯함이 일어났다. 생각의 확장, 사고의 변화, 고정관념을 깨고자 진일보한 느낌이다. 토론하기 좋은 책이다.
예를 들면, 단편 <손 편지>에는 주인공 미나가 지하철 공익광고물에 얼굴에 상처가 난 아이의 사진과 함께 "지금 맞고 자란 아이가 자라서 폭력 어른이 됩니다"라고 쓰인 광고를 보지 않으려고 일부러 환승이 어려운 위치로 자리를 옮기는 장면이 나온다. 가정 폭력을 경험하고 자란 주인공에게 그 광고는 "너의 미래는 지옥의 연장일 거라고 장담하는 어떤 목소리가 지하철 역사 안에서 울리는 것 같다"라고 말한다. 피해 아동을 두 번 죽이는 '생각 없는' 광고를 만든 사람의 불성실하고 게으른 아이디어에 미나는 분노한다. 독자들 역시 무심했음을 반성하게 한다.
레스토랑 점장이 진상 손님에게 언어폭력을 당하고 있는 아르바이트생 미나를 보고, 대신 주문을 받으며 상황을 처리해 준 뒤, 마감 시간에 다가와 “우리 아르바이트생들도 누군가의 귀한 딸이고 아들인데. 손님이 그러면 안 되지. 어딜 남의 집 귀한 자식한테.”라고 말하며 미나를 위로해 주자, 미나는 점장에게 "저 귀한 자식 아닌데요."라고 퉁명스럽게 받아친다. "귀한 자식이니 귀하게 대해야 한다고.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 할 근거가 가정에서 받는 대우에 있다면, 그럼 자신은 누구보다도 함부로 대해져도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 말이 더 아프게 다가왔다"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귀한 자식입니다"라는 말에 대해 주인공의 거부 반응을 보면서 나는 이런 관점으로 생각해 본 적이 전혀 없었기에 작가의 문제 제기와 남다른 시선이 놀라웠다. 일견 주인공이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 사람의 입장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더불어, 단편 <무급휴가>에서는 엄마의 사랑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자란 미리에게 친구 현주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어."라고 말하자 미리가 느꼈던 불쾌함과 가까운 친구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외로움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일관되게 상대방을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조언하는 것의 위험성을 깨닫게 한다.
또한, 단편 <호시절>에서는 누군가에게는 '호시절'로 기억되는 시기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회상하기 두려운 시절일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애쓰지 않아도>에 실린 단편을 소재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동안 "좋은 게 좋은 거다. 너 하나만 참으면 모두가 다 편해지잖아. 왜 유별나게 굴어서 분위기 싸~해지게 만드니. 대다수가 그렇다고 할 때는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등으로 개인의 권리나 자유, 생각을 억압하는 사회에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길들여져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살 수 없다고,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음도, 더불어 그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면 세대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질 수 있음을 생각해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작가는 <애쓰지 않아도> 짧은 단편들 속에 그런 여러가지 마음들을 담아냈다. 그런 마음을 조금이나마 살펴볼 수 있었던 독서토론이었다.
[최은영(작가)의 말]
최소한의 권리를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너희는 이미 충분히 가졌으며 더는 요구하지 말라고 말하는 이들을 본다. 불편하게 하지 말고 민폐 끼치지 말고 예쁘게 자기 의견을 피력하라는 이들을 본다. 누군가의 불편함이 조롱거리가 되는 모습을 본다. 더 노골적으로, 더 공적인 방식으로 약한 이들을 궁지로 몰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인간성의 기준점이 점점 더 내려가는 기분을 느낀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많은 것들이 나아질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힘을 더해야 한다.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