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나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는 25년 차 현직 고등학교 교사인 강지나 작가가 빈곤 가정에서 자란 여덟 명의 청(소)년들을 10여 년간 주기적으로 만나 인터뷰하면서 그들이 어떤 여정을 거쳐 어른으로 성장해 나가는지를 추적 관찰한 르포 보고서이다. 10년이라는 기간이 말해주듯 책 속에 실린 이야기들은 형식적이거나 관념적이지 않다. 생애사를 추적한 기록이라서 매우 생생하다. 아이들이 마음을 열고 삶을 이야기해 주었다는 점에 있어서 놀라운 책이다.
각 장은 아이들의 이야기가 실린 전반부와 작가의 분석과 의견이 반영된 후반부로 나뉜다. 전반부는 저자와 인터뷰 참여자들의 친밀한 관계를 반영하듯 솔직하고 담백한 어조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8명의 각기 다른 개성이 잘 드러나 있다. 후반부는 전반부 사례를 토대로 저자가 좀 더 객관적이고 분석적으로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 볼만한 이슈를 제기한다.
빈곤은 단순히 재화의 부족이 아니라 자유로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려는 역량의 박탈
-인도 경제학자 아마티아 센-
가난으로 인한 불화와 폭력이 빈번한 가정에서, 알코올 의존증이 있는 부모 밑에서, 3대에 걸쳐 우울증을 앓고 있는 가정에서, 자식의 진로에 무관심한 가정에서,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겪는 심리적 무력감은 건강한 관계 형성과 욕구 발현의 기회를 박탈하고, 빈곤 대물림으로 이어질 확률을 높인다. 저자는 경제학자 아마티아 센의 주장을 인용해 불평등한 사회구조가 고착되는 과정을 지적하고 있다.
경제학자로서 평생 불평등과 빈곤 문제를 연구해 온 아마티아 센은 『자유로서의 발전』에서 빈곤은 단순히 재화의 부족이 아니라 자유로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려는 역량의 박탈이라고 설명했다. 빈곤 상태로 인해 건강한 관계 형성과 욕구 발현의 기회가 수없이 좌절되고 박탈되면 사람들은 누구나 문제행동을 보인다. 빈곤 대물림은 이런 박탈의 경험이 대를 이어 축적되고 불평등한 사회구조로 고착되는 과정이다. (p.38)
'빈곤과 청소년, 10년의 기록'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는 우리 사회에서 대물림되고 있는 '빈곤'의 문제를 긴 호흡으로 관찰하고 분석하고 문제 제기한다. 빈곤의 대물림은 개인의 탓인가, 사회구조적 문제인가. 빈곤 가정의 청소년이 학교를 떠나 비행 청소년이 되거나, 혹은 위험하고 열악한 일자리로 내몰리는 동안 우리 사회는 무엇을 했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가난하다는 것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재화가 없음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많고 사회적 존재가 일상적으로 위협받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에 대처하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많이 소모해야 한다. 즉, 생존 자체에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들어가서 합리적 판단을 하고 미래 지향적 사고를 할 에너지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게 된다. 그래서 빈곤층이 전략적 사고나 내면의 강인한 힘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p.99)
청소년들이 삶에서 얻어낸 그 통찰과 지혜를 학문적으로 담아내고자 했다!
저자의 집필 의도
신자유주의 물결이 거세게 우리 사회를 휩쓸기 시작하면서 부의 양극화, 경쟁지상주의, 흙수저, 금수저, 빈곤의 대물림, 청년 빈곤 등의 용어들이 계속 등장해 왔다. 가난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은 없다. 누구도 부모를 선택할 수는 없다. 작가는 "성장하고 싶은 어린 생명이 가난이란 굴레와 가족으로 인해 어떤 영향을 받고 굴절되고 다시 일어서는지 그들의 목소리로 기록하고 싶었"다고 밝힌다. "세상에서 흔히 통용되는 가난에 대한 인식이나 이미지와 다른, 삶에 대한 통찰과 지혜가 있었"다고 언급하면서. 강지나 작가는 "청소년들이 삶에서 얻어낸 그 통찰과 지혜를 학문적으로 담아내고 싶었"다고 집필 의도를 설명했다.
8명 각자가 빈곤을 나름의 방식으로 극복하고자 애쓴 이야기
책에 소개된 여덟 명의 사례는 우여곡절 끝에 나름대로 어느 정도 가난을 극복하고 자리를 잡아가는 성장 이야기들이어서 안도감이 들었다. 주변에 그들을 지켜봐 주는 어른이나 기관이 어떤 형태로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들 스스로 자신을 돌보는 내면의 힘을 키웠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들은 “자신이 힘들 때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았듯이 자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원했”(p.8)다고 인터뷰에서 밝힌다. 그런 그들의 마음이 글 속에 잘 담겨 있어 뭉클하다.
우울을 견디는 삶, 소희 /바르고 성실한 청년, 영성/슈퍼 긍정의 에너지, 지현/우울한 청춘의 그늘, 연우/빈곤의 늪, 수정 /말 그대로 질풍노도, 현석 /미래 사업가, 우빈/눈에 띄지만 시선이 무서운, 혜주 (목차)
삶의 모습과 배경과 성향은 다르지만, 경제적 '빈곤'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8명의 청소년들이 가난에 각기 어떻게 대처했고, 어떤 전략으로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는지가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담담하게 기술되어 있다. 작가와 인터뷰대상 아이들 사이에 신뢰가 형성되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가난이 정말 개인이 게으르고 똑똑하지 못해서 생기는 일일까?
유독 우리 사회는 가난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이는 대한민국이 해방 이후 거쳐온 사회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급격한 산업화와 개발독재시대를 거치면서 과도한 경쟁체계, 승자독식을 묵인하는 사회가 되었고, 그 분위기에서 '가난'은 경쟁에 낙오되거나, 게으르고 똑똑하지 못해 생기는 일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은 것도 한국의 사회복지 제도가 발달하지 못하는데 영향을 미쳤다는 저자의 지적이 인상적이었다.
한국 사회는 100년 가까운 근현대사 동안 독립과 내전, 산업 부흥을 겪어왔다. 국가라는 공적 시스템이 약했기 때문에 그 격동기를 '가족-우리'라는 사적 공동체와 '우수한 인력 양성'으로 버텨온 내성이 있다. 덕분에 한국 사회는 현재와 같은 경제대국으로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었지만, 그 반대급부로 약자에 대한 공격, 과도한 경쟁체계, 승자독식에 관대한 사회가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우리 사회에서 '가난'은 사회적·구조적 문제가 아니라 약한 개인의 문제이며, 개인이 게으르고 똑똑하지 못해서 생기는 일이다. 한국의 사회복지 제도가 발달하지 못하고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p.95)
제목이 곧 메시지다.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해 던져야 할 단 하나의 물음
은유작가 <추천사>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라는 "책 제목이 곧 메시지다"라고 은유작가는 추천사에서 언급했다. 가난한 아이들이 어떤 과정을 거치며 어른이 되는지 그동안 우리 사회가 무관심했다면, 이제는 함께 살아가는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해 진지하게 묻고 문제점을 찾고 해답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이클 샌델 교수의 책 <공정하다는 착각>도 생각났다. '능력주의'를 강조하는 사회에서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나느냐, 어떤 환경에서 자라느냐에 따라 한 개인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너무도 다르다. 우리 사회는 그 차이가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 청소년 빈곤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구조적 문제다. 가난한 아이들이 가난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일찍부터 체념을 배우지 않도록 사회 제도적으로 지원체계를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저자는 '학교사회복지'의 강화를 제안한다. 학교마다 보건교사가 의무적으로 배치되듯이 사회복지사가 학교마다 상주해 아이들의 사회적 성장을 케어하고 지원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빈곤 대물림은 다음 세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출발선상에서부터 가혹한 짐을 지운다. 누구나 꿈꿀 권리, 사회복지체계를 적극 활용할 권리, 자아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신의 인생을 계획할 수 있는 성찰의 힘을 모든 청소년이 가질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함께 나서서 지원해야 함을 새삼 깨닫게 한 책이었다. 독서토론을 통해서도 다양한 사회적 쟁점에 대해 논의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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