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미순 장편소설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은 2023년 제1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다. '세계문학상'하면 개인적으로는 정유정 작가의 <내 심장을 쏴라>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 작품을 통해 처음 정유정 작가를 알게 되었고, 이후 정 작가의 책을 열심히 찾아가며 읽는 애독자가 되었다. 문미순 작가 역시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을 통해 처음 작품을 접했는데, 앞으로의 작품이 기대될 만큼 인상적이었다.
일곱 명의 세계문학상 심사위원(최원식, 강영숙, 박혜진, 은희경, 정유정, 정홍수, 하성란)은 “병든 부모를 돌보느라 정작 자신의 삶은 돌볼 수조차 없는 두 이웃의 비극을 그리는 이 작품은 자연주의 소설의 현대적 계승인 동시에 비관적 세계에 가하는 희망의 반격"이라며 "끔찍한 현실에서도 희망을 보여준 이 서슬 퍼렇고 온기 나는 작품을 올해의 세계문학상 수상작으로 정하는 데 이견은 없었다."라고 밝혔다. 작품을 읽다보면 심사평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겨울'의 추위가 뼛속 깊이 느껴지면서도 해동의 '봄'을 기대하게 하는 소설이다.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은 "오늘, 엄마가 돌아가셨다. 나만의 비밀이 시작되었다."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된다. 치매에 걸린 엄마를 간병하던 50대 여성 명주는 엄마가 집안에서 넘어지셔서 갑자기 돌아가시자, 그 엄마를 미라로 만들어 연금을 부정수령하며 살기로 결심한다. 방부처리를 했고 집안에 수시로 탈취제와 향수를 뿌려도 관에서는 조금씩 냄새가 나기 시작하고, 엄마와 친했던 사람들이 엄마의 행방에 관해 물어온다. 언제 탄로가 날지 알 수 없는조마조마한 상황이다. 임대 아파트 바로 옆집에는 스물여섯 살 청년 준성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다. 그의 형은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동남아로 사업한다고 떠났지만 연락 두절이다. 준성은 낮에는 아버지를 운동시키고, 밤에는 대리기사로 뛰면서 빚을 갚아나가지만, 계속되는 불운이 그를 절망으로 몰고 간다. 명주와 준성, 두 사람은 각각 부모 간병과 돌봄의 무게에 짓눌려 있다. 그들이 맞닥뜨린 가혹한 현실은 도무지 희망이라곤 없어 보인다. 그야말로 한 겨울 추위 속에 갇힌 꼴이다.
어차피 나라에서 보살펴줬어야 하는 거, 우리 스스로 챙겨 받는 것뿐?(p.203)
소설을 읽다 보면 고령화 사회의 그늘이 그대로 느껴진다. 중병에 걸린 부모 간병의 문제가 개인의 차원을 넘어 사회 전체의 시급한 이슈가 된 지 오래다. 주인공들의 행보는 부모의 죽음을 은폐하고 유예한 채, 사체 은닉, 연금 부정 수령이라는 무거운 소재까지 나아간다. 비윤리적이고 불법적인 상황이지만, 명주와 준성이 처한 상황이 워낙 기가 막히다 보니 독자들은 도덕적, 윤리적 딜레마에 빠진다. 쉽사리 그들에게 돌을 던지지 못한다. 국가와 사회의 돌봄 체계가 미치지 못하는 복지 사각지대에서 개인이 자구책을 모색하는 상황을 작가는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안락사 문제, 간병, 가족 돌봄, 원 가족의 해체, 대안적 공동체 재구성 등 소설은 독자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소설의 전반적인 구성(인물, 사건, 배경)이 촘촘하게 짜여 있어 소설 작법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도 좋은 참고가 될 작품이다. 묵직한 사회문제를 다루면서도 가독성이 좋아 순식간에 읽힌다. 중간중간 독자를 긴장시키는 스릴러 장치까지 있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선택논제 부분에서 공감과 비공감이 갈리면서 토론할 거리가 많았다. 결말이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를 두고도 독자에 따라 해석이 다를 수 있다. 독서토론하기 좋은 책이다. 선명한 주제의식과 치밀한 서사가 빛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