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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고 쓰는 윈디웬디 Dec 13. 2024

폭력의 반대편에 서는 일, 애도를 종결하지 않는 일

한강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소년이 온다>와 더불어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소감에서 밝힌 "문학을 읽고 쓰는 일은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의 반대편에 서는 일"이라고 한 말이 선명하게 드러난 작품이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비극적 상처였던 '제주 4.3'을 소재로 한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분위기는 직설적이거나 거칠지 않다. 오히려 '성근 눈'이 조용히 내려 대지를 덮어가듯 몽환적이고 상징적이다. 마치 한강 작가의 조용조용한 강연과 수상 소감을 소설로 듣는 듯하다. 문장 하나하나가 시적이고 섬세하다. 경하와 인선, 정심의 서사가 꿈과 현실, 육체와 영혼,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펼쳐진다. 꿈인지 생시인지 구별이 가지 않는 생경하고 독창적인 서술 방식이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퍼즐 조각을 맞춰가듯 '작별하지 않아야 할 대상'에게 다가간다. 그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경하가 편두통을 참아내듯, 인선이 봉합된 손가락의 고통을 견디듯, 독자들에게도 통증이 전이되는 순간이 온다.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에게도 사랑하는 가족이, 그리운 고향 산천이, 어린 시절 추억이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될 때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그들을 잊지 않겠다는 작가의 결연한 의지가 담긴 소설이다. 더불어 독자들에게도 함께 애도하자고 손 내미는 소설이다. 


<소년이 온다>와 맞닿아 있는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작별하지 않는다>의 주인공 경하는 K 시의 학살과 고문에 관한 책을 쓰고 난 뒤 "오랫동안 깊은 잠을 자지 못했으며 악몽과 생시가 불분명하게 뒤섞인 시기를 통과" 하고 있었다. 경하가 <소년이 온다>를 쓴 한강 작가 자신임을 암시한다. "여전히 제대로 먹지 못한다. 여전히 숨을 짧게 쉰다. 나를 떠난 사람들이 못 견뎌했던 방식으로 살고 있다. 아직도."라는 대목에서 힘든 과거사를 소재로 글을 쓰는 작가의 고통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2014년 5월에 출간된 <소년이 온다> 이후, 4년이 흐른 2018년에 본격적으로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기 시작하면서, '지난 사 년'이 '껍데기에서 몸을 꺼내 칼날 위를 전진하는 달팽이'같은 느낌이었다고 경하는 말한다.


오래된 여러 신앙들에서 말하는 것처럼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기록하는 거대한 거울과 같은 것이 천상이나 명부 어딘가에 존재한다면, 거기 담긴 나의 지난 사 년은 껍데기에서 몸을 꺼내 칼날 위를 전진하는 달팽이 같은 무엇이었을 것이다. 살고 싶어 하는 몸. 움푹 찔리고 베이는 몸. 뿌리치고 껴안고 매달리는 몸. 무릎 꿇는 몸. 애원하는 몸. 피인지 진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끝없이 새어 나오는 몸.

(p.13)


경하는 위경련을 동반한 편두통으로 먹은 것을 다 토해낼 정도로 겨우 버텨내고 있으면서도, 꿈속에서 본 4.3에 대한 프로젝트를 시작하려고 한다. 그 마음과 용기가 놀랍다. 또 다른 주인공 인선은 제주에서 경하와 함께 할 4.3 프로젝트 준비를 위해 목공 작업을 하다가 손가락 두 개가 잘려 나가 봉합 수술을 받는다. 봉합한 마디가 잘 이어지려면 삼 분 간격으로 바늘로 찔러 피를 흐르게 해야 했다. 그 고통이 극심해 차라리 손가락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였다고 말한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마치 봉합한 손가락 마디에 피를 다시 통하게 하는 작업을 연상시킨다. 봉인했던 역사의 아픈 과거를 되돌아보아 진심 어린 애도와 회복을 향해 나아가는 발걸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


첫 문장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로 시작된 소설은 매 순간 '눈'을 매개로 이어진다. 국숫집에서 인선이 경하에게 자신의 가출 경험과 죽을 뻔했던 사연을 들려주던 날도 '고운 소금 가루 같은 눈발'이 날렸다. 열여덟 살 무렵 가출한 인선이 축대에서 떨어진 날, 인선의 어머니는 꿈속에서 딸의 뺨에 내린 눈이 녹지 않아 딸이 죽은 줄로 알고 두려움에 휩싸인다. '눈'은 인선의 어머니가 열세 살 무렵, 학살 현장에서 부모의 시신을 찾아 헤매던 학교 운동장 시체들 위에도 내렸다. 그 현장에 내리던 눈과 현재 경하와 인선이 보고 있는 눈이 대기의 순환과 함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듯하다. 상처를 싸매주는 거즈처럼, 수의처럼 계속 눈발이 날린다.


끝까지 '작별'하지 않고자 했던 어머니, 정심


정심은 인선에게 꽁꽁 숨겨 왔던 가족의 아픈 과거사를 들려준다. 악몽을 꾸지 않기 위해 평생 요 아래 실톱을 깔고 자야 했던 어머니는 꿈을 꾸며 들고양이처럼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흐느껴 울었다. 인선이 우울한 집안 분위기에 진저리를 치면서 가출과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서야 처음으로 어머니는 평생 숨겨왔던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그만큼 제주 4.3은 봉인된 과거였고, 철저히 은폐된 고통이었다. 인선의 어머니, 정심의 가족사는 불행한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인선은 어머니를 세상에서 가장 나약한, '허깨비' 같은 사람이라고 여겼는데, 실상은 제주 유족회 그 어떤 회원보다 적극적으로 외삼촌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던 사람이었음을 평생 모아 온 신문 스크랩 자료를 보면서 알게 된다. 한강 작가가 <작별하지 않는다>의 진짜 주인공은 '정심'이라고 말한 이유를 알 수 있다.



현재와 과거, 산 자와 죽은 자, 육체와 영혼이 오버랩되는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는 과거와 현재, 현실과 환상, 산 자와 죽은 자, 육체와 영혼이 오버랩되는 장면이 다수 등장한다. 과거의 아픔을 돌아본다는 측면에서 필요한 장치였을 것 같다. 폭설을 뚫고 찾아갔으나 끝내 살리지 못한 앵무새 '아마'를 경하가 정성스레 마당에 묻어 주었는데, 그 새가 다시 나타난다. 꿈인지 생시인지 경하 스스로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아마'는 경하가 주는 물도 먹고 먹이도 먹고 경하의 손바닥 위로 올라왔다. 가칠가칠한 발이 살갗에 닿은 순간, 심장과 눈동자에 동시에 불이 당겨진 듯 추위가 가셨다. 부드러운 촉감을 잊지 않겠다고 경하는 다짐한다. 


서울 병원에 입원하고 있어야 할 인선 역시 제주 집에 나타난다. 손가락 어디에도 봉합수술의 흔적이 없는 말끔한 손이다. 두 사람은 함께 뜨거운 차를 마신다. 경하는 "인선이 혼으로 찾아왔다면 나는 살아 있고, 인선이 살아 있다면 내가 혼으로 찾아온 것일 텐데. 이 뜨거움이 동시에 우리 몸속에 번질 수 있나."라고 의아해한다. 과연 누가 혼으로 찾아온 걸까? 인선은 경하에게 프로젝트의 제목을 묻고, 경하는 <작별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경하의 꿈에서 시작되고 인선의 사전 준비로 진행된 프로젝트, 그 프로젝트가 두 사람을 끈끈하게 연결해 준다. 


뒤돌아본다는 것, 건져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의미?


인선과 경하가 취재여행을 다니던 무렵, 공교롭게도 방문했던 세 곳 모두 '전설의 바위'가 있었다. 마을의 재앙을 피해 달아날 수도 있었으나, 뒤를 돌아보다가 돌이 된 여인에 대한 전설이다. "산을 넘어갈 때까지 뒤돌아봐서는 안 된다"라고 했지만. "해일이나 폭우가 마을을 삼킬"때 그들은 예외 없이 뒤돌아보아 돌이 된다. 인선은 경하에게 "돌이 됐다고 했지, 죽었다는 건 아니"지 않냐면서, '허물'을 벗어놓고, 돌에서 빠져나간 여자가 물속으로 잠수해 건지고 싶은 사람을 살리려 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농담처럼 던진 말이지만 두 사람의 행보를 암시하는 의미심장한 대목이었다. 인선이 오랜 세월 4.3의 자료를 모으고 증인들을 만나고 학살의 현장을 방문했던 것도, 경하가 4.3에 대한 글을 쓰기로 결심하는 것도 어쩌면 돌이 된 여자처럼 뒤돌아보는 행위가 아니었을까? 자유롭게 살기 위해 모른척할 수도 있었으나, 그럴 수 없었노라고, 해일과 폭우를 뚫고 잠수를 해서라도 건져내고 싶은 이들에게 다가가야 했다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인선은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가슴 뻐근하게 느꼈던 순간을 회상하며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라고 말한다. 인선의 어머니가 평생 오빠의 뼈 한 조각이라도 찾고자 애쓴 것도, 아버지가 바닷가 마을 민가를 찾아가 젖먹이를 안고 있던 여인이 그 밤에 있었는지, 아기가 혹시 다음날 해변으로 밀려오진 않았는지 수소문했던 것도, '사랑'했기 때문에 받는 '고통'이었다. 어머니에 이어 인선이 참혹한 민간인 학살의 자료를 계속 조사했던 것도 어머니에 대한 사랑, 나아가 피해자들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을 것이다.


인선이 내적 갈등을 딛고 다시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결심하는 장면에 대한 묘사는 생생하고 아름답다. 한 편의 시처럼 섬세하다. 


"돌풍이 숲을 지나가고 있었어. 달을 삼켰다 뱉으며 구름들이 달리고, 별들이 쏟아질 듯 무더기로 빛나고, 모든 나무들이 뽑힐 듯 몸부림쳤어. 가지들이 불같이 일어서 날리고, 점퍼 속으로 풍선처럼 부푸는 바람이 거의 내 몸을 들어 올리려고 했어. 한 발씩 힘껏 땅을 디디고 그 바람을 가르며 걷던 한순간 생각했어. 그들이 왔구나."(p.318)


인선은 "절멸을 위해 죽인 아이들. 그 아이들을 생각하다 집을 나선 밤"에 죽임을 당한 그들이 바람과 함께 자신에게 수혈하듯 생명처럼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마침내 경하와 함께 <작별하지 않는다> 프로젝트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작가는 "이것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라고 말했는데, 그 마음이 독자들에게도 충분히 가닿았다고 생각한다. <소년이 온다>를 통해 5.18을, <작별하지 않는다>를 통해 4.3을 한국은 물론 전 세계 독자들에게 알릴 수 있었다. 문학의 힘이자 노벨문학상의 힘이 아닐 수 없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끝까지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편에 서겠다는 결심, 충분히 애도하고 기억하겠다는 결심, 다시는 폭력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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