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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전신간 Jun 25. 2023

약산성이라 순해서 좋다고요.

다이알 비누를 좋아하는 사람의 말도 들어봅시다.


1. 약산성? 아이셔 드셔보셔


레몬 사탕, 라임맛 소다, 아이셔... 혀 끝에 찌릿한 느낌과 함께 침이 살짝 고인다면, 당신은 약산성에 대해 본능적으로 이미 잘 알고 있다. 약한 산성을 말 그대로 약산성이라고 한다. 산성은 물에 녹았을 때 수소 이온을 내어놓는 성질을 말한다. pH는 이러한 성질의 세기를 표현하는 수치다. 약산성은 pH 3.5 ~ 5.5 정도에 해당한다. 


혀 좌우로는 수소 이온(H+)을 잘 느끼는 미뢰가 분포하고 있다.(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최근에는 '약산성이라서 저자극'이라는 말을 여느 화장품 광고에서든 흔하게 볼 수 있다. 화장품의 pH는 어차피 3에서 9 이내인데, 해당 범위 내에 들어오는 약산성 화장품을 특별히 저자극이라면서 광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약산성의 유행은 낮은 도수의 '순한' 소주의 유행과 같은 맥락일까?(출처: 뉴스 기사 첨부)




2. '약산성=저자극'상식?


'약산성은 저자극'이 통용되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일까?

약산성이라고 처음으로 광고하기 시작한 제품을 찾기 위해서, 국내 주요 검색 포털에서 조회 기간을 설정해서 검색해 보았다. 2017년 6월에 출시된 여성 청결제가 있다. pH 4.5의 약산성이라 저자극이라는 언급을 했다. 같은 시기 LG생건의 바디워시 또한 약산성 포뮬러로 저자극 세정이 특징이라고 소개하는 광고 기사를 냈다.


어쩌면 국내 약산성 바람의 시초가 되었을지 모르는 해외 브랜드 여성 청결제 제품(출처: 네이버 이미지 검색)


그리고 1년 뒤, 2018년도에는 국내 스킨케어 브랜드에서 여름을 맞아 pH 5.5의 약산성 클렌징 폼을 출시했다는 기사를 발견했다. 이때까지도 약산성을 강조한 제품들은 대개 세정용 제품이 주를 이뤘다. 이후 약산성 pH의 제품군은 점점 늘어나서, 지금은 토너와 로션 같은 보습용 제품도 약산성이라서 저자극이라 순한 제품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다양한 브랜드에서 저마다의 컨셉으로 약산성 토너를 판매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하단 기재)

국내에서 약산성이 저자극 제품의 요건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건 올해로 6년을 꽉 채웠다. 처음 언급된 이후로도 파라벤 프리, 탈크 프리 등 '마이너스 마케팅'과 함께 꾸준히 브랜드사에서 사용해 온 결과, 이제는 완전히 저자극을 강조하기 위한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3. 약산성이면  저자극일까


폼클렌저가 보편화되기 전 옛날, 비누를 쓰던 시절엔 누구나 약산성이 아니라 '약알칼리성'으로 세안을 했다. '거품을 충분히 낸 비누로 씻으면 뽀득거리고 개운해서 좋다'라고 하면, 이제는 우스갯소리로 '아저씨냐'라는 대꾸가 날아온다. 그만큼 요즘은 세정력이 비누만큼이나 강한 제품이나, 그런 제품을 사용하는 경우가 줄었기 때문일 것이다.

 

비누의 지방산염(초록색 표시)과 이온성 계면활성제(분홍색 표시)로 구성된 약염기성 폼클렌저(출처: 화해 및 구글 검색 후 편집)

비누의 pH는 8 이상, 10 언저리까지도 나온다. 순한 비누라는 '비둘기 마크의 그 비누'도 pH가 대략 7로, 약산성이 아니라 중성이다. 비누로 씻고 나면 뽀득거리는 이유는 비누의 세정 성분이 노폐물뿐만 아니라 유수분 전부를 씻어 없애서다.


아마 자극이라고 지목한 지점은 바로, 이 점일 것이다. 없애서 좋을 게 없는 유수분을 함께 씻어버리는 세정력. 그래서 저자극이라는 '약산성' 화장품이 탄생했다.


이온성 계면활성제로만 구성된 약산성 클렌저(출처: 화해 및 구글 이미지 검색 후 편집)


최초의 약산성 화장품은 몸을 씻을 때 쓰는 세정용 제품들이었다. 땀이나 피지, 말라붙은 각질 등 노폐물을 씻어내는 물건. 다만 이러한 주목적은 수행하되, 필요한 유수분까지도 싹 다 없앨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나온 지금의 저자극 제품은 세정 효과는 약알칼리성의 비누보다 떨어지지만, '당김 없이 순하게 마무리'한다고 광고하게 되었다.  




4. 피부의 pH 얼마일까


일반적으로 알려진 피부의 pH는 약 4.5 이상 5.5 이내의 범위를 가진다. 피부는 겹겹이 쌓인 약 1mm의 단백질과 지질의 층이며, 최외곽에는 피지가 각종 아미노산과 지방산, 땀 등과 섞여서 피부를 코팅하고 있다. 피부의 pH는 이 코팅막의 pH와도 같다.


피부의 pH는 나이에 따라 다르고, 같은 사람이라도 얼굴과 다리의 pH가 다르다. 또 피부 병변이 있거나 컨디션에 따라서도 조금씩 차이가 있어 특정 값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일례로 여성의 피부 pH는 월경 주기에 따라서도 변화한다.


노년에 접어들면 pH가 6에 가깝게 상승하는 변화가 뚜렷하다.(출처: 하단 기재)
남,녀의 연령별 pH 비교데이터. 남성보다 여성이 전 연령대에서 높게 나타났다. (출처: 하단 기재)

황체 형성기부터는 pH 5.5 수준의 약산성이던 피부가 호르몬에 의해 피지 분비가 늘어나면서 점차 5.0에 근접하게 하락하는데, P.acnes균, 바로 여드름균에겐 최적의 환경이다. 해당 시기에 여드름이 잘 생기는 것은 괜한 징크스가 아니라, pH와 연관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5. 토너도 약산성이 순하다고?


피부의 pH는 상당히 유동적으로서, 보통 세안 직후나 운동 직후에 피부의 pH는 증가한다. 그리고 약한 산성을 띠는 피지가 분비되면서 차츰 pH가 낮아진다. 이런 변화를 고려하면 세안용 제품뿐만 아니라, 스킨케어 제품에도 약산성 제품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약산성이라 순하다는 말은 여기서 적합하지 않다.  


피부의 pH보다 높은 pH의 화장품을 바르면 피부 본래의 pH에 영향을 주니까 안 좋은 게 아닐까? 보통의 스킨케어 제품은 pH 4에서 6, 7 정도로 출시되고 있다. 이들 제품은 중성보다 낮기 때문에 피부가 자연적인 약산성의 pH를 유지하는데 도움을 준다. 특별히 약산성이 아니어도 자극을 주지 않으며, 약산성이라서 자극이 덜할 것도 없다.




6. 민감한 당신을 한 시대의 선물


이전에는 약산성 범위에 해당하는 화장품이 없었을까? 아니, 있었다. 우리들 가운데 그 누구도 약산성인 화장품을 써본 사람이 없었을까? 아니, 있었다. 6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pH 3.8의 스킨은 있었을 것이고 pH 5.5의 크림도 있었다. 다만, 이 화장품의 pH만으로 제품을 저자극이라고, 피부 본연의 수치와 유사하다고 광고하는 게 소비자에게 먹힐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없었을 뿐이다.  


평소엔 '화장품의 수소 이온 농도가 뭐람.' 전혀 불편한 적 없이 살다가도 "약산성이 순한 거고 자극이 적대!"라는 말을 들으면, 그 말을 들은 이상, 결코 이전과 같이 무심하기란 어렵다. 가능하면 저자극 제품을 써서, 미래에 발생 가능한 불안 요소를 없애는 게 안전할 것 같은 조바심이 든다.


이제는 '클렌저=약산성'이라는 공식까지 기정 사실화된 것 같다.(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평소에 민감성 피부라면? 더더욱 '저자극' 키워드에 주목하게 된다. '안 따갑고 자극받은 적 없어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나는 못 느꼈지만 안 좋을 수 있다는 건가? 그럼 당연히 약산성만 쓰는 게 안전빵 아니야?' 소비자는 혼란스럽다. 하나의 품질 관리 요소에 지나지 않던 특성으로 마케팅 포인트를 창출하다니,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미지 출처

https://naver.me/G9swBL2U

https://blog.lotte.co.kr/35328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30904528&memberNo=25590338

-연령 pH 비교 데이터 논문:

https://doi.org/10.1046/j.0022-202x.2001.01399.x

-연령, 성별 pH 비교 데이터 논문:

https://doi.org/10.1111/ics.12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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