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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전신간 Nov 01. 2023

녹차 3,000ppm와 녹차수 0.3%

조삼모사라고 분개하지 말아요.


 화장품에 대해서 궁금한 게 많은 친구랑 것 저것 얘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친구는 인스타그램에서 광고하는 화장품을 몇 번 산 적이 있다.

그리고 녹차가 피지 조절에 좋고, 항균 작용도 있지 않냐며 최근에 녹차수가 3,000ppm이나 들은 수분 크림을 샀다고 했다.


순간 나는 이 친구가 3,000ppm은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나 궁금했다.


충동구매 욕구에 빠진 나의 표정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무엇만큼이나', 혹은 '무엇씩이나'와 같은 표현은 기대 이상으로 어떠하였다는 뜻이다. 아니나 다를까, 친구는 ppm의 단위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ppm은 흔하게 접하는 퍼센티지(%)로 환산하면 0.0001%에 해당한다고 알려줬더니 "헐, 그런 거였어?"라고 즉각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참고: 녹차수, 녹차(Camellia Sinensis (Green Tea) Leaf Water)는 같고, 녹차추출물은 다르다(Camellia Sinensis (Green Tea) Leaf Extract).



양의 문제가 아니다


사실 단위를 ppm으로 바꾸면 숫자는 더 커지기 때문에 광고하기에는 좋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함량은 소비자의 지갑을 여는 키워드 중 하나인 '가성비'를 위한 한 가지 기준이기 때문이다. 

같은 가격이면 좋은 성분이 더 많이 들은 제품을 사는 게 가성비 면에서 더 똑똑한 소비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녹차가 짙은 갈색빛을 띨 때까지 진하게 우려내면 동일한 잎으로 3분 우려낸 녹차보다는 탄닌도 많아서 맛이 떫고, 피부에 좋다는 EGCG 등의 성분도 더 많다.

진하게 우린 녹찻물은 피부를 더 맑게 하고 트러블에도 좋을 수 있다. 그러나 농도나 양이 많아져서 성분의 절대적인 양이 더 많아지더라도, 


효과 또한 반드시 양과 비례하지는 않는다.



한계를 넘은 노오력


인풋 아웃풋이 비례하지 않는다고, 상사가 직관적으로 부하 직원의 성실성을 의심하는 건 불합리하다. '노오력'을 하라고 닦달하면 어그러지기 마련이다. 실제로 자연에서도 자원을 많이 투입한다고 해서, 그에 상응하는 일대일의 양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부화한 수많은 새끼 바다거북 중 살아남는 개체는 몇 없듯이, 강하게 몰아붙인들 능률이 늘어나지는 않는다.


미카엘리스-멘텐 효소기질반응속도론이라는 게 있다. 이는 효소의 반응 속도는 반응 물질의 양을 증가시켜도 어느 시점에서는 속도가 더 늘어나지 않고 일정하다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내가 음식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10이고, 위장에 들어온 음식도 숫자로 표현해 보자. 공복 상태는 소화 능력 10 그대로, 음식은 0이다.  


Michaelis-Menten 그래프는 가장 잘 알려진 효소-기질 반응 속도론이다.


만일 식사를 해서 음식이 7만큼 들어오면 소화능력은 7만큼 할애되고, 3이 남아있다. 여기에 후식을 3만큼 먹어서 소화능력이 10 모두 사용하면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 상태로는 더 이상의 음식을 먹어도 소화능력이 10에서 11, 내지는 15가 되지 않는다. 그대로 10이다.


비슷하게, 피부에 아무리 값지고 좋은 성분을 많이 발라도 피부가 유용하게 쓸 능력 내지 가능성은 정해져 있다. 그러니 무조건 양의 논리로 가성비를 따지는 것은 오히려 가성비의 함정에 빠지는 일이 된다.   



다다익선은 옛말


과유불급과는 또 다른데, 적당량이 최선이라는 결론은 유사하지만 과유불급은 많은 것이 외려 안 좋게 돌아올 수 있다는 뜻이다.


반면 최대 반응 한계는 인풋과 아웃풋의 관계에서 인풋이 상한선을 넘으면 아웃풋은 더 이상 늘어나지 않고 현재 수준을 유지한다는 말이고,  결과가 좋고 나쁨에 대한 것까지 함의하지는 않는다.


피부에 좋은 성분을 많이 넣어서 가격은 비싼데 그 양이 최대 반응 한계 이상으로 많아서, 효과가 양과 비례하지 않는 화장품이 과연 가성비가 있을까?


오히려 상한선 수준으로 함유하면서 가격이 조금 더 저렴한 제품이 훨씬 가성비 있는 제품이 아닐까? 행여나, 갓심비로 구매한 제품이라면 논외로 해야 할는지도 모르겠다.



 

가성비의 재정의


피부에 발랐을 때의 효용성을 따질 때는 일단 단위는 나중에 고려한다. 단위는 내가 사려는 제품에 들었다는 성분의 절대적인 양을 파악할 때나 필요하다. 우선 3,000ppm이든 0.3%이든 단위를 환산을 해본다. 그리고 그 양을 가늠했으면, 그 다음에야 이 성분이 효과를 나타내는 최고 농도인지를 따져본다.


이는 상세 페이지에서 언급한 실험의 수치나 논문을 찾아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평소 연구 논문을 접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러한 일들이 복잡하고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제품이 너무 사고 싶지만, 과하게 비싸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포기하거나, 눈 딱 감고 사거나. 


텅장은 한 순간이다. 그런데, 돈이 가득한 적이 있다고?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그래도 어떤 이들은 가능한 합리적인 소비를 하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깊게 파고 들어본다. 다만 '사고 싶다'라는 쪽으로 이미 마음이 많이 기울었다면, 편향적 심리가 작용함에 따라 결국 사는 것이 유익하다는 근거를 더 많이 찾게  지도 모른다.


아무튼 구매했다면 후회 없이 눈에든 얼굴에든, 혹시 트러블이 난다면 심지어 발꿈치에라도! 잘 사용하길 바란다.



팩트로 내 기대를 부수지 마


친구는 아까 그 제품이 가격이 과하게 비싸진 않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구매했다고 한다. 녹차수의 함량에 대해 별로 개의치 않는다니 나로서는 다소 미안함을 덜 수 있어 다행이었다. 중요한 점은 그는 자신에게 특별하진 않아도 작은 선물을 했다.


여기서 선물이란 화장품 자체를 말하는 게 아니다. 제품을 사서 확연히 좋아질 미래의 피부, 그 또한 선물이다. 그러나 진짜 선물은 구매를 한 그 순간에 마음속에서 자라난 기대와 설렘이다.


연한 파스텔톤 용기와 순백의 크림은 소비자에게 부드럽고 순수한 이미지를 전달한다.(출처: 하단 기재)


'나도 이 화장품을 쓰면, 모델의 순수하고 건강한 이미지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 바로 선물이다. 현실적으로 그 모델이 될 수는 없지만  무엇보다도 큰 행복감은 제품을 구매함으로써 화장품 브랜드와 제품이 갖는 이미지를 소유하는 데에서 온다.


브랜드와 제품이 가진 아름답고, 건강한 이미지가 내 것이 되리라는 희망과 기대를 선물받은 것이다.


선물은 남 아닌 나에게 줄 때도 기분이 좋다. (출처: 기사 검색, 하단 기재)


화장품은 미용 용품으로서의 활용뿐만 아니라, 상품 자체만으로도 특유의 향과 브랜드로서 각양각색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그래서 받는 이에게 기대감을 '선사'하기 위한 선물로서는 아주 적당한 상품이다.


사실, 물건이 대단치 않은 휴지나 생수 등의 일상 용품일지라도 나에게 도착할 무언가를 기다리는 마음은 그 자체만으로도 즐겁다. 택배를 뜯어보거나 상자를 열어보는 이른바 '언박싱'이 흥미로운 이유다.






이미지, 기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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