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브랜드, 매장을 운영하는 분 피부 관리실의 고객 응대부터 서비스 전반 과정이 궁금하신 분 화장품 연구원이 피부 관리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뭔지 궁금하신 분 고객 응대 서비스 직무에 대한 한 개인의 관점이 궁금하신 분
가게에 오는 과정부터 고객 경험의 시작
첫 관리실 방문 6개월 만에, 피부 관리 서비스 분야의 현황을 다시 알아볼 겸 새로운 피부 관리실을 다녀왔다. 관리실은 번화가의 주상복합 오피스텔 3층에 있었다. 접근성은 좋은 편이었지만 음식점과 약국, 카페들이 즐비한 곳이라 찾아가는 길에 마주한 풍경들이 살짝 부산스럽고 어수선했다.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한다면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3층까지 엘리베이터로 올라갔다.
입구는 투명한 자동 유리문으로, 내부는 창문이 없었고 카운터가 문 우측에 위치하고 있었다. 카운터 맞은편, 흰색의 폴리에스테르 털 러그가 깔린 대기좌석에 앉았다. 정문 맞은편으로는 네일과 속눈썹 종목을 한 번에 하시느라 페디용 의자 2개와 계단 구조물이 있었고, 우측에는 속눈썹 연장용 베드가 있었다. 아주 작은 공간은 아니었지만 들어선 집기들이 많아서 알차게 활용하고 계시는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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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님은 아무나 뵐 수 없어
일요일이었는데 원장님을 포함해서 총 두 분이 일하고 계셨다. 원장님은 내 이름을 확인한 뒤 다른 직원에게 나를 인계했다. 원장님께서 해주시는 줄 알았는데 조금 기대감이 떨어졌다. 하지만 특별한 선호의 이유는 원장님이라 경력이 더 있을 것이란 생각뿐, 그렇게 아쉬울 건 없었다.
스킨케어 실장님은 나를 책상 앞으로 안내했다. 4시가 훨씬 넘은 시간, 그가 들고 앉은 아이스아메리카노가 가득 차서 찰랑거리는 걸 보니 점심 식사가 늦었던 걸까, 바빴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가 문진표를 주며 내가 느끼는 대로 체크하라고 했다. 피부 타입, 피부 고민, 특별한 약물 복용 또는 시술 이력, 그 외 나이 같은 것들이 적혀있었다. 다 작성한 뒤 책상에 놓인 피부 분석용 기기로 얼굴 사진을 찍었다. 사내 임상 테스트에서도 사용하는 장비라 별로 새롭진 않았다.
얼굴 촬영 시 살짝 비틀어져 찍혔을 거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는 중이다.
당사자보다 더 놀라신 듯
측정 결과 유수분, 색소침착도, 피부 주름, 모공 크기, 얼굴 대칭 비교, 피부층 분석 등 다양한 항목을 알 수 있었다. 양쪽 뺨과 턱, 코, 이마로 총 5개 부위만 분석했는데 가장 흥미롭고 충격적이었던 항목은 피부층 분석이었다. 나는 각질층이 정말 거의 없었다.
등고선 그래프는 높낮이에 따라 그라데이션으로 표현되는 3차원 이미지다. 관리실에서 촬영한 이미지에서는 파란색이 두꺼운 피부, 반대로 빨간색은 얇고 낮은 피부다. 양쪽 뺨과 코 부위를 보니 죄다 빨간색, 주황색이었다.
실장님은 "엇... 어어... 음, 고객님은... 각질층이 너무 얇으세요."라며 살짝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코에 그렇게 블랙헤드가 수시로 생기는 이유가 각질이 잘 쌓여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절대적으로 피지 분비량이 너무 많은 모양이다.
위 그래프처럼 아래로 갈수록 붉은색, 위로 갈수록 파란색으로 나타났다. (출처:하단 기재)
피부는 여러 겹으로 되어있는데, 각질층은 혈관이 없어서 피가 나지야 않지만 외부 방어막이 얇다는 말이 되니까 정상 두께의 각질층에 비해 여러가지로 불리하고 건강하지 못한 피부 상태에 해당한다. 각질 패드나 약산성 앰플을 덜 사용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철면피의 반대말
몇 년 전 날 향한 칭찬에 쑥스러워 손사래를 치는데, "얼굴 빨개지는 것 좀 봐, 하하."라는 말이 잇따르기 시작했다. 원체 얼굴색이 변하는 일이 없었는데 그때 피부가 얇아진 걸 직감했다. 그런데 실제로 그랬다니.
또 최근에는 피부색이 노랗단 말을 많이 듣는데 이 또한 피부가 얇으니 자외선으로 얼굴이 쉽게 타서 톤이 어두워진 탓도 있을 것 같다. 나도 피부 분야를 공부하고 화장품 분야에서 일하니 이 정도 유추를 한다. 재밌다. 건강을 위하여 좀 더 낯짝 두껍게(?) 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윗 층인 epidermis(표피) 중에서도, 또 가장 윗 층이 각질층이다.(출처: 구글 검색)
스몰토크는 힘들어
나는 미용실에서도 머리를 감겨주시는 스텝은 물론 디자이너의 감정을 엄청 신경 쓴다. 손님이라서 그냥 받으면 그만이 아니라,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 사람이라서 염두에 두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전에 내 표정을 살피는 디자이너가 있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나는 말을 안 하는 게 편하다. 직원분들이 나를 신경 쓰는 게 신경 쓰여서 노력하는 것뿐이다. 참고로 내가 직업 상 스몰토크를 해야만 한다면 그 일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미용실을 가면 피곤한 날은 미리 "저 오늘 너무 피곤해서 눈 좀 감고 있어도 될까요?"라고 먼저 말한다. 그러지 않고 기운이 좀 있거나, 머리 모양에 대해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싶은 날이면 머릿결 관리, 고데기 온도 같은 걸 물어보며 계속 말을 건다. 이번 피부 관리실에서도 베드에 누워 가만있을 수 없어서, 무슨 얘기를 꺼낼까 고민하다가 마침 앰플을 발라주고 계시던 차라서 머릿속에 어떤 제품이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