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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전신간 Jun 08. 2024

깐 달걀 피부는 사실 까진 피부다.

Exfoliating이 '정리'라니, 황석희 번역가님 도와주세요.


드디어 국내 판매 시작


약 1주 전인가 올리브영에 입고됐다. 바로 초강력 각질 정리 패드의 끝판왕, S사의 최고 농도 제품 말이다. 약 10년 전에 심각한 여드름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피부 관리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성분을 공부하던 중 알게 된 제품이다.


이 제품은 성분 농도별로 총 3개가 출시됐다. 각각 센시티브가 0.5%, 에센셜이 1%, 그리고 맥시멈이 2%다. 국내 화장품법은 이 성분 함유량이 2%를 넘을 수 없어서 제조, 유통하지 않는데 이 제품은 기존 맥시멈과 동일한 성분 2%에, 맥스 플러스라는 이름을 달고 입고됐다.


기존의 맥시멈 2%. 지성 피부라면 꼭 써야할 것 같다. (이미지 출처: 구글 검색)


내 블로그에는 과거 이 제품에 대한 후기만 몇 년에 걸쳐 간간히 전해왔고, 리뷰글도 2번인가 썼다. 심지어 이 브런치에서도 언급을 몇 번 했었다.


직구로만 들여오던 제품이 정식 판매되다니, 기쁨보다는 우려가 크다. 앞으로 사람들에게 얼마나 더 각질 정리 '하지 말라고’ 강조해야 할지, 벌써부터 진이 다 빠진다.



기쁨보다는 우려가 크다


이 성분, BHA(Beta-Hydroxy Acid)에 대해 과거 읽은 내용에 따르면 지성 피부의 각질은 2%부터 용해 효과가 나타난다고 했다. 그러나 국내에서 2%는 법적으로 화장품에 적용 불가한 농도였고, 애초에 미국 제품이었으니 직구한 새 제품을 중고나라에서 구입했다.


그렇게 해서 냅다 초장부터 2% 맥시멈을 사용했다. 효과는 강력했다! 그 뒤로 여드름 발생 개수가 줄고 빈도도 확연히 줄어들었다. 극초반에는 블랙헤드도 옅어지더라. 그렇게 10년 가까이 함께 하며 인생템으로 등극한 제품이다. 그랬는데...



큰 효과를 위해선 어쩔 수 없는 고통?


최초로 사용했던 다음날 놀랍도록 피부가 맨질거렸던 건 확실하다. 그리고 2일 뒤, 그다음 날, 또 며칠 뒤에도 패드 1장으로 얼굴 구석구석을 열심히 흝었다.


점차 따끔거리는 날도 늘어났지만, 원래 그런 제품이라고 생각하며 텀을 늘려 1~2주에 1회 정도 사용했다. 따가웠지만 ‘그래도’ 여드름이 줄어드는데 영향을 준 것은 확실했기에, 몇 년 후에는 주변 이들에게 더 낮은 1% 농도라면 써봄직하다고 조심스레 권유하기도 했었다.


패드(화장솜) 자체에도 요즘은 공을 많이 들인다. (이미지 출처: 구글 검색)


그러나 일주일에 2, 3일씩 꾸준히 쓴 지 1년 가까이 되던 시점일까, 원래 얼굴보다 피부가 많이 얇아졌다. 원체 얼굴이 붉어지는 일이 없었는데 조금만 흥분해도 얼굴에 금방 열이 오르며 붉어졌다. 충격적인 건 얼마 전 피부관리실에서 찍은 각질층 단면 촬영 시에도 관리사님이 피부 각질이 ‘거의 없다’며 할 말을 잃으실 정도였다. 이미 그 각질 패드는 안 쓴 지 몇 개월이 지났는데도 말이다.



본때를 보여줄까


각질 패드, 모공 패드 제품들의 90% 이상은 제품 효과가 산(acid) 성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산'이라고 직접 언급하기보단 대부분 AHA, BHA, PHA, LHA라고 축약어를 쓰는데, 일부 소비자들은 아하, 바하, 파하 등으로 이미 잘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주목을 받고 있으나 이 성분들은 예전부터 화장품에 사용되고 있었다. (LHA는 5년인가, 채 10년이 되지 않은 성분이지만 원리나 기작은 같다.)  

각질 제거 전후 모식도(이미지 출처: 하단 기재)


과거에 각질 정리란 발 뒤꿈치 굳은살 정리에나 등장하는 단어였다. 또, 얼굴 각질은 필링제라고, 물기 없는 얼굴에 문질러서 때 같은 잔여물이 밀려 나오는 제품을 설명할 때 등장하곤 했다. 어느 시점에, 어떤 포인트로 우리에게 각질 정리가 필요하다고 주창하는 세력이 형성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벼르면서 쓸 성분은 못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따끔한 맛도 보여주마


산은 단백질을 분해시킨다. 스테이크 드레싱에 파인애플이나 키위, 식초 등이 함유되어 있는 것은 요리의 풍미는 물론, 과일산의 연육 작용을 이용한 것이다. 그럼 이 산을 피부에 바르면 어떻게 될까? 피부 맨 위, 얼굴 표면이 바로 각질층이다.


사과 추출물, 식초 추출물이 모공 감소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각질과 노폐물 제거에 따른 효과다.(이미지 출처: 구글 검색)

 

각질층은 단백질과 약간의 지방으로 이루어졌다. 단백질이 산을 만나면? 앞서 들은 드레싱의 예시처럼 분해된다. 분해된 각질층은 패드에 닦여나가고, 각질이 한 꺼풀 벗겨진 피부는 이전보다 훨씬 맨들거리고, 화장도 좀 더 잘 먹고 피부도 윤기가 돈다.


이는 사실이다. 월남쌈 라이스 페이퍼 40장을 한 번에 적실 때랑 20장을 적실 때, 같은 시간 내에 더 빨리 투명해지는 건 당연히 20장이다. 일단 얇아지면 피부가 적셔지는데 필요한 절대적인 물의 양이 줄어든다. 다시 말해, 쉽게 젖는다. 그래서 같은 제품을 발라도 피부의 이슬 같은 투명광이 돋보이며 소위 '깐 달걀 피부'도 가능하다.


다만 보유하는 수분량이 적으니까 그만큼 빨리 마르고, 건조해지기 쉽다. 각질은 우선 그렇다치고 보습에 미숙한 사람이 문제다. 갑자기 인위적으로 급격하게 얇아진 피부는 허옇게 껍질을 만들고, 뭘 발라도 따갑고 예민해진다. 또 자외선, 세균과 오염에도 취약해진다. 이 얼굴에 또 패드를 쓴다면? 엄청나게 따가울 것이다. 올리브영에서 주요 소비자 나이는 10대 후반에서 20대까지, 피부 관리 경험이 없거나 미숙하다. 이들에게 맥시멈 2%를 준다는 건, 얻는 것보다 잃을 게 더 크다.    



각질을 정리하라니


무슨 파업 해고도 아니고, 정리할 게 따로 있지 각질을 정리하라니. 용어의 변경이 필요하다. BHA의 효과는 Exfoliating skin, 직역하면 피부를 벗겨낸다는 말이다. 언뜻 보면 굉장히 무섭다.


 국내에서는 '각질 지우개'라든가 아무튼 벗기는 것보다 완곡한 표현을 찾은 게 '정리'인 모양이다. 그러나 마치 어질러진 책상처럼 고르지 않은 무언가가 떠오른다. 어딘가 청소와도 비슷한 개념같이 여겨진다. 이에 각질 정리를 모른다, 안 한다고 하면 마치 청소할 줄 모르고, 하지도 않는 사람 같지 않나.


말은 각질 정리고 함량은 2%에 한참 못 미치는 제품들이 많다. 차라리 무효능이 낫다.(이미지 출처: 구글 검색)


그러니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그냥 원래 직역한 그대로 '피부 벗김' 수준의 표현으로 제품 효과를 홍보했어야 했나 싶다. 그랬으면 피부 관리를 더 안전하고 예쁘게, 오래도록 잘해나갈 수 있을 텐데.


초창기에 피부 관리실에서만 쓰던 AHA 등 산성 필링제나 피지연화제, 리들샷의 모태인 스피큘도 이제 누구나 쉽게 살 수 있다. 그러면 더 이상 이 제품들은 관리실의 전유물이 아니니 소비자들은 저렴하게 효과 좋은 제품을 써서 잘된 일일까? 


관리실 실장님이 요새 피부 뒤집어져서 오는 중고등학생들이 많아져서 바빠졌다고 랩을 하셨던 걸 보면 아닌 것 같다. 제품은 제품대로 잘 팔리고, 피부 관리실도 손님이 더 늘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정말 혜택을 누리는 건 과연 소비자일까?



이렇게 험난한 세상에, 내 피부에게도 그토록 거칠고 따끔한 맛을 보여주지 않아도 괜찮다. 비록 맥시멈이라는 단어는 센시티브보다 훨씬 강하지만, 손에 쥔 도구가 예리하다고 사용자가 강해지는 것이 아니듯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차츰 각질과 피부에 익숙해지기를 바란다.





이미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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