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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 단상
08화
치앙마이, 단상 8
홍수, 게으름, 온라인 수업
by
구슬주
Oct 5. 2022
홍수
지난달에
식당이나 가게에 갔을 때
내가 한국 사람인 것을 아는 사람들마다
손을 이마나 머리 높이 허공에 대고는
"남"이 들어간 단어를 꽤 흥분하면서 말했다.
'남'은 물이라는 뜻인데. 손 위치와 단어 하나로
강남이 물에 잠긴 영상이 떠올라서
바로 이해했다.
식구들을 걱정하는 그들 모습에 고마웠다.
어제 치앙마이의 한강이라 불리는 핑강이 범람했다.
다리는 벌써 잠겼고,
내가 살던 나이트 바자 쪽 침수가 심했다.
휴교령이 떨어졌고, 경찰들은 일부 지역을 차단했다.
공무원들은 장화를 신고 나와서 피해 복구에 힘을 쏟았다.
10월 1일부
터 쏟아진 비로 상류에 물이 너무 차서
당분간은 내려 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비 피해는 더 있을 수 있다는 전망이었다.
거기에 2-3일 비가 더 올 예정이라 모든 사람들이
긴장하는 상황이다.
내가 글을 3인칭으로 쓰는 이유는,
내가 있는 곳은 비 피해가 전혀 없었다.
내가 겪었던 피해라고 해 봤자,
길이 중간에 잠긴 것. 하지만 기껏 해서
내 종아리까지 오는 깊이였고,
그것도 3-4시간이면 마를 양이었다.
사방이 논밭에 평야라서 홍수로 잠길 일이 없었다.
그래서 치앙마이 커뮤니티에서 교민이
올려주신 사진과 기사를 보면서 알았다.
기사에서는 10년 만에 홍수라고 말했다.
핑강
주변하고 일부 지역 빼고
대부분의 지역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우기 시즌에 장기간 있었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라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비에
순간 쏟아지는 많은 양의 비를 보고 있노라면,
무섭기도 했지만 시원했다.
길을 걸을 때 만나는 비는 정말 싫지만,
실내에서 바라보는 폭우는 가슴을 뻥 뚫리게 했다.
나는 뚜벅이라 비가 올 때 우산을 쓰며 느릿하게
우산 안에서 천천히 걸었다.
개념 있는 차들은 물 웅덩이 앞에서 속도를 줄였고,
어떤 차는 확 지나가면서
옷이 흠뻑 젖기도 했다. 당황해서 뒤돌아 노려봤었다.
좁은 도로에서 그렇게 속도를 내야 했는지..
그리고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이
나를 좀 안쓰럽게 봤다.
난 빠른 속도라고 해도 비를
온몸으로
다 맞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안쓰러운데,
우산을 쓴 채 걸어가는 나를 안쓰럽게 보고 있었다.
서로 안쓰러우니 비겼다.
게으름
성격이 엄청 급하면서 게으르다.
게으름과 급한 성격이 한 사람한테
보이는 특성이라고
하기에는
모순이라고 볼 수 있지만 난 그렇다.
대부분 게을렀고, 가끔 급했다.
치앙마이는 느림의 도시다.
사원이 많고 사람들도 타 지역보다는
느긋하고 여유가 있다.
이곳에도 성질 급하고 못된 사람들이 있지만,
다른 지역 비해 사람들이 순박하고 정이 많다.
그래서 내가 오고 또 오고 계속 올지도 모를 일이다.
유명한 관광지는 몇 군데 가 봤고,
숨겨진 보석 같은 곳은 숨겨진 채로 두는 게 예의라고
좋게 포장해서 가지 않았다.
보석을 숨겨두었다면 다 이유가
있을 터인데
굳이 가야
돼?라는 개연성 없는 핑계를 대면서
매일 가는 카페에서 시원한 에어컨 아래
놓인 행복을 찾는다.
시골로 오고는. 게으름은 더 심해졌다.
침대에 누워 뭉그적대며 뒹굴뒹굴 굴러다니면 내가 좋아하는 상상 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현실이 무난하니 내 상상은 점점 스펙터클해진다.
일부는 글을 쓸 때 도움이 된다.
그렇게 아침을 보내면,
일어나서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하늘을 살핀다.
먹구름이 살짝 보이면 서둘러서 밖으로 나가
그날
먹을 밥하고 커피를 사 온다.
하루에 한 번 하는 외출이라 최대한
비를
피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집에 들어오면,
갑자기 마음이 편해지면서 몸이 노곤해진다.
이제 아침 10시인데. 하루가 끝난 느낌.
그리고 베란다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SNS을 보고
몸이 건강할 때는 운동도 한다.
알레르기 비염으로 고생하는
요즘에는 저녁 샤워하기 전에
이어폰으로 빠른 템포의 노래를 들으면서
무에타이 동작인 킥, 엘보우, 펀치, 니킥 등
여러 동작을 연습하면서 땀을 뺀다.
샤워 후에는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면
하루 일과가 끝난다.
비생산적인 일과로 하루를 끝내면 마음이 편하다.
주변 지인들 치열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
불안해지기도 하는데,
지금은 이 순간을 즐기자라는 마음으로 산다.
열심히 일한 개미는 관절염으로 고생하고
노래만 부르던 베짱이는 득음을 해서
인기 가수가 되었다는.
운빨 가득한 인생을 빗댄 소리에 웃으면서.
나한테도 그런 배짱이 인생 같은
'
기가 막힌 운빨 한 번 와라!!!
'
기도하며 잔다.
온라인 수업
강의 듣는 것을 좋아한다.
3년 전이라면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이지만,
이곳에서 요일별로 강의를 듣고 있다.
한 수업만 빼고는 도서관에서 운영돼서 모두 공짜.
화요일은
한국사 수업
수요일은
독서 힐링
수업
목요일은
환경 수업
을 듣는다.
그리고 화요일 저녁에는
'책 고집'에서 운영하는
'과학 북 토크' 강의를 듣는다.
모두 온라인 수업이라서 한국보다
2시간 느린 시간을 감안해서
정해진 시간에 참석해서 수업을 듣고 있다.
한국에서도 종종 듣기는 했는데,
시간 도둑인 TV와 같이 있어서 가끔 빼먹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자연인이면서 백수인.
그래서 남은 것이 시간,
넘치는 것은 에너지뿐인 ME!
그래서 수업 시간에 100프로 출석에
나름 열심히 참여한다.
이전에는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면,
아직까지는 쑥스러워서 마스크 낀 채로
화면에 나와서 질문도 하고
강사님 질문에 답변도 한다.
답변을 할 때마다 조금은 걱정하면서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내 생각을 말하거나 질문에 답변을 하면
선생님들은 "얘는 뭐지?"라는 표정으로 종종 보곤 했다.
학기 초에는 질문을 몇 번 하시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안 하셨다.
그래서 애들이 일부러 수를
쓴 게
아니냐고도 했는데
난 진심이었다.
학창 시절에 선생님들한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내 뇌구조가 궁금하다 였다.
뇌야
똑같이 주름지고 못생긴 건 같은데
뭘 궁금해할까 싶었다.
나중에 내가 교사가 돼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어릴 적 나와 같은 애들을 만나곤 한다.
그때마다 아이들의 뇌구조보다는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어떤 유전자를 물려받았기에
저렇게 생각할까 부모님이 궁금하기는 했었다.
한국사
수업
강사님은 예전에 세계사 수업도 한 번 들었었는데
기존 역사 수업하고는 많이 다르다.
비하인드 스토리를 팩트와 구전으로
전해진 이야기를 모두 이야기해주신다.
오늘은 독립운동을 공부하면서 의열단을 시작으로 독립운동단체를 공부했다.
그때 김원봉 열사님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데
갑자기 '오봉'을 아냐고 물었다.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거기 오봉 갖고 온나'해서
오봉이 쟁반인 걸 알아서
대답했더니 오봉이 쟁반이라는 뜻 맞는데
여기서
오봉은 김원봉,김두봉,양세봉,윤봉창,이봉창
이 분들의 성함에 모두 '봉'자가
들어가서 다섯 명의
'봉'이라 '오봉'이라며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하는 분들이라고
설명하셨다. 재미있게 쟁반의
오봉 하고 연결해서
설명해 주셔서 더 기억에 남았다.
독서
치유 수업
은 그림책을 읽고 서
로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수업이다.
지난 수업은 '곰씨의 의자'라는 책을 읽었는데
짧은 그림책이었는데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그리고 같은 책을 읽었지만 우리 모두 다른 환경에서
살기 때문에
생각이 모두 달랐다.
각자 겪는 어려움과 아픔이
투영돼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고,
강사님도 조언을 해주셨다.
학생들은 동그라미처럼 동글하면서 순했고,
강사님은 별처럼
뾰족하게 콕 찌르지만
별처럼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제안하셨다.
대부분의 힐링 수업은 학생들이
감정을 이기지 못해 격해지고,
강사님은 오은영 박사님처럼..
'그래. 그럴 수 있지요'..라고
격해진 감정을 위로해주셨다.
하지만 이 분 수업은 많이 달랐다.
좋다 싫다는 감정보다 신기했다.
한 예로 어떤 분 남편이 특정 브랜드의 컵을 모으는데,
가끔 의견 충돌이 있을 때가 있곤 한단다.
부부 사이에 그런 일은 다반사라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여자분을 자세히 모르지만 순하고 이해하면서 넘어가려는 성향이 짙어 보였다.
그래서 남편이 더
자기주장을 내세우면서
여자분의 시간과 공간의 선을 자주 넘는 분위기였다.
그러자 강사님이 다음에도
허락 없이
그분이
그려 둔 선을 넘으면 애지중지하는
브랜드 컵을
하나 지퍼백에 넣어서 깨라고 했다.
네에???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내가 당황해서
다른 분들 표정을 못 봤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선을
허락 없이 넘는다면,
나 역시
네가 아끼는 이 컵을 깰 거야"라고
보여 주라고
말하셨던 거 같다
(지난 주라 기억이 가물하지만 이런 느낌이었다)
속이 시원했다.
실제 그분이 그러실까 싶긴 했지만.
기존 힐링 수업하고 달라서 좋았다.
목요일은
환경 수업
인데.
수강 인원이 나까지 4명이다.
이모 또래의 두 분하고. 내 또래의 강사님, 수강생 분. 이렇게 조촐하다.
그런데 강사님이 너무 러블리하시다.
환경 수업을 듣게 된 이유는
환경에 관심이 있기도 했지만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수업을 할까라는 호기심이었다.
첫날은 집에서 키우는 식물에 대해 공부했다.
식물의 효용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안다.
이 수업은 효용을 넘어서 식물을 위해서
절대 키우면 안 되는 나 같은 사람들이
집에서 쉽게 키울 수 있는 강한 생명력을 지닌
식물을 소개해준다.
방목하고 길러도 알아서 풀
뜯어먹고 자라는
호주의 자유분방한 송아지처럼.
그렇게 집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아주 가끔 물을 줘도 살아갈 수 있는 애들로만,
거기에 식물 관련 책도 추천해 주셨다.
두 번째 수업은 벌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다.
내가 벌 때문에 너무 고생해서
이번 수업은 쨀까 싶었는데
이사를 한 뒤라서 참석했다.
벌통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 우리가 사는
사회의 축소판 같았다.
정말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고,
꿀, 로열젤리가 건강에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된 수업이었다.
관련 영상과 책도 소개해 주셔서 하나씩 보고 있다.
그렇게 오전에 수업을 듣고,
멍을 때리며 많은 생각을 한다.
코로나로 사회가 많이 변했다.
많은 불편한 점을 뒤로하고, 줌 수업이 활성화돼서
어디에 있던 양질의 수업을 듣게 돼서 너무 좋다!!! 예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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