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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ra Aug 19. 2018

청춘, 잘 보내고 있는지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을 읽고

김연수의 청춘시절에 대한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 작가는 평생 뻥 뚫린 공허함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숙명을 지닌 예민한 성정과, 빵 집의 아들이라는 뿌리를 가진 자신을 도넛 인간이라 설명하는 것으로 책의 서문을 연다.


나 역시 나 자신을 정의 내리기 위해 무던히 고민 중이었기에 유독 와 닿았던 대목이기도 하다. 자신을 한 단어로 표현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통찰과 성찰이 필요한지.


내가 소속된 곳, 주어진 역할, 놓인 상황이 바뀌어도 여전히 나를 나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싶다. 이것은 곧 나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 전체를 액체화시켜 거름망을 두른 깔때기에 붓는다면, 거르고 걸러진 마지막 한 방울의 액기스는 무엇일까.



또 한 가지 기억에 남는 대목을 꼽자면 김연수가 자신의 업(業)에 대해 묘사한 부분이다.

컴퓨터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었더니 밤하늘이 보였다. 문득, 고독해졌다. ‘나는 지금 소설을 쓰고 있다’ 오직 그 문장에만 해당하는 일을 나는 하고 있었다. 그 소설이 어떤 평가를 받을지, 그 소설로 인해 내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지, 그런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그저 ‘나는 지금 소설을 쓰고 있다’ 그 문장뿐이었다.
완전히 소진되고 나서도 조금 더 소진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내가 누구인지 증명해주는 일,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 견디면서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일,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김연수는 자신이 글을 쓸 때 가장 잘 산다고 했다. 문학을 하는 이유가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라고 했다. 문학을 할 때 자신의 존재가 가장 빛이 난다고 했다.


‘자신의 업을 숭고하게 여기는 고매한 정신.’라고까지 표현하자면 너무 거창한가 싶지만, 분명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에게선 그만의 빛이 난다. 자신에 대해, 또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많이도 생각하다가 마침내 본인의 존재의 이유를 찾아낸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여유같은 것일까.


자신이 하는 일이 곧 존재의 이유가 되는 경지.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닌, 일로부터 가치와 충만함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 나를 나로서 존재하게 하는 이른바 '천직'을 발견하고 이에 최선을 다하는 것.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삶의 모습을 김연수는 이뤄가고 있었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무릇 예술가의 혼이란 이런 것이지‘하며 그의 게으름조차 합당해지는 요상한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김연수의 문장은 한없이 진지하거나 무겁지 않다. 오후 느지막이 일어나 다 늘어난 목티에 헐렁한 바지를 입고서 설렁설렁 동네를 돌아다니는 동네백수 같다. 하지만 무엇을 물어보든 척척 대답하고, 이따금 한참이 지난 후에야 참 뜻을 깨닫게 되는 말을 던지는, 지식인의 면모를 갖춘 한량같달까.


이런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에는 사회에 딱 들어맞은 인간형이 되기에는 영 부족해 보이는 그의 사회성이 엿보인 탓도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바라고 좋아하는 것에는 통 관심이 가지 않아 자주 오해를 받고 의아한 것이 많은 사람.


세상에는 응당 추구하기에 더 멋지고 아름다운 것들이 이리도 많은데, 왜 사람들은 같은 것만 요구하고 쟁취하려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과 섞이기에는 너무 순수한 젊은 시인 김연수의 청춘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러니까 <청춘의 문장들>은 김연수가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아가는 과정에 관한 글이다. 나태로운 일상 속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며 알찬 청춘의 시간을 보낸 김연수의 깊이 있는 문장 하나하나가 마음에 와 닿았다.


김연수는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마음이 시키는 것에 집중하며 청춘을 보냈다. 이런 청춘도 있다. 학점과 취업에만 열중하며 살아온 내게, 남은 청춘은 조금은 달리 보내야 겠다고 느끼게 해준 책이다.  


스물넷에서 서른둘. 인생의 정거장 같은 나이를 지나고 있는 나의 청춘은 어떤 문장들을 남기며 흐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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