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제 2의 플라자합의 그리고 레이거노믹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죠. 그 해 8월, 미국은 종합무역법이라는 걸 제정합니다. 어딘지 모르게 온화하게 들려도 사실은 아주 강력한 보호무역을 하겠다는 목적의 법이었어요. 1988년은 로널드 레이건 정부를 거치며 쌍둥이 적자가 미국을 골치아프게 했던 때입니다. 정부가 돈을 너무 많이 써서 생긴 재정적자와 외국 상품에 치여서 수출보다 수입을 더 많이한 결과로 나타난 무역적자가 극에 달하기 시작했던 1980년 대 후반이었습니다. 미국은 미국과 교역을 하는 다른 나라들이 자국 화폐 가치를 의도적으로 낮춰 수출에 유리하게 만들어서 우리가 무역적자를 보고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습니다. 무역적자가 미국 탓이 아닌 다른 나라 탓이라는 것이었죠.
미국의 주장대로라면 예를 들어 한국의 환율이 1달러에 2000원에서 1달러에 4000원이 되면 미국 수입업자 입장에서는 물건을 더 사올 수 있으니 수입이 늘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외국의 나라들이 의도적으로 자국 화폐가치를 낮추고 있다는 것이 미국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법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살펴봐야 될 게 있습니다. 왜 이런 법을 만들게 됐는지 그 배경을 살펴봐야 하는데요. 미국의 레이건대통령 그리고 레이거노믹스를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레이거노믹스는 공급주의 경제학이라고도 불리는데요. 한마디로 물건을 사는 사람보다 물건을 파는 사람에게 더 신경을 써주었던 이론이죠. 이 말에 걸맞게 친기업 행보를 많이 보였습니다. 1981년부터 89년까지 대통령을 했던 레이건은 ‘힘에 의한 위대한 미국’의 재건을 기치로 소득세를 깎아주고, 정부 규제를 완화했습니다.
우선 1982년 연방예산에서 414억달러를 삭감했습니다. 국방비만 증가하고 무료급식 같은 사회복지가 확 줄었습니다.
둘째는 소득세 삭감이었습니다. 3년동안 매년 10%씩 삭감해 총 30%에 해당하는 소득세 삭감을 요구했습니다. 1981년 소득세 최고세율을 70%에서 28%로 내리고, 법인세 최고세율도 43%에서 35%로 내리는 등 강도 높은 감세정책을 단행했습니다.
부담스런 정부규제도 없애자고 주장했습니다. 기업활동의 자유를 주자는 것이었죠. 은행이 투자할 수 있는 범위가 늘어났고 석유, 천연가스 등에 대한 가격 통제도 제거했습니다.
네번째는 인플레이션율을 낮추는 것이었습니다. 1981년 초 12.4%였던 인플레이션율은 1년 후 7%까지 떨어졌습니다. 고금리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킨 겁니다.
높은 경제성장, 인플레이션과 이자율 하락, 생산성 증가, 중산층 가정 수입 증가, 실업 감소 등 결과적으로 경제는 성장했지만 재정적자가 늘었습니다. 소득세를 깎아주니 정부의 주머니는 가벼워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미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국채와 공채를 무제한 발행한 것이었습니다. 미국 국채를 팔기 위해서는 은행 금리를 올려야 했습니다. 그래야 많이 사갈테니까요. 투자가 위축되고 세계에 풀린 돈이 미국으로 돌아가 달러 유동성이 줄어들자 달러 가치가 올랐습니다. 결과는 무역적자 확대였습니다. 이런 배경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무역적자가 해외 탓이라고 제동을 걸었습니다.
그 유명한 ‘플라자 합의’가 여기서 나온 겁니다. 1985년 가장 먼저 타겟이 된 나라는 일본이었습니다. 제임스 베이커는 지나친 달러 강세가 세계 경제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이라면서 다른 나라들을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상 협박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때 뉴욕 증권가에서는 미국이 일본에 지고 있던 빛의 50% 탕감이 플라자 합의의 배경이라는 소문도 파다했습니다. 사실 달러는 반짝 강세를 보인 게 아닙니다. 1979년부터 6년 연속 달러가 강세였던 배경은 연준을 이끌던 폴 볼커가 미국의 인플레이션율을 낮추기 위해서 1979년부터 1982년까지 단행한 통화 긴축도 한 몫을 했습니다. 우리가 잘못해놓고 남 탓을 하는 꼴이었지만 미국의 요구를 쉽게 거절할 수는 없었습니다. 미국,프랑스,일본,독일,영국 재무장관은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모여서 미달러를 일본 엔화, 독일 마르크화에 대해 절하시키기로 합의했습니다.
합의 결과 2년 간 엔화와 마르크화는 달러화 대비 각각 65.7%, 57% 절상됐습니다. 이 때 나온 게 엔고인데요. 급격한 엔고의 영향으로 수출이 감소하고 성장률이 떨어지자, 일본 정부는 경기 부양책을 위해 금리 인하와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책을 썼고 이 결과 일본의 부동산 시장과 주식시장에는 엄청난 거품이 생기게 된 겁니다. 잃어버린 10년의 원인이 됐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오는 겁니다. 반대로 우리나라는 플라자 합의 이후 저유가와 저금리에 저달러까지 겹치면서 1986년부터 3년 동안 연 10%의 성장세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플라자 합의에도 안되겠다 싶었던 미국은 1988년 환율을 조작하는 나라들의 리스트를 만들고 상대 국가와 협상을 해서 평가절상을 요구하고, 응하지 않으면 보복조치를 취했습니다. 1988년 미국 시장에 수출을 많이 하던 한국과 일본, 대만이 그 대상이었습니다. 중국도 1992년부터 1994년까지 환율조작국으로 분류됐습니다. 그런데 이 때의 환율조작국이란 기준은 좀 애매했는데요. 환율조작국 지정 요건이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국, 유의미한 대미 무역수지 흑자국이라는 애매모호한 말로 표현이 됐던 것이죠. 그리고 미국 재무장관이 이런 나라들이 환율조작을 하고 있는지를 판단하면 된다는 내용이었죠.
그리고 2015년이 됩니다. 이번에 미국은 교역촉진법이라는 이름의 비슷한 법을 발표합니다. 환율조작국 지정 요건이 구체화됩니다. 대미 무역흑자 200억 달러 이상, 경상수지 흑자 GDP 대비 2% 이상, 외환시장 달러 순매수 개입 GDP 대비 2% 이상이 6개월 간 지속, 이 세 가지 요건 중 2가지를 중족하는 나라를 관찰대상국으로 분류하고 세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면 심층분석 대상국으로 분류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제재도 명확해졌습니다. 1988년에는 그냥 협상을 하라는 정도였다면 이번에는 미국기업의 투자 시 금융지원을 금지하고 해당국 기업이 미국 조달시장에 진입하는 걸 금지합니다. IMF를 통한 환율 압박과 무역협정을 제재로 제시하게 됩니다. 2015년 이 법이 생기고 나서 관찰대상국 그러니까 요건 2가지를 만족하는 나라는 있었지만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된 나라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미국 입장에선 중국이 눈엣가시였지만 중국도 올해 5월까지는 첫번째 요건인 대미 무역흑자 200억 달러 이상만 해당됐기 때문에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순 없었죠.
그런데 중국이 2019년 8월 5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됩니다. 2015년 교역촉진법에 따르면 지정할 수 없는데 말이죠. 미국은 1988년 종합무역법에 근거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겁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종합무역법에는 미국 재무장관이 환율조작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되어 있지만 구체적인 기준이 명시되지 않았거든요.
미국이 근거로 든 것은 환율조작국 지정 전날인 8월 4일 위안화 환율이 급등하면서 달러당 7위안을 넘어서는 이른바 ‘포치’를 기록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중국 인민은행이 환율조작을 했다는 것이죠.
사실 미국은 이미 밑밥을 깔아왔습니다. 2017년 4월 낸 환율 보고서에서 만일 특정한 나라가 1988년 법이나 2015년 법을 동시에 충족하지 않고 하나의 법률 기준만 충족해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수 있다고 썼습니다. 이 때는 그래도 각주에 조그맣게 썼는데요. 2018년 10월부터는 아예 본문에 대놓고 적었습니다.
미중 양국은 2019년 9월 1일부터 추가 관세 부과를 발표한 상황입니다. 미국은 3805개 품목 약 3000억 달러 상당의 중국산 제품에 대해 15% 추가관세를 부과하고 현재 25%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 2500억달러 상당 중국산 제품에는 관세를 30%로 올린다고 밝혔습니다.
레이거노믹스, 플라자합의의 역사를 살펴보고 나니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중국 때리기는 마치 30여 년 전의 플라자 합의를 다시 보는 듯 합니다. 미국은 중국에게 인위적인 환율 조작을 하지 말 것을 요구하다가 급기야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기까지 했기 때문입니다. 제 2의 플라자합의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