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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은 May 17. 2021

화이자는 어떻게 공룡 제약회사가 됐나

요즘 백신 때문에 제일 많이 들리는 제약 회사 중 하나, 바로 화이자입니다. 사실 어떤 기업이 100년 넘게 살아남는다는 건 참 대단한 일이잖아요. 많은 분들이 그냥 ‘백신’과 ‘비아그라’만 생각하시는데 화이자는 무려 150년이 넘게 미국 대표 제약주로 자리매김 해 온 미국 제약주입니다. 그만큼 역사와 성장 배경에서 얻어볼만한 인사이트가 많은 것 같아요. 






 

화이자 주가 상승기




화이자는 1849년 독일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사촌 지간 찰스 화이저와 찰스 에르하르트가 20대에 모아놓은 2,500달러에 1,000달러 대출받아서 뉴욕 브루클린에 차린 회사입니다. 화이자는 화학자였고 에르하르트는 제빵사였어요. 둘의 케미가 잘 발현된 게 쓰지 않은 구충제 ‘산토닌’이었죠. 이 제품으로 이름을 알린 화이자는 그 후 타르타르산, 붕산, 수은 같은 걸 팔기 시작했고 그 이후 ‘구연산’ 생산으로 회사 규모를 키웠습니다. 

 

2차 세계대전은 가슴 아픈 역사지만 화이자에게는 기회가 된 전쟁이었습니다. 두 번째 화이자를 대박 행진으로 이끈 항생제 ‘페니실린’이 전쟁 덕에 잘 팔렸기 때문이죠. 미국과 영국 정부로부터 페니실린 발주 요청을 받았는데 이 때 생산량을 끌어올리려고 300만 달러를 들여서 공장을 짓는 무리수를 뒀습니다. 그러다 보니 화이자의 물량이 전체 공급 물량의 90%를 차지할 만큼 압도적이었죠.


처음으로 화이자 이름을 붙여서 판 ‘테라마이신’ 안연고는 출시 2년 만에 매출의 42%를 담당하는 캐시카우가 됐고 참고로 화이자는 ‘테라마이신’을 화이자 이름 걸고 팔기 전까진 원료를 다른 회사에 팔던 회사였다고 해요. 제약회사로의 변신은 성공적이었습니다. 1953년 화이자의 매출은 1억 2700만 달러, 지금 돈으로 1400억까지 늘게 되고 1954년 테트라사이클린이라는 약까지 개발한 화이자는 바로 유럽 진출을 선언합니다. 사실 제품 2개를 가지고 유럽 진출이냐는 핀잔도 들었다는데 결국 1957년에 먹는 샌드위치 아니고요. 영국 지역 ‘샌드위치’에 유럽 지점을 냈는데 여기서 나중에 비아그라와 암로디핀을 개발하게 되니 지나고 보면 잘한 결정인 듯 싶습니다. 

 

화이자 설립 초기부터 여기까지만 살펴봐도 떠오르는 키워드는 ‘과감’인 듯합니다. 페니실린 팔 땐 공장 짓고, 항생제 개발하고 바로 제약회사로 탈바꿈하고, 약 2개 가지고 바로 유럽 진출하고 뭐 이런 것들이요. 


사실 화이자는 1970년대 만 해도 막판에 개발에 실패한 고혈압약이나 고지혈증 치료제에 대한 실망감으로 매출의 5% 정도만 R&D에 쓰던 회사였는데요. 1972년부터 1992년까지 대표를 맡았던 IBM 출신 에드 프랏이 ‘무조건 R&D에 투자해야 한다’는 모토로 매출 대비 R&D 비중을 15~20%까지 올렸습니다. R&D 비용이 1971년 800만 달러에서 1981년 1억 7900만 달러, 다시 1991년 7억 5700만 달러로 늘었죠. 결국 이때 개발에 착수한 항진균제 디플루칸이 1990년이나 되서야 시판이 됐고 항염증제 피록시캄은 1980년 대 후반 연 매출 7억 달러를 찍는 등 매출을 2배나 점프할 수 있게 해준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처방되는 고혈압 치료제 노바스크도 이때 나왔고요. 매출도 1970년 대 10억 달러에서 1990년 70억 달러로 7배나 늘었습니다.  심장병 치료제로 개발하던 ‘비아그라’ 에서 ‘음경 발기’라는 부작용을 발견하고는 방향을 틀어 ‘발기부전 치료제’로 비아그라를 출시해 1998년 FDA 승인을 받았다는 것도 유명한 일화죠. 그야말로 화이자의 ‘르네상스’ 시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신약도 꾸준히 나와줬으니 주가가 2000년 대 초반까지 지속 상승했던 이유기도 하고요.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이때 찍은 주가를 찍지 못했습니다. 

 

화이자 주가 하락기 그리고 M&A


끝을 모르고 상승하던 화이자의 주가는 그러나 2000년대 들어 10년간의 우하향 흐름을 보이게 됩니다. 더 갈 거 같다고 믿고 주식을 산 투자자들은 정말 속상했을 것 같습니다. 주가는 하락했지만 화이자의 덩치는 계속 커졌습니다. 2000년에는 워너 램버트와  당대 탑 5에 드는 약 900억 달러 규모의 합병을 하면서 고지혈증약 ‘리피토’를 파이프라인으로 추가했고 주가가 바닥을 친 2002년에는 파마시아와 합병 결정을 내렸고 ‘셀레브렉스’와 벡스트라’를 포트폴리오에 추가했죠. 이 두 회사와는 그전부터 파트너십을 맺고 있었다고 하니 괜찮은 포트폴리오를 가까이 두고 우호적인 관계 유지하면서 결국 합병하는 방식은 화이자만의 M&A 스타일인 것 같기도 합니다. 2009년에는 금융위기 직후라 매출이 엄청나게 감소하던 시점이었음에도 빚을 내서 와이어스 제약을 인수하고 2010년에는 킹제약을 인수하면서 몸집을 불려왔습니다. 포브스는 워너 램버트와 합병할 때 ‘느리고 아픈 공룡’ 같다, ‘몸집이 커지면 연구개발에 쓸 돈이 적어진다는 통계도 있다더라’며 비판적으로 봤지만 파이프라인을 늘리고 특허나 브랜드 파워, 연구개발비 등등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특허권 만료가 임박한 약들에 대한 우려를 생각하면 전략적인 수순이 아니었나 싶어요. 최근까지도 인수합병은 계속됐습니다. 2015년에는 바이오시밀러로 유명한 호스피라사를 인수하고 2016년엔 아스트라제네카의 항생제 부문과 항암제로 유명한 메디베이션사를 인수했거든요. 제네릭사 마일란도 인수했고요. 

 

2010년대에는 주가가 다시 회복됐다지만 2000년대에는 주가가 왜 떨어졌나 궁금해지는데요. 사실 이 때 주가가 떨어진 건 화이자만이 아니긴 했어요. 브리스톨 마이어나 릴리, 머크도 다 우하향을 그렸는데ㅎㅎ일단 이렇다 할 신약 출시가 줄어들고 기존 약의 특허가 만료되며 등장한 저가 제네릭과의 경쟁, FDA가 신약 승인을 거부하는 빈도가 높던 시절 탓이었죠. 당장 화이자만 해도 디플루칸이나 노바스크도 이 기간 특허가 만료됐었고 특허가 만료된 약들의 매출이 줄어드는 것도 현실화했고요. 그러다보니 화이자의 2007년 순이익은 2006년에 비해 57%나 줄어들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어려운 시기를 공격적 인수합병으로 버텨낸 걸 보면 화이자의 태생적 ‘과감함’이 돋보였던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코로나 그리고 화이자의 미래


뭐니 뭐니 해도 화이자의 저력은 이번 코로나 백신 개발에서 잘 드러났습니다. 제네릭이 너무 많아지면서 신약의 약발이 떨어지며 새로운 성장 동력의 부재에 실적 부진이 이어진 화이자로서는 페니실린 때처럼 새로운 돌파구가 생긴 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드는데요. 어쩌면 그래서 더 사활을 걸고 코로나 백신에 매달렸을 수도 있고요. 워낙 큰 조직이고 우수한 인력이 많은 덕분에 10년 걸릴 백신 개발을 1년도 안 돼서 끝낸 화이자의 저력이 돋보이는 시점입니다. 역시나 이번에도 위기를 기회로 만든 듯한데요. 예방률도 95%로 백신 중에 제일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선진국들이 이미 약이 생산되기도 전에 선구매를 한 상황입니다. 거기다가 화이자 백신이 성인에 이어 12~15세 청소년에 접종도 긴급 승인이 됐고요. 영국에서 화이자 백신을 정식 승인한데 이어  미국에서도 정식 승인을 신청한 상태인데 승인이 떨어지면 직접 시장에 판매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과거와 현재의 발자취를 짧게 정리해서 따라와봤는데요. 혹시 투자도 고민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미래에 대한 고민을 곁들여 봤습니다. 

 

일단 코로나 백신 효과는 반짝하고 말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일단 어른 백신으로 시작했지만 영유아까지 적용 범위를 확대할걸로 기대가 되고요. 여기에 화이자 백신이 변이 바이러스에도 백신이 효과가 있다는 점, 백신 가격이 올라갈 수 있다는 점, 먹는 치료제까지도 나올 예정이라는 점에서 코로나로 인한 파생 이익이 당분간 유효할 것 같아요. 다들 들으셨고 체감하고 계시겠지만 코로나 백신은 아마 매년 맞아야 할 거다 이런 말도 나오고 있는 만큼 반짝 하고 말 매출원은 아닐 듯합니다.  

 

최근에는 기업 구조 자체를 재편하고 있기도 합니다. 크게 고성장 포트폴리오, 특허가 지난 약을 포함한 제네릭, 일반의약품으로 나누는거죠. 대표적 암 치료제 입렌스나 항응고제 엘리퀴스,매출 성장률 200%를 넘긴 심장질환 치료제 빈다켈 같은 경우는 잘 키우고 리리카와 비아그라 같은 특허권 만료된 의약품은 화이자로부터 분사한 업존과 마일란 회사의 합병으로 비아트리스에서 관리하는데 비아트리스는 2020년 상장도 했습니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에 일반의약품 사업을 양도하고 우리가 많이 먹는 비타민 센트룸, 두통약 애드빌 같은 일반의약품 판권을 여기로 넘겼습니다. 물론 지분 32%를 보유하고 있지만 고성장 포트폴리오쪽으로 집중하기 위한 큰 그림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리지널 의약품의 매출은 특허 만료 후 제네릭 공세에 매출이 준다는 건 거의 정설에 가깝고 화이자도 여기에 당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시장을 선점한 브랜드 파워를 자랑하는 약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리피토 같은 경우는 물질특허 만료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고지혈증약 처방 상위를 달리고 있거든요. 워낙 안정적인 임상으로 신뢰가 있기도 하고 가격도 공격적으로 인하하는 등 민첩한 시장 대응이 비결이라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도 있겠죠. 


사실 세계적으로 ‘화이자 백신’만 찾는 상황이긴 하지만 화이자가 의약품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이 있어요. 잘 팔리는 게 코로나 백신밖에 없다는 것이죠. 워낙 전염병이 심하다 보니 사람들이 병원에 못 가고 치료도 미루기 때문에 다른 약의 매출이 지지부진한 결과에요. 실제로 2020년 성적표를 보니 이 점이 여실히 드러났더라고요. 2021년 1분기만 해도 매출이 42% 늘었는데 코로나 백신을 제외하고는 8% 성장에 그쳤거든요.기업 재편에 드는 돈도 많이 들고 달러 강세로 수출로 벌어드는 돈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도 당장은 고려해야겠습니다. 

 

꾸준히 신약을 내야 하고 제네릭과 싸워야 한다는 점은 화이자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입니다. 제네릭 속에서 우위를 지키는 특허 만료 약도 있지만 안그런 약도 있거든요.ㅎ한 때 화이자의 홍보대사 역할을 해주던 비아그라는 역성장을 하고 있고요. 2019년 매출이 16% 감소한 이유를 두고 화이자는 ‘리리카’의 특허 만료에 따른 결과를 들었습니다. 꾸준히 신약을 출시해 기존 캐시카우의 특허 만료 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점에서 저는 정말 한시름도 덜 수 없는 비지니스의 냉혹함을 느꼈거든요.ㅎㅎ 덩치가 크고 R&D 투자 절대 비용이 큰 조직이니 만큼 신약개발의 부담감 혹은 좋은 파이프라인을 가진 관련 기업들을 M&A하는 것은 화이자가 1등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안고 가야 하는 리스크가 아닌가 싶습니다. 

 

화이자를 밀어내고 대신 편입된 암젠 같은 바이오텍들과의 경쟁도 문제죠. 화이자가 다우 지수에서 퇴출되고 암젠이 들어갔을 때 제약의 세대교체 아니냐 이런 말들도 많았거든요. 시가총액으로 보나 매출로보다 화이자의 규모에 못 미치는데 화이자를 밀어낸 건 바이오텍 회사가 미국의 주류 산업으로 인정받는 사건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조금 뇌피셜을 더해보면 구글 딥마인드가 단백질 접힘을 예측하는 알파폴드를 개발했다는 소식처럼 구글 같은 빅테크들이 인공지능으로, 3D 프린팅으로 바이오 제약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보니 IT 기업들이 자동차나 로봇 산업에 진출해 이종산업과 전통산업의 경쟁이 일어나는 것처럼  좀 더 격변의 시장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2020년 3분기 워렌 버핏 선생님이 가지고 계시던 화이자 주식을 다 파셨습니다. 아시죠. 10년 보유할 거 아니면 10분도 생각하지 마라고 하신 거요. 한 주도 안 남기고 다 파시다 보니 투자자들이  투자하려다가도 많이 망설였을 것 같은데요. 여전히 높은 배당성향, 기업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는 점, 코로나 백신으로 매출이 크게 늘 거라는 점 때문에 주식에 투자한 사람도 분명 있을 겁니다. 선택은 본인의 몫이겠지만요. 분명한 건 화이자의 긴 역사에서 살펴보듯 한순간에 이뤄지는 성과도 실패도 없다는 점입니다. 분명 지금 이 순간에 화이자가 내리고 있는 의사결정들이 미래 10년, 20년 후에도 영향을 미칠 거고요. 우리는 과거에 화이자가 가져온 방향성을 바탕으로 현재를 봤고 지금 화이자가 어떤 결정을 내리고 있는지를 보고 미래를 예측해볼 수 있겠죠. 150살이 넘은 기업인만큼 분명 이 역사 속에서 인사이트를 얻어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제일 궁금한 건 2000년대 고점에 산 투자자들이 ‘존버’의 결실을 누릴 수 있을지일텐데요. 화려한 2000년 이후로의 귀환이 2020년대에는 가능할 지 기대감을 가지고 지켜봐야겠네요. 오늘은 화이자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함께 살펴보고 싶은 미국 기업이 있다면 댓글로 많이 남겨주시고요. 화이자 한줄평도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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