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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서희 Nov 04. 2021

60세의 오늘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에 대하여


학교에서 중학교 1학년 아이들과 함께 자유학기 수업으로 "맛있는 글쓰기"라는 주제의 수업을 진행했던 적이 있었다. 

수업 이름 그대로 글쓰기를 배우고 훈련하는 시간이었다. 열네 살 아이들에게는 글을 쓰는 시간이 다소 괴롭고 힘들었겠지만, 나에게는 아이들의 글을 읽고 그 글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열네 살 중학생의 생각과 마음을 배워가는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했다. 


수업 첫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글의 주제 목록을 정하기 때문에 기수마다 쓰는 글의 주제는 조금씩 달라지지만, 모든 기수마다 예외 없이 꼭 쓰는 주제가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는 바로 "나의 스무 살”이다. 즉, 스무 살의 어느 날, 무엇을 하고 있으면 내 마음이 행복할까 상상하면서 스무 살 미래 일기를 써보는 수업이었다. 어른에게 6년 뒤는 그리 머지않은 미래이겠지만, 아마도 열네 살 아이들에게 6년 뒤 스무 살은 상상조차 되지 않는 아주 먼 미래일 것이다. 그렇게 먼 미래를 상상해보면서 글을 쓰고 그 글을 다른 친구들 앞에서 읽음으로써 오늘의 꿈을 갖도록 도와주고 지지해주고 싶어서 내준 주제였다. 아이들이 쓴 글을 하나하나 읽어보면서 때론 웃음이 나기도 하고 때론 안타깝기도 하면서 나 역시도 열네 살의 마음을 조금씩 배워갈 수 있었다.

 

어느 날 문득 궁금해졌다. 아이들에게는 스무 살을 꿈꾸고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난 과연 나의 미래를, 60세와 70세, 그 이후를 얼마나 준비하고 있나 하는 생각 말이다. 

늘 아이들에게 던졌던 질문인 "스무 살 오늘, 뭘 하고 있으면 행복할 거 같아? 그때로 가서 나의 스무 살을 관찰해볼까?" 이 질문은 나에게도 필요한 게 아닐까 싶었다. 

궁금함에 먼저 친구들과 동료들에게 그 질문을 던져보았다. 


"60세의 오늘, 뭘 하고 있으면 행복할 거 같아?”


제일 먼저 물었던 대상은 몇 년 전, 유방암 투병을 했던 친구였다. 지금은 완치되어 나보다 건강한데도 재발에 대한 걱정을 아직 떨치지 못한 듯 조심스레 대답했다.


"60세에 살아만 있으면 좋겠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말문이 막혔다. 

그 옆에 있던 친구는 오히려 "뭘 꼭 하고 싶어야 해? 난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데? 그냥 가만히 있어도 하루가 얼마나 빨리 가는데.”라고 되물었다. 

반면 어떤 동료는 "60세에도 교사이면 좋겠어요”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담담하나 단호한 태도가 멋졌다. 

어떤 이는 "지금 생각으로는 아무것도 안 하고 싶기도 하지만, 막상 그때가 되어서 아무것도 안 하면 너무 무기력해질 거 같아요. 뭐라도 소일거리를 할 수 있든지, 아니면 작은 카페를 하나 하고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대답했다. 

돈 많이 벌어서 맨날 여행 다니고 골프 치러 다니고 문화센터에서 배우고 싶은 거 배우면서 살고 싶다는, 백배 공감되는 대답을 내놓은 친구도 있었다.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러고 보니 지금부터 준비를 하긴 해야겠네요. 막상 60세가 되어서 그때부터 뭘 할까 고민하면 늦을 테니까요”라고 말한 동료도 있었다.


사실 난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고민인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몇몇 사람들의 대답에는 조금 놀라기도 했다. 솔직히 이 질문을 하면서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대답은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대답이 나올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업무가 과다하고 일상이 피곤하여 지금 당장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고 생각할 순 있어도 먼 미래를 상상하면서까지‘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꿈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에서 5단계는 자아실현의 욕구이니 모든 인간에게는 자아실현의 욕구가 있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었다. 

나처럼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사람이나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나 틀린 건 없으며 단지 다를 뿐이었다. 다른 사람도 다 나와 같을 거라고 여기는 게,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한 게 얼마나 위험하고 좁은 사고인지 반성했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으며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라는 걸 그렇게 또 한 번 깨달았던 시간이었다.


어쨌거나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문제인 나는 건강만 허락한다면 60세에도, 적어도 70세까지는 많든 적든 밥벌이의 기쁨을 경험하고 싶다. 정년까지 학교에 남아있어도 괜찮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작은 심리상담센터나 학습코칭센터를 운영해도 좋을 것 같다. 그때도 지금처럼 책을 쓰고 있으면 더없이 좋겠고, 친구들과 여행도 자주 다니면서 블로그나 브런치 같은 SNS를 통해 온라인에서의 소통도 이어가고 싶다. 

얼마 전 응시했던 청소년상담사 1급 자격증 시험도 이런 노후를 위한 작은 준비 중 하나였다. 물론 누군가의 말처럼 돈이 아주 많아서 늘 여행 다니고 문화센터에서 배우고 싶은 거 배우고 그렇게 사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일단 난 로또에 당첨되지 않는 한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며 또 설령 그렇다 해도 밥벌이는 했으면 좋겠다. 적어도 어영부영하다가 얼떨결에 60세를 맞이하고 싶진 않으니 지금부터 야무지게 미래를 준비해나가고 싶다.


그리하여 60세의 어느 날에도 70세와 80세의 어느 날 뭘 하고 있으면 행복할까를 꿈꾸면서 건강하고 에너지 200% 충전된 날들을 살고 싶다. 건강은 내 소관이 아니니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되 언젠가 아프게 되면 씩씩하게 잘 극복해보는 수밖에. 부디 큰 병은 조기에 발견하여 치료의 시기를 놓치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그러기 위해선 열네 살 중학생들에게 늘 얘기하듯 오늘의 시간을 촘촘히 아껴서 살고 미래를 구체적으로 상상하며 기대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60세에도, 70세에도 오늘과 같은 하루를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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