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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서희 Jul 22. 2023

난생 처음 탑차 시승기

여행과 출장, 그 사이 어디쯤


“이 출장이 수능 업무의 첫 관문일 거예요. 너무 피곤하면 끝나고 조퇴해도 괜찮아요. ”

선배 장학사들이 위로하듯 건네는 이야기들까지 더해지니 며칠 전부터 전쟁터에 끌려가는 학도병이 된 기분이었다. 대체 얼마나 힘든 출장이길래 많이 힘들면 끝나고 조퇴해도 된다고 말하는 건지 시작도 하기 전부터 긴장감이 몰려왔다. 


장학사가 된 첫해인 2022년, 나에게 주어진 주 업무는 수능이었다. 물론 그 외에도 여러 업무가 더 있었지만, 수능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업무였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지만‘수능’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압박감과 긴장감은 어마어마했다. 학교와는 전혀 다른 교육청 분위기에 적응하랴 맡은 업무를 파악하랴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느새 6월 모의평가 시즌이 되었다. 수능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이 치르는 첫 모의평가인 동시에 나에게도 본격적인 수능 시즌 전, 모의고사처럼 주어진 첫 시험이었다. 모든 업무가 수능에 준해서, 실제 수능과 동일한 절차로 진행되었다. 


모의평가 실시 이틀 전, 교육과정평가원에서 우리 교육청 담당 지역의 각 고등학교로 문답지를 배송하는데, 그 배송 작업에 책임자이자 관리자로 동행하는 게 나의 업무였다. 즉, 문답지가 가득 실린 3톤 탑차를 타고 지역 내의 고등학교들을 돌면서 해당 학교 수험생 수만큼의 문답지 박스를 내린 뒤, 학교의 책임자로부터 인수인계서를 받는다. 그 과정에서 보안이 잘 이루어지는지 점검하고 문답지 배송에 오류가 없도록 정확하고 꼼꼼하게 확인을 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아침 일찍 출발해서 점심 무렵이면 배송이 종료되지만, 하필 내가 근무하는 지역은 워낙 넓고 학교 수도 많아서 배송 시간이 훨씬 더 많이 소요되었다. 새벽 6시에 첫 학교를 시작으로 편도 50km가 넘는 거리를 달려 20개 가까운 학교에 배송한 뒤, 오후 3시가 넘어서 종료되는 강행군 일정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왕복 100km를 달리고 학교마다 문답지 배송이 정확하게 잘 이루어지는지 꼼꼼하게 확인해야 하니, 일정과 업무 운영 절차를 듣는 것만으로도 이미 체력이 바닥나는 느낌이었다.


드디어 문답지 배송일이 되었다. 

긴장된 마음으로 캄캄한 새벽에 집을 나와 새벽 6시가 조금 안 되어 첫 학교에 도착했다. 다행히 오래 기다리지 않고 탑차도 바로 왔다. 3톤 탑차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실제로 보니 상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거대했다. 문답지 배송은 둘째치고 나 같은 미니미가 차에 제대로 올라탈 수나 있으려나 걱정이 될 정도였다. 

오늘의 동행자는 머리가 희끗희끗하신 60대 탑차 기사님과 3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보안 업체의 직원, 그리고 나까지 총 세 명이었다. 셋이 나란히 탑차 앞 좌석에 앉았다. 좌석이 그리 좁은 건 아니었지만, 남자 둘 사이에 끼어 앉으려니 괜히 불편하고 신경이 쓰였다. 


무뚝뚝할 것 같았던 탑차 기사님은 의외로 무척 유쾌한 분이었다. 어색함을 깨고자 내가 이런저런 질문을 하자 기사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를 술술 풀어냈다. 어쩌다 이 탑차 운송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탑차 운송이라는 직업의 매력, 실제 수입 등 비하인드 스토리를 유쾌하고 신나게 전해주셨다. 잠시 쉬는 동안에는 탑차의 이런저런 기능을 자랑스레 소개해주고 차 아래쪽 은밀한 보관함까지 열어서 보여주시는 등, 탑차의 모든 걸 열정적으로 알려주시는 덕분에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난생처음 탑차를 타게 된 것도 신기하고 재미있었는데, 탑차 기사님의 살아온 이야기와 탑차 운송 세계의 여러 에피소드는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했다. 기사님과 쉼 없이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니 앞으로 내가 언제 또 이렇게 탑차 기사님과 오랜 시간 함께 이야기하며 낯선 세상을 엿볼 기회가 있을까 싶으면서 이 시간이 무척 소중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60대 어르신의 지나온 삶과 현재의 삶, 그리고 노후의 꿈을 듣는 건 그 인생의 궤적 자체에서 오는 귀한 가르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흥미로운 이야기는 함께 탑차를 탔던 보안 업체 직원인 30대 청년도 못지않았다. 대체 보안 업체가 무슨 일을 하는 회사인지 궁금해서 물어보니 주로 보디 가드, 즉 경호 업무를 한단다. 보안과 관련된 여러 업무를 하긴 하지만, 콘서트나 큰 행사를 할 때 경호를 맡는 게 가장 큰 업무라고 했다. 그가 맡았던 여러 콘서트 현장의 경호 업무 에피소드를 들어 보니 이 또한 탑차 업계 못지않은 낯설고 흥미진진한 세상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런 경호 업무 담당자와 이렇게 긴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탑차 기사님의 이야기에 경호 업무 에피소드까지 듣느라 오히려 시간이 부족할 정도였다. 


사실 좋았던 건 이야기뿐이 아니었다. 지역의 모든 고등학교를 다 돌아야 하니 도시 외곽 한적한 동네에 있는 학교까지 가야 했는데, 가는 길이 정말 예뻤다. 출장이라기보다는 마치 여행을 가는 기분이었다. 한적한 시골길을 달려 작은 학교로 향하는 길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평화로웠고 조금 설레기까지 했다. 기사님, 보안 업체 직원과 이야기를 하랴, 창밖의 풍경을 마음에 담으랴 눈과 귀가 내내 분주했다.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학교에 도착하면 높은 탑차에서 껑충 뛰어내려 문답지 박스를 내리고, 다시 높은 탑차에 힘들게 올라 차를 타고 가면서 아까의 이야기를 또 이어가고, 그런 사이클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오후 4시가 다 되었고 마침내 배송이 완료되었다. 


두 분과 아쉬운 인사를 나누고 난 뒤, 다시 교육청으로 돌아오자 동료들은 나를 반갑게 맞아주면서 종일 너무 고생했다며 위로의 덕담을 해주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나는 조금도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더 오래 탑차를 타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누군가에겐 피하고 싶을 만큼 고된 출장이지만, 적어도 나에겐 즐거운 소풍이었고 여행이었으며 더없이 유쾌하고 유익한 만남이었다. 

출장 덕분에 난생처음 탑차도 타보았고 탑차 운송이라는 낯선 세계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60대 어르신의 인생관에 존경을 표했고 30대 보안 업체 직원의 흥미진진 에피소드에 귀를 쫑긋 세웠다. 한없이 긴장된 수능 모의평가 문답지 배송 작업이었지만, 그것이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오히려 에너지를 주었음은 전적으로 새로운 세상, 낯선 사람에 대한 호기심 덕분이었다. 


그러고 보면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이토록 고된 출장도 즐거운 여행길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출장길에 나서기 전까지는 새벽부터 탑차를 타고 온종일 다니며 문답지를 배부할 생각에 출발 전부터 긴장이 되었지만, 알고 보니 그건 고되기는커녕 선물 같은 출장이었다. 

짐작하건대 이 경험은 앞으로 오랫동안 나에게 행복한 추억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p.s.

이 글을 써서 서랍에 넣어둔지 어느새 1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이미 한참 지나버린 이야기이고 올해는 다른 업무를 맡고 있지만, 그래도 그날의 그 느낌을 기억하고 싶어 뒤늦게나마 발행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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