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는 호기심이 견인하는 인생
대체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방학 때 떠날 여행을 준비하기 위해 간 서점에서 여행 서적 판매대를 살펴보다가 문득 홍콩 여행 가이드북이 눈에 들어왔다. 호기심에 펼쳐보니 홍콩에서 살았던 내 눈에는 책의 허술한 부분이 먼저 보였다.
'뭐야, 내가 이거보다는 더 잘 쓸 거 같은데. 내가 한 번 써볼까?'
지금 생각해봐도 대체 어디에서 나온 자신감이었는지 알 수 없다. 책을 써본 경험도, 책을 써보고 싶단 생각도 해본 적 없는 내가 왜 갑자기 홍콩 여행책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저 내가 사랑하는 홍콩을 사람들한테 제대로 알리고 싶다는 오지랖이었을 수도 있다. 당시에 난 홍콩에 대한 애정이 넘친 나머지 홍콩을 소개하는 개인 홈페이지를 열심히 운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다행히 남들보다 조금 늦게 서른 살이 넘어 시작한 교사라는 직업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었다.
일단 단순하게는 진로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게 좋았다. 회사에 다닐 땐 늘 습관처럼 구직 사이트를 들락거렸고 더 좋은 회사가 없는지 안테나를 쫑긋 세우고 살았는데, 이제 그런 고민은 할 필요가 없었다. 비록 회사원일 때에 비해 월급은 절반으로 줄었지만, 교사라는 직업이 주는 안정감과 즐거움은 줄어든 월급을 상쇄하기에 충분했다. 이런 단순한 이유 말고 학교가 진짜 재미있었던 건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 덕분이었다.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의 학교와 교사가 되어 만난 학교는 아예 다른 곳이었다. 선생님이란 존재가 어렵고 무섭기만 했던 예전과는 달리 지금의 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제집처럼 자유롭게 교무실을 드나들었고 선생님들과도 스스럼없이 잘 어울렸다. 학교도 달라졌고 교사도, 아이들도 달라졌다.
내가 처음 발령받은 학교는 비평준화 지역에서 성적이 꽤 우수한 편에 속하는 고등학교였다. 아이들은 나의 고등학생 시절보다도 더 착하고 순수했고 열정적이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게 이렇게까지 신나는 일인가 싶을 만큼 아이들은 나를 잘 따라주었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은 그야말로 매일 감동이었다. 아이들이 슬쩍 건네준 작은 쪽지 하나에도 감동했고 내 생일에 만들어준 짧은 축하 영상에도 울컥했으며, 청소 시간에 아이들과 나누는 시답잖은 농담마저도 즐거웠다. 거의 매일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퇴근했지만, 첫 학교에서 근무한 5년 동안 단 한 번도 월요병이 없었을 만큼 학교는 즐겁고 재미있었다.
교사 2년 차가 되자 선배 선생님들이 하루라도 빨리 대학원을 가라고 권했다. 그래도 석사 학위는 있어야 하지 않겠냐면서 말이다. 중국어만 잘 가르치면 되지 굳이 석사 학위가 있어야 하나 싶었지만, 그래도 선배 선생님들이 권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듯하여 바로 교육대학원에 진학했다. 야간에 대학원을 다니는 게 피곤하긴 했지만, 오랜만에 중국어를 다시 공부하니 나름의 재미도 있었다. 그렇게 적당한 부담과 적당한 자극과 적당한 지적 욕구 충족의 2년을 마무리하며 무사히 석사 학위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그야말로 딱 '학위'라는 타이틀을 얻었을 뿐 솔직히 남는 건 없었다. 만약 다시 시간을 되돌린다면 이 학위는 굳이 없어도 괜찮았겠다 싶을 만큼 말이다.
내가 뒤늦게 교사가 되었을 때 주변의 지인 중 많은 이들이 궁금해했다. 과연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교사라는 직업을 유지할까에 대해서. 아마도 내가 홍콩에 간 것도, 한국으로 돌아온 것도, 임용시험을 보겠다는 것도 워낙 충동적이었고 갑작스러웠기에 교사 역시 어느 날 갑자기 그만둔다고 할 것 같았나 보다. 물론 나 역시도 내가 과연 언제까지 교사를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직업과는 달리 학교는 이토록 즐거웠고 내친김에 중국어교육 석사 학위까지 받고 나니 이젠 드디어 내 인생이 안정기에 접어들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아무 일도 없는 안온한 일상을 이어갈 줄 알았던 내 삶에 또 새로운 일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래, 홍콩 여행책을 써야겠어! 근데 책을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당시는 홍콩에서 돌아온 지 3~4년쯤 지난 때여서 마침 홍콩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이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그러니 제대로 된 홍콩 정보를 정리해서 알리고 싶다는 어쭙잖은 의욕이 발동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홍콩 가이드북은 내가 누구보다도 잘 쓸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불타올랐던 걸까. 그도 아니면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 뭔가 기발한 이벤트가 간절히 필요했던 걸까.
이유야 어떻든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홍콩 여행책 집필에 대한 호기심은 빨리 이를 행동으로 옮기라고 내 등을 떠밀었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해야 책을 낼 수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이야 출판사마다 투고할 수 있는 창구가 공식화되어 있고 책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으며 SNS를 통해 나를 홍보하는 방법도 적지 않지만, 2004년 당시에는 그런 게 일반화되어 있지 않았다. 물론 당시에도 그런 창구가 있었을지 모르나, 난 출판 분야와는 전혀 친하지 않았기에 알 도리가 없었다. 결국 난 내가 할 수 있는 온갖 인맥을 다 동원하여 운 좋게도 출판사에 기획서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다행히 출판사로부터 생각해둔 목차와 기획서를 한 번 내보라는 답신을 받았다. 지금이야 책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이런 로또 같은 운은 기대할 수 없겠지만, 당시만 해도 나처럼 무모하게(?) 덤비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에 이런 기회라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홍콩에서 살았던 경험과 중국 문화에 대한 모든 지식, 그리고 1년여 동안 운영한 홍콩 여행 홈페이지에 정리해놓은 정보들을 총동원하여 최선을 다해 출간 기획서를 썼다. 홍콩 친구들에게도 SOS를 보내 소소한 자료들까지 꼼꼼하게 참고했다. 사실‘출간 기획서’라고 쓰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에는 기획서를 쓰는 법조차 몰라서 내가 아는 홍콩의 모든 정보를 정리한 열정 폭발 문서의 수준이었다.
비록 기획서라고 부를 수도 없는 형식이었지만, 나의 간절함과 열정이 편집자에게 전해졌던 것일까. 책 낸 경험 없는 초짜 아마추어의 기획서는 거짓말처럼 채택되었고 그로부터 만 1년 뒤, 드디어 나의 첫 책인 『아이 러브 홍콩』이 세상에 나왔다. 꼬박 1년여의 시간 동안 퇴근 후의 시간과 주말, 그리고 방학을 오롯이 책 쓰기에 바쳤다. 내가 글쓰기를 이렇게 좋아했었나, 스스로가 낯설게 느껴질 만큼 글쓰기는 재미있었다. 하루 12시간 동안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책상 앞에 앉아서 밥 먹는 시간조차 아까워하며 글을 썼지만, 조금도 힘들지 않았다. 뭔가를 이렇게까지 좋아하며 완벽하게 몰입한 건 태어나 처음이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이 첫 번째 책이 소위 대박을 내준 덕분에 나에겐 교사만큼이나 소중한 부캐가 생겼다. 바로 여행작가라는 직업 말이다.
만약 내가 책을 내고 싶다는 호기심에서 멈췄더라면 여행작가의 부캐는 얻지 못했을 것이다. 호기심을 무기 삼아 무모하지만 도전했고, 열정 덕분에 운 좋게 기회를 얻었으며 덕분에 내가 글쓰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숨어있던 흥미와 재능까지 발견하게 되었으니, 이야말로 호기심이 가져다준 기적 같은 나비 효과가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무모한 도전이란 없다. 작은 관심이라도 일단 그 관심이 주는 에너지로 한 발만 내디디면 새로운 길이 보일 테니까. 설령 그 길이 내가 계획한 방향과 조금 달라도 괜찮다.
한 번뿐인 인생, 수많은 시행착오 경험이 쌓여서 나의 전성기를 만들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