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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서희 Sep 20. 2023

직업으로서의 여행작가, 좋을까?


코로나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점에서는 하나둘씩 여행 서적 매대가 사라졌다. 

해외여행이 막혔으니 여행서가 팔리지 않는 게 당연하고, 팔리지 않는 책을 매대에서 철수시키는 것도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여행 서적 매대의 철수는 꽤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당연히 내가 쓴 여행서도 더는 판매되지 않고 코로나의 무거운 기운에 눌려 고스란히 쌓여 있었다. 

책이 팔리지 않으니 인세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나마 나는 다른 직업이 있으니 인세가 들어오지 않는 게 서운하긴 해도 당장 먹고사는 데는 큰 지장이 없었다. 문득 내가 알고 있는 전업 여행작가들의 소식이 궁금해졌다. 여행이 멈췄으니 책도 팔리지 않고 강의 의뢰도, 원고 청탁도 들어오지 않을 텐데, 요즘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괜한 오지랖으로 걱정이 되었다. 여행작가라는 직업이 경제적인 면에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겠구나 비로소 실감이 났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인상적인 뉴스 기사를 읽었다. 요즘 2030 세대는 직업을 선택할 때 적성보다는 시간과 연봉을 더 중요시한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적성에 맞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기보다는 퇴근 시간, 휴가 등 주어진 권리를 자유롭게 쓸 수 있어 삶의 질을 보장해주는 직업, 그러면서 동시에 연봉이 많은 직업을 찾는 경향이 뚜렷하단다. 즉, 적성보다는 시간, 시간보다는 연봉을 중시한다는 의미였다. 

사실 생각해보면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그런 일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극소수의 직업을 제외하고는 월급도 많이 주고, 개인 시간도 충분히 주는 일이란 존재하기 힘들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므로 월급을 많이 주면 그만큼 근무 강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결국은 적성과 개인 시간, 연봉, 이 셋 중에서 하나만 충족된다면 적어도 그 직업을 유지할 만한 동기 부여는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몇 년 전, 자율연수 제도를 이용해 1년간 무급 휴직을 했던 적이 있었다. 휴직 기간에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은 나에게 물었다.


"무급 휴직이어도 넌 걱정 없잖아. 인세가 나오니까."

"그냥 교사 그만두고 아예 여행작가로 나서도 되는 거 아니야? 뭐 하러 힘들게 교사를 해?"

"취재 가는 비용은 다 출판사에서 대주는 거 아니었어?"


처음에는 그냥 웃어넘겼는데, 다들 예외 없이 이런 이야기를 하니 그때마다 매번 여행작가의 현실을 말해주느라 나중엔 아예 모범 답안을 외울 정도였다. 이런 질문이야말로 여행작가에 대한 사람들의 핑크빛 환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여행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걸까 싶기도 했다. 


사실 전업으로 여행작가를 한다는 건 일단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할 수도 있음을 감수해야 한다. 

물론 전업 여행작가 중에서도 회사원 월급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경우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건 여러 권의 여행서를 쓰고, 그게 모두 꾸준한 판매를 유지하고 있으며, 관련 강의도 자주 하고 여러 매체에 꾸준히 기고도 하는 소수의 여행작가에 국한된 경우다. 

나 역시도 지금껏 출간한 책 중에서 두세 권은 꽤 높은 판매율을 기록했지만, 그래도 여행작가를 메인 직업으로 삼을 자신은 없다. 만약 직업으로 책을 쓴다면 아무래도 판매량과 취재 비용의 가성비에 민감할 수밖에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여행하듯 편안하게 취재하고, 투자 비용(?)은 생각하지 않으면서 여유롭게 다니고 충분히 먹고 충분히 경험하긴 어려울 것이다. 또한 책 판매량에도 신경이 많이 쓰일 테니 판매량에 일희일비하는 건 당연한 일일 듯. 무엇보다 지금은 판매 전망이나 실적 등은 크게 고려하지 않은 채 내가 좋아하는 여행지만 선택하여 출간했지만, 만약 전업으로 일하게 된다면 나의 취향만을 고집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여행작가는 돈보다는‘적성과 여행을 좋아하는 마음, 자유로운 개인 시간 보장’이라는 매력으로 선택하는 직업인데, 나는 그러기엔 지나치게 현실적인 인간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여행작가라는 직업은 글 쓰는 걸 좋아하되, '안정적이고 높은 연봉'만 포기한다면 꽤 매력적인 일인 건 분명하다. 개인 시간이 자유롭고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으며 여행도 많이 다닐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또한 프리랜서의 범주에 속하는 일이므로 고정적인 수입이 보장되지 않는 불안함은 스스로 감수해야 할 일이다. 

돌이켜 보면 나는 1년간 휴직을 하면서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나는 혼자보다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좋아하고 생각보다 조직 생활을 꽤 좋아하며 많진 않아도 꼬박꼬박 월급 나오는 밥벌이를 좋아하는, 자유롭되 조직 안에서 자유롭고 싶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메인 직업과 책 집필을 병행하느라 책을 쓸 때는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서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야 하지만, 그래도 늘 꿈을 꾼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교육계에서 즐겁게 일하면서 책만큼은 큰 욕심 내지 않고 여유 시간을 야무지게 잘 활용하여 내가 쓸 수 있는 만큼만 좋아하면서 쓰면 좋겠다.


적성보다는 시간과 연봉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20대. 그들의 생각이 충분히 이해되면서도 안타까운 건 시간과 연봉 때문에 적성을 포기해야 하는 현실이다. 나 역시도 시간과 연봉보다 적성이 더 중요하다고 감히 자신할 순 없지만, 적성을 포기하기엔 우리가 일터에서 보내는 시간과 에너지가 너무 많다는 생각도 든다. 직업이란 하루의 시간 대부분을 투자해야 하는데, 적성에 맞지 않는 직업으로는 오래 일하기도 어렵고 행복하기도 어렵지 않을까. 물론 월급을 아주 많이 준다면 괜찮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어떤 선택을 하든지 직업을 찾기 전에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시간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결국 의지력과 독립심 약한 나는 앞으로도 여행작가는 직업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부캐로만 남겨두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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