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기준은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제목을 먼저 볼 테고 누군가는 작가가 누군지를 볼 것이다. 목차를 꼼꼼히 보는 사람도 있고 책의 디자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며 글씨 크기나 책의 두께가 중요한 사람도 있다. SNS에 소개된 책 속의 한두 문구에 반해서 주문하는 이도 적지 않다. 그 외에도 소설만 읽는다든지, 술술 읽히는 에세이만, 지식의 틀을 넓혀주는 인문학 도서나 역사서만, 혹은 짧은 시집만 읽는 등, 장르별 편애가 뚜렷한 사람도 종종 보인다. 정해진 기준 없이 그저 그 당시의 느낌에 따라 끌리는 책을 집어 드는 사람도 있다.
나는 꽤 신중하게 책을 고르는 편이다.
일단 처음엔 제목을 보고 관심이 생기지만, 그것만으로 책을 사진 않는다.
먼저 작가가 누군지 작가의 이력을 꼼꼼하게 본 뒤, 목차를 살펴본다. 그리고 서두에 있는 작가의 말 따위의 프롤로그를 읽고 SNS도 잠깐 검색해본다. 책이 너무 얇아서 금세 다 읽어버릴 것 같거나 너무 두꺼워서 읽기에 부담스럽지도 않아야 하며. 이왕이면 표지 디자인도 촌스럽지 않은 게 좋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몇 쇄를 찍었는지, 출판사는 어디인지까지 다 찾아보고 나서야 비로소 구입 여부를 결정한다.
이 모든 절차가 다 중요하지만, 그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중요한 기준을 꼽으라면 ‘작가’이다. 심지어 신간이 나오면 이 모든 과정을 생략한 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주문부터 하는 최애 작가 리스트도 있다.
이처럼 믿고 사는 최애 작가가 아니어도 서점에서 책을 고를 때 가장 공을 들여 살펴보는 부분이 바로 작가가 누구인지이다. 책을 집어 들면 가장 먼저 책의 앞날개나 뒷날개에 붙어있는 작가 소개란을 펼쳐서 어떤 이력을 가진 사람인지, 지금까지 어떤 책을 썼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꼼꼼하게 읽어보곤 한다. 내 소중한 시간을 들여서 책을 읽는 건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작가의 글이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SNS의 글을 대충 짜깁기해서 휘리릭 완성한 책을 읽고 싶진 않으니까.
하지만, 여행서는 다르다.
여행 정보서를 고를 때 작가가 누구인지,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히려 그보다는 어느 출판사의 시리즈인지, 여행 정보가 얼마나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는지, 정보를 찾아보기 쉽게 편집이 잘 되어 있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이 책을 누가 썼는지보다는 어느 출판사가 만들었는지가 더 중요한 셈이다. 작가보다는 정보, 편집 구성, 사진, 디자인 등이 훨씬 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심지어 작가의 필력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
사실 책을 고를 때, 소설은 말할 것도 없고 에세이나 인문학 교양서에서도 작가의 필력은 매우 중요한 매력 포인트가 되곤 한다. 별것 아닌 소소한 일상 이야기도 작가의 필력에 따라 격한 공감을 불러일으키곤 하니 말이다. 반면 여행서, 그중에서도 여행 정보서를 고를 때 작가의 필력을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수려한 필력보다는 짧고 간결하게 정보만 제시하는 걸 더 선호하는 독자도 많다. 아예 책을 고르면서 작가의 이름조차 확인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으니 조금은 서운하기도 하다.
“저는 신서희라고 합니다. 여행서를 쓰고 있어요.”
“그러시구나. 무슨 책을 쓰셨어요? 서점에서 파는 책인가요?”
“그럼요. 최근에 쓴 책은『디스 이즈 타이완』입니다.”
“네? 그 책을 쓰셨다고요? 어머!! 저 대만 갈 때 그 책 샀었어요!”
실제로 처음 만난 자리에서 내가 여행서를 썼다고 말해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지어 서점에서 파는 책을 쓴 거냐고 되묻는 사람도 종종 있다. 하지만, 내가 쓴 책 제목을 얘기하면, 설령 그 책을 몰라도 인터넷으로 검색해보고 나면 다들 그 책을 쓴 사람이 당신이냐며 신기해한다. 15년 넘도록 여러 권의 여행서를 썼고 그중 몇 권은 꽤 오랫동안 여행서 베스트셀러 순위를 지켰지만, 그 책을 누가 썼는지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유명해지기 위해서 책을 쓴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무도 내가 쓴 책의 작가를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건 솔직히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글보다는 정보가 중요한 여행서의 특성 역시 작가가 궁금하지 않은 요인 중 하나일 것이다.
다른 여행작가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책을 쓸 때 정보의 정확성만큼이나 글 자체에 공을 많이 들이는 편이다. 어떤 곳을 소개할 때 나의 마음과 느낌을 최대한 생생하고 멋지게 표현하기 위해 애를 쓴다. 그래서 나의 이런 마음이 독자에게 잘 전해져서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호기심과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면 좋겠다. 정보의 정확성을 확인하는 건 기본이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이를 어떻게 하면 글로 상상하듯 표현해낼 수 있을지 고민을 거듭한다. 그 누구보다 그곳을 글로 잘 표현해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필력이 따라주어야 하니 작가로서의 필력을 높이는 게 늘 가장 큰 숙제이자 고민이다. 필력을 높이기 위해 글쓰기 책도 자주 읽고 각종 글쓰기 강좌도 부지런히 찾아다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의 이런 바람과 고민이 여행서를 구입하는 독자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여행서를 에세이 읽듯 꼼꼼하게 읽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 말이다. 한 마디로 나의 고민과 독자의 필요가 맞닿지 않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서를 쓰는 일은 재미있다.
책 한 권을 완성하기까지는 산고의 고통을 겪는 것처럼 눈물 나게 힘들지만, 일단 책이 출간되고 서점에 깔린 걸 보면 산고의 고통 따위는 까맣게 잊고 책이 나왔다는 뿌듯함만 가득하다. 극한의 고통과 극한의 행복을 연달아 맛보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단, 바라기는 독자들이 이 책을 보면서 “이 책은 누가 썼을까?” 궁금해하면 좋겠다.
책에 소개된 정보만 보지 않고 글 자체를 읽어주면, 글이 주는 힘으로 그곳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면, 그리고 글을 쓴 사람의 마음에 공감해주면 좋겠다.
정보를 다루는 책이긴 하지만, 여행서도 분명히 글이 있는 책이니 말이다.
다른 장르의 책과 마찬가지로 여행서도 작가가 궁금한 책으로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날을 꿈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