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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서희 Aug 24. 2020

심리검사가 주는 위로

이해와 지지와 격려가 필요한 사람들


"남들 앞에 나서는 걸 무척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나댄다는 평가를 받고 싶지는 않고 무엇보다 나설 만한 '명분'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소심하다는 평가와 활발하다는 평가를 동시에 받는다."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10년 묵은 체증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얼마 전 한 심리검사 워크숍에 참가했는데, 프로그램 중 검사 결과에 대한 유형별 해석 강의 시간이 있었다. 강의에서 다룬 내용 모두 흥미로웠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속한 유형을 해석하는 시간에는 귀를 쫑긋 세우고 단 한 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집중했다. 유형 해석을 듣는 내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으며 그중에서도 위의 이야기는 정말 눈물이 날 만큼 반가웠다. 

다른 사람들이야 당연히 모르고, 어쩌면 나 자신조차도 잘 몰랐던 내 성향의 심연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나는 공식적인 회의에서든 사적인 모임에서든 절대 먼저 나서서 발표하진 않지만,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고 발표하는 건 매우 좋아하는 터라 위의 해석대로 양극단의 평가를 동시에 받곤 했다. 대체 나는 왜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그토록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렇게 한없이 소심할까 나 자신도 내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심리검사의 결과가 나의 이런 양면적인 부분을 핀셋처럼 콕 집어서 발견해냈고 그 이유까지 명쾌하게 설명해준 것이다. 마치 네가 이상한 게 아니라고 안심시켜주는 것처럼 말이다.


지난 10년 가까이 대학원에서 교육심리와 상담심리를 공부하면서 마치 교양 강좌처럼 재미있었던 분야 중 하나가 바로 심리검사였다. 

관심이 가는 몇몇 심리검사는 대학원 수업 외에도 관련 워크숍과 자격증 코스까지 부지런히 찾아다녔다. 이제는 국민 심리검사가 되다시피 한 MBTI를 비롯하여 지능검사, 기질 검사, 애니어그램, 진로탐색검사, 학습심리검사 등 다양한 종류의 심리검사를 공부했다. 마음 같아서는 내친김에 임상 심리사 자격증 취득까지 도전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임상 심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공부 외에 적지 않은 임상 경력을 쌓아야 했기에 상담을 직업으로 삼지 않은 나는 임상 심리사 자격증 취득까지는 무리였다. 비록 현실적으로 자격증은 취득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심리검사 공부는 무척 흥미로웠고 때로는 유익하기까지 했다. 


신기한 건 심리검사의 결과 해석을 듣다 보면 사람에게서 받지 못했던 진심 어린 위로와 지지를 경험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아무도 몰라주었던 '진짜 나'의 깊숙한 부분까지 알아주고 '이런 너여도 괜찮아. 잘하고 있는 거야'라고 토닥토닥해주는 느낌이랄까. 친구가 공감해주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공감을 심리검사의 해석으로 경험하는 기분이었다. 

상담이나 치료적 목적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검사는 예외이겠지만, 일반적인 성향, 기질 등을 알아보는 검사가 가진 이런 위로와 지지의 기능은 강력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때의 심리검사는 공인된 기관에서 실시하는 공인된 검사여야 하며 단순 결과 해석이 아닌, 이를 주제로 한 집단 워크숍이 동반되어야만 정확한 검사 결과와 함께 이런 심리적 지지와 위로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사람이 아닌 검사 도구를 통해 이런 위로를 받는다는 게 조금 씁쓸하기도 하다. 

사실 나이를 먹을수록 친구의 중요성을 절감하지만, 내 맘 같은 친구를 만나기란 점점 더 쉽지 않다. 다들 삶도 분주하고 저마다의 고민도 많기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기도 어렵다. 꽤 친하다고 생각해온 사이에도 생각 없이 던진 말 한마디에 마음이 상하고 약속을 가벼이 여기는 듯한 무심한 태도에 실망하다 보면 평생 만나겠다고 자신할 수 있는 친구의 수가 갈수록 줄어드는 것 같아 문득 쓸쓸해지기도 한다. 

그러니 서로를 잘 알고 마음도 잘 통하는, 소위 영혼의 짝꿍 같은 친구가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축복일 것이다. 어쩌면 내 맘 같진 않아도 적당히 잘 맞고 내 얘기에도 적당히 귀 기울여주는 친구가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일지 모르겠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친구가 된다는 게 쉽지 않을 테니 말이다. 재테크가 아니라 우(友)테크가 중요하다는 말이 괜한 얘기가 아닐 것이다. 

갑작스럽게 닥친 코로나19를 계기로 자연스럽게 정리되는 관계도 생겨나고 혼자서 노는 법을 고민해보기도 한다. 혹시 이러다가 외로운 노후를 보내게 되는 건 아닐까 슬며시 불안해질 무렵, 오래간만에 들은 심리검사 워크숍에서 이토록 따뜻한 위로와 지지를 받게 될 줄은 몰랐다. 

남들은 잘 모르는, 어쩌면 나 자신도 이유를 잘 몰랐던 나의 내밀한 마음과 무의식적인 의도까지 알아주면서 이대로도 괜찮다고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덕분에 자존감도 자신감도 풀 충전되었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는 모두 이해와 지지, 그리고 격려가 필요하다.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로 울컥해지기도 하고 집 나간 자신감이 순식간에 돌아오기도 한다. 예상치 못한 세심한 배려나 오래간만에 걸려온 전화 한 통에 마음이 포근해지기도 한다. 그것이 가까이에 있는 내 친구면 더없이 좋겠지만, 때로는 이처럼 심리검사의 냉철한 해석이나 우연히 읽은 책의 문장 한 구절이기도 하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떤 방법으로든 이해받고 격려받고 지지받을 수만 있다면 그 힘으로 오늘을 또 살아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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