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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서희 Sep 08. 2020

느슨한 관계과 강한 관계의 균형

모임 하나를 마음에서 접었다.


그들과의 인연은 여기에서 끝내자고 마음을 먹었다. 

10년이 넘게 이어온 모임이었지만,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자연스레 모임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옛 직장 동료들 다섯 명이 두세 달에 한 번씩 만나 공연도 보고 가끔은 가까운 곳으로 1박 2일 주말여행도 가는 모임이었다. 그들 중 절반 정도는 많이 내향적이고 덜 사교적인 성격이었기에 만난 세월의 길이에 비해 썩 친한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오래 본 사이이니 표현은 안 해도 나름의 정은 쌓였을 거로 생각했다. 아니, 그럴 거라 애써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동안도 그들의 무심함에 서운한 적이 더러 있었으나 그렇다고 오래 이어온 모임을 깨긴 아까워 계속 모르는 척 공을 들여왔던 것도 같다. 

그런데 2020년 초반 코로나19의 시작과 동시에 모임은 중단되었고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연락을 끊었다. 

상황이 조금 나아졌으니 잠깐 얼굴이라도 보자는 나의 제안에도 다들 번번이 안전을 이유로 거절했다. 

만나는 걸 조심스러워하는 마음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잘 지내고 있냐는 따뜻한 안부 인사조차 오가지 않는 냉랭한 단톡방 분위기에 내 마음도 조금씩 닫혀갔다. 

그들 중 유일하게 친한 친구와 이 모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지금껏 내가 매번 먼저 연락해서 약속을 잡고 장소를 예약하는 등의 소소한 노력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이 모임은 진작에 끝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말이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읽었던 기사가 생각났다. 일본의 어느 소도시에 70~80대 어르신 7명이 아파트 한 동에 각자 따로 집을 구해서 살면서 자립과 공생을 실천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그들은 누군가 집을 비우면 대신 베란다의 화분에 물을 주기도 하고 급히 필요한 게 있으면 빌려주기도 하면서 그렇게 느슨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립과 공생을 중요하게 여겨서 서로 아플 때 위급한 상황인지 살펴주기는 하지만, 병간호는 해주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단다. 간병은 전문 기관에 맡기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독신 여성으로 비혼자도 있지만, 이혼, 사별 등 다양한 이유로 현재는 혼자 살고 있는 여성 노인이라고 했다.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어느 시점에서는 결국 혼자가 될 테니 이런 삶의 방식은 우리도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할 것이다. 기사에서는 이런 느슨한 인간관계를 가리켜 '노후를 대비한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이라고 표현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행복하기 위해서는 정기적으로 만나는 모임이 최소 8개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친구들과 농담처럼 한 적이 있다. 정기적으로 만나는 이런 모임은 '느슨한 인간관계'를 대변해주는 지표 중 하나일 것이다. 아주 내밀한 사적 영역까지 공유하고 마음을 깊이 나눌 수 있을 만큼의 친밀한 사이는 아니지만, 정기적으로 서로의 안부를 챙겨주고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만나면 즐겁고 든든해지는 관계가 바로 이런 느슨한 인간관계일 테니까. 비록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바로 달려올 만큼의 의리까지는 아니어도 그 순간만큼은 따뜻한 말로 힘이 되어주고 위로해줄 수 있는 정도의 친밀함 말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느슨한 인간관계' 맺기를 추구하는 분위기가 점차 강해지고 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을 깊이 오픈하지 않고 서로의 생활에 관여하지도 않되, 외롭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친밀함만 유지하는 관계를 선호한다. 서로를 깊이 알고자 하지 않고 오로지 취향만을 공유하는 모임 형태도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관계가 느슨한 인간관계로만 이루어진다면 그 또한 건강한 삶은 아닐 것이다. 소수여도 누군가와는‘강한 인간관계'로 묶여있어야 한다. 아플 때 병원도 같이 가주고 속상한 일이 있을 때 앞뒤 재지 않고 바로 달려와서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관계, 망설임 없이 도움을 청하고 기꺼이 폐를 끼칠 수 있는 관계, 서로의 마음을 궁금해하는 관계가 바로 강한 인간관계일 것이다. 그 수가 굳이 많을 필요는 없겠지만, 아니 현실적으로 많기도 어렵겠지만, 소수여도 이런 강한 관계의 끈이 있다면 내 삶이 훨씬 더 따뜻해지고 안전해지리라. 

그런 의미에서 나이가 들수록 건강만큼이나 필요한 게‘적당한 돈'과 내 옆에 있는‘사람’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결혼하지 않은 싱글에게는 가족을 대신할 수 있는, 거의 가족 같은‘내 옆의 친구’가 절실하다. 그러니 이를 위해서는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고 내 마음을 궁금해하는 소수의‘강한 인간관계'와 자립하는 강한 개인이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느슨한 인간관계’를 모두 잘 준비해두어야 할 일이다.


사실 인간관계란 느슨하든지 강하든지 오랜 시간 동안 마음을 쓰고 공을 들이면 결국 진심이 통할 거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10년 넘게 이어온 그 모임을 이제 (내 마음에서) 접기로 하면서 아무리 마음을 쓰고 공을 들여도 안 되는 관계도 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 모임은 강한 관계도, 느슨한 관계도 아니었다. 아무리 느슨한 관계라 해도 그 안에 진심을 담은 소통이 없다면 그 관계는 더 이상의 존재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로써 노후에 외롭지 않기 위한 보험 같은 모임 중 하나가 줄어들었다. 오랜 시간 동안 공들였던 나의 노력이 결국 헛수고로 끝난 것 같아 씁쓸하지만, 그래도 이제 그 마음을 지금 내 옆에 있는 느슨한 관계와 강한 관계에 더 많이 주리라 다짐해본다. 무엇보다 사람을, 관계를 귀하게 여길 줄 아는 마음을 잊지 않고, 또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키우고 싶다. 


나는 여전히 관계 속에서 연결감을 경험하면서 행복해하는 관계지향적인 인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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