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가 반갑지 않다
친한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평소 관심 있게 봐오던 소셜 플랫폼에서 서포터즈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올라왔으니 같이 지원해보자는 연락이었다.
우린 둘 다 블로그를 꽤 열심히 하는 블로거인데다가 그 플랫폼과 컨셉이나 성향도 잘 맞을 것 같아서 지원하면 뽑아줄 거라는 응원도 잊지 않았다.
사실 그 소셜 플랫폼은 나 역시도 기회가 되면 한 번쯤 참여해보고 싶은 마음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던 차였기에 서포터즈 모집 소식은 무척 반가운 뉴스였다. 마침 그 날이 접수 마감일이었기에 하던 일도 멈춘 채 부랴부랴 신청서를 작성하고 신청에 필요한 미션까지 수행하여 일사천리로 신청을 끝냈다. 마감 당일에 공지를 발견하다니 운이 좋았다며 서로 자축까지 했다.
발표도 나기 전에 이미 서포터즈로 활동을 시작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런 기대가 무너지는 데는 하루가 채 걸리지 않았다.
다음 날 그 플랫폼을 꼼꼼히 들여다본 순간 내가 왜 덥석 서포터즈를 지원했을까 후회가 밀려왔다. 언뜻 보았을 때는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그 플랫폼을 주도하는 건 20~30대였다. 물론 40대 이상, 많게는 60대까지도 참여하는 사람이 있긴 했지만 그건 극히 일부였고 활동하는 대다수는 20~30대들이었다. 그러니 내가 참여하는 건 아무 문제가 없어도 서포터즈로 뽑힐 리는 만무했다.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은 채 공고를 보자마자 앞뒤 재지 않고 서포터즈에 지원한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무슨 일이든 승산이 있어야 도전하는 법인데, 난 어쩌자고 이렇게 무작정 덤벼들었나 헛웃음이 나왔다.
며칠 뒤, 결과가 나왔다. 예상했던 대로 나는 떨어졌고 나와 함께 지원한, 나보다 한참 어린 동생은 합격했다. 어마어마한 경쟁률이었다는 인사성 멘트를 덧붙인 불합격 통보 문자는 더없이 친절했지만 단호했다.
물론 그 서포터즈는 나에게 딱히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기에 떨어졌다고 해서 특별히 서운할 건 없었으나 문득 내 마음이 아직 20대인 게 조금 서글퍼졌다. 나는 여전히 하고 싶은 것도, 배우고 싶은 것도 많지만 나의 사회적 나이는 그걸 가감 없이 받아들여 주기에는 제약이 너무 많았다. 어렸을 적 어른들이 뭐 하느라 시간이 이렇게 가버렸나, 야생적인 시간의 흐름에 탄식하던 마음이 이제야 비로소 이해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도 신체 나이와 함께 늙어간다면 그 또한 유쾌하지만은 않겠지만, 한편으로 이렇게 때때로 내 나이를 잊은 채 20대처럼 도전하려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도 씁쓸해지는 일이다.
오스트리아의 작가 장 아메리가 쓴『늙어감에 대하여』에서는‘사회적 연령’이란 타인의 시선이 우리에게 측정해주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앞뒤 재지 않고 서포터즈에 지원한 무모함에 대한 후회, 어느 날 병원에서 ‘아줌마’도 아닌 ‘어머님’이라고 불리는 순간에 찾아오는 열패감, 필라테스 수업에서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 근거 없는 소외감 등은 모두 이런 사회적 나이로부터 오는 심리적 위축일 것이다. 어느 곳에서든 내 나이를 굳이 밝히고 싶지 않고 동안이라는 칭찬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보면 나 자신도 사회적 나이에 민감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중년의 품격’이란 말로 나이 듦을 멋지게 포장해보기도 하지만, 결국 중년이라는 나이가 반갑지 않은 건 분명한 사실이다.
만약 내가 결혼을 해서 현재 엄마의 자리에 있다 해도 신체 나이와 마음 나이의 간극에 이토록 민감했을까. 그 자리에 있어 보지 않아 단정 지어 말하긴 어렵지만, 짐작하건대 지금보다 정도는 덜할지 몰라도 그런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얼마 전, 대학교수인 친한 언니와 만난 자리에서 언니가 농담처럼 웃으며 말했다. 요즘 심리학에 관심이 생겨서 박사 과정에 지원해볼까 고민을 하다가 문득 자신의 나이가 생각나서 마음을 접었단다. 이미 박사이자 대학교수이고 엄마이기도 한 그녀가 문화센터 교양 강좌도 아닌 무려 박사 과정을 다시 시작해볼까 생각했다는 게 놀라웠다. 그리고 반가웠다. 마음 나이와 신체 나이의 간극이 큰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반가웠고, 내가 비혼이기 때문에 그런 간극을 느낀 게 아니라는 걸 검증받은 것 같아 안도했다.
누군가는 박사 과정을 하나 더 하고 싶다는 언니나 소셜 플랫폼 서포터즈에 지원하는 나를 무모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럴 수 있는 마음이 난 좋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해가 되지 않는 마음이라면 나이와 상관없이 무엇이든 기꺼이 꿈꾸는 마음을 응원하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의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추고 싶고 지금보다 딱 10년만 젊어지고 싶지만, 냉정한 시간은 지금 이 순간에도 격렬하게 속도를 내고 있다.
시간의 이런 속도에 반기를 들 듯 여전히 해보고 싶은 일은 많고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도 계속 생겨난다. 그러나 나이 든 사람을 그리 반기지 않는 우리 사회에서 마음의 나이대로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아마도 20~30대들이 주를 이루는 플랫폼의 서포터즈에 지원했다가 스스로 흠칫 놀라 자책하는 일이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그래도 할 수만 있다면 사회적 나이 따위는 무시하고 마음의 나이대로 살아가고 싶다.
사회에서 요구하는‘중년의 품격’은 지키되 70대에도 20대의 꿈을 꿀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 나이에 무슨...’의 시선에 움찔하지 않고 내 마음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마음의 면역력이 절실하다.
우리 사회의 낀 세대인 4050 중년의 마음 나이 회춘을 조용히 응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