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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서희 May 29. 2024

교권 침해와 교육활동 침해

학생인권과 교권이 함께 하는 교육활동 보호

작년 서이초 사건 이후 학교 현장에는 적지 않은 변화가 시작되었다.

초중등교육법, 교원지위법을 비롯한 교육 관련 법령이 빠르게 개정되었고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에 대한 문제 제기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아동학대 사안에 대한 교육감 의견서 제출 단계가 추가되었고, 정당한 교육활동에 대한 보호자의 협력, 존중의 의무 조항도 초중등교육법에 신설되었다.

이런 일련의 변화 중 하나가 바로 교권보호위원회 이관이다.

교원지위법 개정으로 지난 2024년 3월 28일, 학교 교권보호위원회가 교육청으로 이관되었다. 작년까지는 교사가 교육활동 침해 신고를 하면 학교에서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 심의를 했지만, 2024.3.28. 이후로는 각 지역교육청에서 해당 사안에 대한 교권보호위원회를 개최하여 침해 행위 여부를 심의하게 된 것이다.


교권보호위원회가 각 지역교육청으로 이관된 지 2개월이 지났다.

작년과 비교하면 교육활동 보호에 대한 교사들의 인식과 관심, 이해도가 많이 높아졌다. 그만큼 민감도도 높아졌다. 예전에는 말썽꾸러기 학생들을 어떻게든 학교에서 끌어안고 지도하느라 애를 써야 했지만, 이젠 교권침해로 신고하는 비율도 크게 늘어났다.

예전에는 교내에서 생활교육위원회(과거의 선도위원회)를 통해 학생에게 징계 조치를 내렸지만, 최근에는 생활인권규정 위반 사항과 교육활동 침해 사항을 세밀하게 구분하여 교권침해로 신고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생활지도를 따르지 않는 학생에게 "너 이거 교권침해야. 한 번만 더 그러면 교권침해로 신고한다"고 경고하는 교사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한편, 이를 학생인권과 교권의 대립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학생인권과 교권은 정말 반대되는 개념일까? 둘 중 하나를 강조하면 다른 하나는 버려야 하는 걸까?

교권침해와 교육활동 침해의 차이는 바로 이런 질문에서 출발한다.

교권보호위원회에서 심의하는 것은 '교권침해'가 아닌 '교육활동 침해' 여부이기 때문이다. 즉, 심의의 목적은 교육활동 보호이며, 이는 교사의 수업권과 학생의 학습권 모두를 보호하는 개념이다.

교원지위법 제19조에 의하면 교육활동 침해 행위란 고등학교 이하 각급학교에 소속된 학생 또는 그 보호자 등이 "교육활동 중"인 교원에 대하여 교원의 "교육활동"을 침해하는 행위를 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심의위원회의 명칭은 '교권보호위원회'이긴 하지만, 침해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교권 침해'가 아닌 '교육활동 침해'인 것이다.   


예를 들어 선생님이 상담실에서 학생과 진로 상담을 하던 중, 학생이 비웃는 표정으로 "선생님, 옷이 왜이렇게 촌스러워요? 이거 시장에서 샀죠? 진짜 웃겨요."라고 말했다면 이건 당연히 학생이 예의에 어긋나는 말을 한 것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교권을 침해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사안이 '교육활동 침해'에 해당한다고까지는 보기 어렵다. 즉, 이런 경우는 선생님이 지도나 훈계 등으로 학생을 교육해야 할 사안이지, 교육활동 침해로 '신고'를 할 사안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또한 학생이 무단 지각과 조퇴를 밥먹듯이 하고 교내에서 흡연으로 수차례 적발되어도 흡연을 멈추지 않는다면 이 역시 교육활동 침해로 신고하는 게 아니라 학교 생활교육위원회를 통해 학생을 지도해야 할 사안이다.


교권이 추락한 현 상황에서 굳이 이렇게까지 야박하게(?) 구분해야 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교육의 본질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만약 위와 같은 학생들을 다 교육활동 침해로 신고한다면 학교에서의 교육은 사라지고 학교는 신고로 점철된 공간이 될 것이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깨어지고 신고와 처벌만 오가게 된다. 나 역시 교사이기에 이런 학생들이 현재 학교에 얼마나 많은지, 또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지지 않는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지 잘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신고'가 최선의 해결책은 아니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작년을 기점으로 교권에 대한 교사의 인식이 많이 달라졌고 민감도도 높아졌다. 이런 게 교권 침해인지 아닌지 문의하는 전화도 끊이지 않는다. 교육활동 침해 피해로 인한 병원 진료 비용 지원을 받거나 심리상담 연계 지원을 받는 교사도 많아졌다.  

실제로 신고된 사안을 보면 심각한 교육활동 침해 사안이 적지 않다. 반면 소수이긴 하나, 교육활동 침해로 신고하기보다는 선생님이 학생을 잘 지도, 훈계하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간혹 있긴 하다.

중요한 건 교권보호위원회는 징계가 아닌 교육을 목적으로 해야 하며, 교권만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활동을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교권에 대한 교사의 민감도가 높아질수록 이 사안이 변호사, 경찰, 전문가 등 학교 외부 전문가의 심의를 거쳐 학생에게 조치를 내리기 위해 '신고'해야 할 행위인지, 아니면 학교 안에서 교육 공동체가 힘을 모아 교육적으로 해결해야 할 행위인지 판단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그러고 보면 나의 권리, 나의 이익이 중요하고 조금이라도 불이익을 받는 걸 참지 못하는, 늘 화가 나 있는 이 사회에서 좋은 교사가 되기란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교권과 학생인권이 함께 보호되는, 신뢰로운 교육공동체를 꿈꾸는 건 정녕 실현되기 어려운 이상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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