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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파이시너드클럽 Feb 13. 2022

‘가부장제’가 싫어 ‘가장’이 돼 제사를 없앴습니다

feat. 영화 <파워 오브 도그>

아빠가 돌아가신  나는 엄마가 행복하기만을 바랐다. 엄마를 돕지 않으면 나는 ‘사내 아니지.""”


영화 <파워 오브 도그>는 잔잔하고 치밀하게 가부장적 질서를 무너뜨립니다. 영화 속에서 ‘사내답지’ 못한 피터가 유일하게 ‘사내다운’ 장면은 가부장제를 상징하는 인물인, 새아빠의 친형인 필을 죽일 때뿐이죠. 의학 전공자(?)답게 그는 어떤 폭력적인 움직임 없이 동물 사체에서 나온 균으로 필을 무너뜨립니다. 장애물은 불행이고 그 장애물을 없애가는 게 인생이라는 그의 친부의 가르침대로 말이죠.


가부장 질서 아래서 성장하신 분들은 아실 거예요. 가장의 존재감은 시시때때로 공포로 작용하거든요. 특히, 심기 불편한 기색을 여과 없이 드러날 때는 공간의 공기가 무거워진 기분입니다. 지금도 나는 누군가 짜증 섞인 한숨을 들을 때면 긴장부터 하게 됩니다. 신기하게도 <파워 오브 도그>는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영화에 담아냈어요. 어떤 장면은 보기 버거울 정도로요.


내게 제사는 가부장제의 상징 같은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어른이 되면 가장 먼저 제사를 폐지하겠다고 속으로 생각했었죠. 누군가를 기리고 그리워하는 건 으레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제사라는 형태는 어린 내게 폭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특히, 손님 격인 엄마, 더 나아가 며느리에게만 희생을 요하는 방식은 도무지 머리로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종손’이었던 나는 ‘가장’이 되면 제사부터 폐지하겠다고 말했고요, 실제로 그리 된 건 가부장제를 지탱하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였습니다. 친척들에게 얼마나 욕을 먹었는지. 그래도 괜찮습니다. 피터가 ‘사내다운’ 계략으로 필을 무너뜨린 것처럼 그들의 키운 ‘가장’은 결국 제사를 폐지했으니까요.


지금도 향 냄새를 맡거나 명절이 되면 제사에 대한 기억이 불현듯 떠오릅니다. 친가 친척들의 한껏 상기된 웃음소리, 그리고 부엌 한편에서 분주한 누군가, 기세 등등하게 그들을 타박하던 시누이까지. 그들도 가부장제 하에선 누군가의 며느리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겠죠.


제사 없는 명절은 잔잔합니다. 친척도 발길을 끊었죠. 그래도 변하지 않은 게 하나 있네요. 지금도 엄마는 명절만 되면 의무처럼 명절 음식을 만듭니다. ‘개의 힘’이란 이렇게나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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