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려 사는 인생
홍천 백암산으로 훈련 가는 길이다.
1차 선발 테스트를 앞두고 있어서 마음이 편치 않은 채로 출발을 한다.
오늘을 끝으로 그동안 함께 걸었던 대원들과 헤어짐이 예정되어 있어 마냥 즐겁지만은 않는다.
그게 내가 될 수도 있고 그 누가 되더라도 신나는 일은 아니기에 마음이 무거운 채로 영규 형님의 차를 얻어 타고 홍천으로 향했다.
픽업을 가도 모자랄 판에 형님에게 신세를 지려니 그 또한 미안한 마음이 든다.
오늘 받은 이 도움은 다음에 또 갚을 날이 오기를 바라며 차에 올랐다.
강변역 부근에서 만나기로 한 우리는 일찌감치 멀리 성남에서 오신 노성 형님과 혜정이를 만나 출발했다.
이른 아침 출발은 늘 피곤과 긴장이 밀려와 눈을 감아 본다.
그동안 함께 걸은 누군가와 끝까지 함께하기를 바라는 건 무리겠지만 괜히 그런 욕심이 드는 날이다.
누군가에게 매달려 우리 다 힘룽 히말 가게 해달라고 빌고 싶은 날인 것이다.
그 마음이 혼자만에 것은 아니었는지 영규 형님께서 "매달려 사는 이 놈의 인생, 쓰바"라고 말씀하신다.
그렇게 오랜 세월 바위에 올라 매달리는 것도 모자라 사람에게도 매달리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
매달려 사는 인생이란다.
그 말을 듣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평생을 뭔가 매달리며 살고 있다는 자각.
바위를 오르며 줄을 스스로 걸었든 누군가 걸어준 줄을 따라 올라가든 우린 늘 어딘가에 매달려 있었다.
인연이기도 하고 때론 목숨 줄이기도 하였던 '끈'이 결국은 서로 '이음'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았을 때 비로소 우리는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바위에 올라 줄을 자유롭게 움직이며 위를 향하는 인생과 불안에 쌓여 어쩔 줄 모른 채 쩔쩔매며 오르는 인생 모두 결국은 포기하지 않으면 어느 지점에서 만나는 것처럼 적어도 오늘 이 순간은 모두와 함께 연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 그저 아쉬운 날이다.
스스로 한참 부족한 사람임을 알기에 오늘의 테스트는 누구라도 붙잡고 다 살려달라고 매달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인터벌을 해보면서 숨이 목에 걸리는 듯 힘겨웠을 때도 이제 그만하면 안 되냐고 매달리고 싶었다.
눈발 날리는 백암산을 걸으니 괜한 설렘이 있어 좋았고 숙경 언니와 처음으로 보폭을 맞추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어 더욱 좋았다.
그런 순간이 쌓여왔기에 지금껏 함께 고생한 대원들과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쭉 같이 걷게 해달라고 매달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바람일 뿐 선택의 날은 오고야 말았다.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 또한 쉽지 않은 순간이었으리라 짐작하기에 어쩌면 그들도 후딱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랐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랬기에 연맹에서 준비한 '화합의 장'은 더없이 고맙고 미안했다.
훈련만 하기에도 시간이 빠듯한데 가르치랴 훈련하랴 대장님과 이사님들 모두 고마운 마음이 그지없다.
이 겨울 산 중에서 행사까지 마련해주시니 이렇게 받기만 해도 되는지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이게 다 산꾼의 정이려나?
화합의 밤을 환영하는 듯 홍천 야영장에 쏟아지는 눈발이 걸음을 붙들었다.
이렇게 해서는 원정 갈 수 없다며 괴물이 되어 힘룽 히말을 가자는 단장님의 말씀이 스쳤다.
밤이 깊어 갈수록 눈발은 거세지고 이상하게 정신은 점점 맑아졌다.
작은 민수 씨가 끓여주는 해장 라면을 나눠 먹으며 이렇게 아쉬운 마음을 달랜 후 잠을 청했다.
돌이켜보니 1차 훈련까지 무사히 걸어온 데에는 모두의 바람이 한 곳으로 향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튿날 체력 테스트와 면접을 끝으로 몇몇 분들과의 헤어짐이 기다리고 있을 테지만 이미 예정되었기에 또 다른 시작을 꿈꿔야 한다.
매달거나 혹은 매달리기
이 모든 일은 결국 나의 의지임을 알기에 오늘도 포기하지 않는다.
등반이 뭐라고 생각하냐는 면접의 순간에 나는 무아지경을 이야기했으나 한 가지 말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거기에는 함께 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그것을 정이라고 부른다.
보이지 않은 정이라는 줄로 이어져 있는 우리에게 영원한 안녕은 없는 거다.
그래도 끝까지 함께 가자고 매달려 볼걸 그랬나?
어차피 매달려 사는 인생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