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하지 마라.
남궁만영 형님의 눈부신 헤드랜턴 불빛이 덕유산 자락 곳곳을 밝혀 주며 베이스캠프를 향해 걷고 있을 때였다.
이쯤이면 다 왔을까 싶으면 고개가 빼꼼 나오는 것이 맥이 탁 풀리기 일쑤였는데 뒤따라 오던 만영 형님께서 불수사도북도 했는데 이 정도는 괜찮지 않냐며 파이팅 넘치는 물음을 던진다.
'으으응?'
"전 지금까지 한 번도 힘들지 않은 훈련은 없었어요."
세상에 쉬운 산은 없다고 산 앞에서는 늘 겸손해야 한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말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매 훈련을 대하는 내 마음은 진짜였다.
그렇게 12차까지 오면서 번번이 벽에 부칠 때마다 내가 왜 이걸 신청해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했다.
그러다가도 무사히 훈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음을 기약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훈련을 거듭하면 할수록 대원들의 체력은 비슷해질 것이라고 장대부 이사님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나는 지금쯤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
때마침 우리를 향해 걸어오는 이의 헤드랜턴 불빛이 반짝 거리며 거리를 좁혀 온다.
실제 고산 캠프에서 사람을 만나면 힘이 솟는다는 대장님의 말이 맞나 보다.
종일 지쳤던 몸과 마음이 장대부 이사님을 보는 것만으로도 괜스레 반갑다.
오늘은 여기가 끝인가 보다.
깊은 안도감을 느끼며 이사님을 만남과 동시에 나의 생각은 잠시 멈췄다.
그동안 훈련을 받으며 얼마나 자주 흔들렸나?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니 종종 자신을 의심하며 걷곤 했다.
그런 내 마음을 들킨 건지 매 훈련 때마다 영규 형님이 꼭 한 번씩 격려의 말을 해주었다.
그건 마치 날 오랫동안 지켜봐 온 어른의 혜안 같은 걸까?
무심히 지나치는 내게 쓱 다가와 말 한마디 건네주는 마음씀은 형님의 말씀대로 어떤 귀한 인연으로 이어져 있기에 여기까지 함께하는 걸까?
어쩌면 나는 지금 힘룽 히말 훈련 중 크레바스를 지나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중을 온몸에 싣지 않고 살포시 통과해야 하는 것처럼 마음 또한 그러해야 하리라.
의심하는 순간 불확실해지고 그건 이내 불안을 불러온다.
힘룽 히말을 가고 못 가고 문제가 아니었다.
대원들과 신명 나게 한 판 즐겨보자는 마음으로 걸으면 되는 거다.
살아남아야 하는 경쟁이 아니라 이 길 위에서 우리는 서로를 보듬어주고 끌어주며 믿고 걸어야 하는 거다.
힘든 상황에도 늘 웃음을 안기는 정균일 이사님의 웃음소리가 덕유산에 퍼지는 것처럼...
몸이 안 좋은 대원이 나오자 한치의 망설임 없이 바로 짐을 나눠 들라는 주문을 외치는 강신원 이사님이 일러준 산꾼의 정과
저 멀리 앞서 걸어가며 우리의 모습을 담아주는 바쁜 몸놀림의 김진석 이사님에게서 느껴지는 뭉클함.
힘든 훈련을 마치고 조별 음식 경합을 벌이는 이벤트를 생각하는 김미곤 대장님이 추구하는 산이 곧 사람으로 향하는 길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산은 사람이다.
부디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는 길을 찾아 함께 걸어갈 길을 만들어 보자.
나는 잘 가고 있으며 부족하지만 함께 걷는 동안 사람들과 한 판 신명 나게 놀아보는 거다.
사람에게 이르는 길...
그 길을 향해 또 한 걸음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