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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ungmi Nov 18. 2023

지붕의 라쿤

안녕? 반가워, 잘가!

캐나다에와서 생활한지 한 달 정도 되어갈 무렵 어느 날 밤, 안방의 벽 안쪽에서 처음들어보는 동물의 소리가 들려왔다. 남편은 여기저기 지인들한테 물어보더니 라쿤의 울음소리같다고 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틀림없는 라쿤의 울음소리였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밤 라쿤과 함께 잠이들었다.


아이들은 심심할때면 2층의 안방으로 올라가서 벽을 두드렸다. 그러면 어김없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거나 때때로 라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에게는 신나는 놀이거리가 생긴 셈이었고, 남편과 나는 밤잠을 설쳐야했다.


몇일 뒤 Animal Treatment 회사의 직원이 라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문했다. 라쿤이 지붕 아래 살고 있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상황이 끝나는 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이제 비로소 제대로 된 잠을 잘 수 있겠다는 생각에 후련한 마음도 들었다. 라쿤을 금방이라도 밖으로 내보내줄것 같았던 Animal Treatment 직원은 지붕위에 올라가 한참을 둘러보고는 다음과 같은 해결책을 얘기해주었다.




라쿤을 지붕 밖으로 

인위적으로 쫓아내는 것은 바람직하지않다. 

라쿤이 지붕과 집 밖을 왔다갔다 하고있는 구멍에 

Two way door 를 설치하겠다. 

Two way door 에서 한쪽 방향을 막으면 

라쿤이 밖으로 나간 후, 구멍으로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라쿤에게는 새끼 라쿤이 있다.

새끼 라쿤이 스스로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한다. 

그때까지 양방향 출입이 가능하도록 유지하겠다.

몇 달 후에 새끼 라쿤이 어느 정도 크면

Two way door 가 한쪽 방향으로만 동작하도록 바꾸어놓겠다.




해결책을 듣는 순간 잠시 황당했다가 허탈한 웃음이 나오며, 지극히 캐나다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남편과 나는 몇달 동안을 지붕 속의 라쿤과 함께 잠이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붕 안에 살고 있는 라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너무너무 궁금했다.

정말 꼭 한번은 만나보고 싶었다.


몇 달이 흐르고, Animal treatment 회사에서는 Two way door 를 한 방향으로만 동작되도록 바꾸어놓았다. 라쿤을 한번도 보지 못하고 떠나보내는게 무척이나 아쉬웠다.


그리고 몇일 뒤 아침, 2층에서 집 정리를 하는데 아이들이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부르는 아이들이라 대수롭지 않게 하던일을 마무리하고 천천히 1층으로 내려갔다. 내가 2층에서 집정리를 하는 사이 남편과 아이들은 내가 그렇게도 보고싶어했던 라쿤을 만났다.



라쿤이 데크 앞의 마당을 지나 

오른쪽 울타리 아래 조그맣게 난 구멍을 

비집고 들어갔다고했다. 

몸집이 너무 커 허리가 구멍에 끼인채로 

몸을 바둥바둥거리다가

간신히 울타리 너머로 넘어갔고

다시 구멍사이로 머리를 들이밀고

우리집을 잠시동안 올려다보고는

떠났다고했다.

라쿤은 털이 아주 깨끗했고

얼굴이 크고 잘생겼다고했다.



남편과 아이들은 라쿤을 만난 감격으로 어쩔줄을 몰라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내가 2층에 있을 때, 아이들이 다시 나를 다급하게 불렀다. 무슨일인가 싶어 1층으로 내려오는 사이에, 라쿤은 울타리 옆의 나무열매를 먹고 데크 옆에서 거실쪽을 물끄러미 바라본 후 울타리를 넘어가버렸다고했다. 이번에 왔던 라쿤은 지난번과는 다르게 작은 라쿤이었다고했다.


그렇게 남편과 아이들은 내가 2층에 있는 사이에 야생 라쿤을 볼 수 있는 두 번의 기회를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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