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youngmi Nov 14. 2023

따듯했던 시간들

수업에서 만난 Jun은 나처럼 두 아이의 엄마였고, 무엇보다도 나와 나이가 같았다. 그녀도 자녀무상교육을 위해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나와는 다르게 졸업 후 유아교육으로 취업을해서 아이의 대학교 학비까지 지원을 받기위해 워크퍼밋을 받는 것을 목표로하고 있었다. 어찌나 반가웠던지, 그 뒤로 우리 둘은 힘든일이 있을때마다 어려움을 나누며 서로를 응원했다.


컬리지 본과입학으로 자녀무상교육을 받기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해서 여기까지 왔는지 너무나 잘 알기에 우리는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고단함을 토닥여줄 수 있었다. 자녀무상교육으로 1년 살기를 계획하는 것도 힘들고 많은 결심이 필요했는데 Jun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고국에서의 직장을 포기하고 캐나다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Jun은 너무나도 용감한 엄마였고, 나는 그녀의 앞길을 응원했다.


유아교육과가 시작되고 얼마동안 나는 두 아이들을 학교에 적응시키느라 바빴고, Jun은 중국에 가족들을 두고 홀로 캐나다에 먼저와서 정착에 필요한 일들을 에이전시를 통하지않고 혼자서 처리하느라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있었다.


그리고 학기가 시작된 지 두 달정도 되었을 때, 캐나다 학교의 여름방학을 얼마 앞두고 신랑과 둘째 아이는 한국에 먼저 들어갔다. 나는 첫째 아이를 여름캠프에 보내면서 컬리지의 과제들을 몇주간 더 마무리하고 첫째 아이와 함께 한국에 다녀올 계획이었다.


첫째 아이의 여름캠프는 그날 어떤 아이들이 캠프에 오느냐에 따라 아이의 기분도 달라졌다. 캠프에서 친철하게 간식도 나눠주고 이야기를 걸어오는 친구를 만나면 그날은 만족스럽게 잠이들었다. 하지만 삼삼오오 현지 아이들이 캠프에와서 아이가 도시락을 혼자먹고 놀이에 끼지 못한 날은 저녁 내내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고 울상을 지었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같은 프로그램의 캠프인데도 아이들이 자주 바뀐다고했다. 아마도 캠프에 몇일 가보고 프로그램이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들은 다른 프로그램으로 옮겨가고 그사이에 또 다른 친구들이 들어오는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런 날은 다음날 어김없이 캠프에 가지 않겠다고 침대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고 나는 컬리지 수업을 빠져야만했다.    


컬리지 수업을 몇번이나 빠진 어느 날 아침, 아이를 달래어 캠프에 보내놓고 수업에 갔던 날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나오는데 Jun이 그동안 왜 수업에 오지 못했는지를 물어봤다. 나는 아이가 캠프에 가기 싫어해서 수업에 올 수 없었다고 아이를 달래느라 너무 힘들었다고 얘기했다.




그 때 나의 손을 잡아주던 Jun의 손길과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멀고 먼 타지에서 처음 만난 그녀가

아무런 말도 없이 나를 바라봐주던

진심 어린 표정과 손길은

그 어떤 친절한 말보다도

나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었고

내 마음속에 엉켜있던

복잡한 마음들을 녹여주었다.

그렇게 Jun과 나는 그 시간들을 함께 지나가고 있었다.




첫째 아이를 달래면서 캠프에 보내고 컬리지의 숙제들을 어느정도 마무리한 후 아이와 함께 한국으로 갔다. 첫째 아이는 그리웠던 친구들을 만나며 기쁨을 만끽했다. 컬리지를 오랜기간 비울 수 없었던 나는 한국에서 2주간의 시간을 보낸 후 먼저 캐나다로 돌아왔다. 남편과 아이들은 2주 후에 캐나다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나는 컬리지의 일정 덕분에

결혼 후 처음으로

2주간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되었다.

 

혼자 밥을 해먹고

산책을 하고

공부를 하고

운동을 하고

잠이들었다.





아이들이 있을 때 꿈에 그리던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들을 만끽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문득 깨닫게되었다. 혼자여서 누리는 넘치는 자유보다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하는 소란스럽고 바쁜 일상들이 더 행복하다는 것을. 그렇게 달콤하지만 짧았던 2주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유아교육과의 한학기가 지나갔다. 학기의 마지막날 인도학생들은 교실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도 학생들의 흥은 쉽게 그칠 줄 몰랐다.



학기초만해도 나에게 유아교육과는 자녀무상교육과 학과 변경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쳐가야하는, 인생에서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은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다시 그때를 돌이켜봤을 때, 유아교육과에서 보낸 4개월은 외국의 낯선 컬리지에 천천히 적응할 수 있게 해준 따뜻한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디자인학과가 시작되기전 유아교육과를 들은 것이 실질적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었는데, 영어 강의에 적응할 수 있게 해주었고, 과목별로 제출해야했던 에세이 과제들은 리서치 자료에 출처를 표시하는 방법을 훈련시켜주었다. 리서치 자료를 활용하면서 출처를 명확히 하지 않는 것은 다른 사람의 결과물을 훔치는 것이라고 여겨지기때문에, 과제를 제출할 때 출처를 바르게 표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었다.


디자인과에서는 출처를 표시하는 방법을 다루지 않았다. 아마도 Graduate Certification 과정이기때문에 기본적인 것을 알고 있다는 가정하에 수업이 시작된 것 같았다. 간혹 출처를 어떻게 작성해야할지 몰라서 난감해하는 학생들을 볼때면, 유아교육과에서의 시간들이 새삼 뜻깊게 느껴졌다. 유아교육과에서 보낸 4개월은 나에게 꼭 필요했던 버려질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특별한 인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