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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소 May 26. 2020

내로남불, 나는 어떠한가.

보통날

처음에 내로남불이라는 말을 듣고 빵 터졌던 게 기억난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얼마나 기가 막히게 기발한 줄임말인지, 무슨 사자성어인 줄 알았다. 평소에 줄임말을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내로남불은 정말 찰떡이다 싶었다. 재밌는 말이지만, 난 그런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 모순이어서, 그리고 앞뒤가 맞지 않아서, 더 나아가 무논리라고 생각하기에 그런 사람들을 별로 가까이하지 않는 편이다. 기본적으로 대화가 통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나는 어떠한가? 나는 내로남불, 이런 거 안 하는 인간일까?

  

오늘은 나의 내로남불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는 그래도 되면서 남이 그러면 막 뭐라고 하진 않았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런 적이 좀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애들한테. 예를 들어, 나는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 아니 심지어 일주일 뒤로 미루면서 애들이 숙제나 일기를 미루려고 하면 막 잔소리를 퍼붓는다. 또, 나는 술 마시다가 귀찮으면 양치도 안 하고 잘 때가 종종 있으면서 애들이 양치 안 하려고 하면 무슨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겁을 주면서 어떻게든 화장실로 들여보낸다. 이런 것들도 내로남불에 해당하지 않을까? 꼭 바람을 피우고 불륜을 저지르는 중대 사건을 벌여야만 쓰는 말은 아닐 테니... 음, 내가 아이들에게 하는 내로남불은 올바른 습관을 형성시키기 위한 가정교육(?)이라고 포장할 순 없을까? 나도 모르는 새에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내로남불을 편하다는 이유로 내 가족들에게 막 해대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할 일을 미루는 이유가 있었던 것처럼, 술김에 헤롱 대다가 양치를 못하고 잤던 것처럼 아이들도 분명 뭔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무조건 안 된다고 밀어붙이기보다는 일단 그 이유와 순간의 마음을 먼저 물어보는 게 맞다. 그러고 나서 내로남불이든 뭐든 하면 되는 거다. 매번 잘하던 아이가 가끔 한 번씩 안 한다고 해서 습관에 큰 영향을 미치거나 이가 몽땅 썩진 않을 테니 말이다.


나 혼자 결정하고 판단하기 전에,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그 행동과 욕구에 대한 이해를 선행하면 최소한 내로남불 소리는 안 듣고 살 수 있을 텐데, 참 아쉽고 안타깝고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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