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살아도 한국인인 것은 변함이 없더라.
조지 베일런트가 지은 행복의 조건에서는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기 위해서 다음 7가지 조건들이 만족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1. 고난과 불행에 대응하는 성숙한 방어기제
2. 교육년수
3. 안정된 결혼생활
4. 금연
5. 금주
6. 운동
7. 알맞은 체중
이 조건들에 동의하는가? 사람들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한 조건은 저마다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대충 뭉뚱그려 생각해보면 위의 조건들은 맞는 말인것도 같다. 하지만 최근 한국인의 화두이자 제 1의 행복의 조건은 '돈', 특히 부동산과 재테크가 아닐까 싶다. 유투브를 켜면 넘쳐나는 갖가지 재테크 동영상들과 이제는 방송에 나와도 어색하지 않은 '파이어족' 이라는 단어에서 한국 사람들이 지금 어떤 것들을 욕망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 같다. 도쿄에 살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인 나도 한국인의 피를 물려받았는지라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처음 회사에 입사한 2016년 어느 겨울에 상사와 함께 밥을 먹고 회사 앞 서점에서 산책한 적이 있었다. 호기롭게 이 회사에서 5년은 열심히 배우고 일할 것이라고 장담했던 그 무렵, (결국 나는 3년만에 그 회사에서 나왔다.) 당시에 주식 투자 방법을 설명하던 잡지가 보이는 코너 앞에서 상사는 나에게 5년 뒤에 얼마나 연봉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냐고 물었다. 솔직히 나는 600만엔 정도 받으면 잘 받는게 아닐까 잘 모르던 그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세금 내고 월세 내면 변변히 저축도 못하던 그 시절에 나는 600만엔이면 불안하지 않은 삶을 보내며 만족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후 이직을 3번 하고 6년차가 된 나는 그 때의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연봉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돈에 대한 불안함은 사라지지 않았고 이제는 오히려 다른 종류의 불안함이 찾아오곤 한다.
특히 요새는 내 집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하지만 서울과 달리 도쿄의 부동산은 한번 집을 사면 집값이 오르기는 커녕 집을 소유하는 시간에 비례해서 감가상각되어 집값이 떨어진다. 최근 유동성 증가로 도쿄의 맨션 (도쿄는 아파트를 맨션이라고 부른다.) 가격도 이전에 비하면 큰 폭으로 상승했지만, 서울에 비하면 아직은 살만한 가격이다. 거기다가 일본은 목돈이 없어도 낮은 이자로 35년간 대출해서 집을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차피 월세로 매월 돈을 낼 거라면 그냥 사버려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더해서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좀 더 넓은 집에서 생활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만약 방이 세 개 있다면 동거인과 방 하나씩 나눠 쓰면서 남은 방 하나를 작업실로 쓸 수 있을텐데 하며 행복한 망상을 했다.
하지만 집을 사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불안에서 왔다. 한국 친구들과 가끔 이야기할 때마다 나오는 부동산 이야기를 들으며 마치 부동산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내가 자산형성에서 뒤쳐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대로 괜찮은가? 다들 영끌이든 부모 도움을 받아서든 결혼해서 아파트 사고, 때마침 아파트 값도 많이 올라서 차도 사고 인생 즐기면서 행복하게 사는데 나만 월세 내면서 이렇게 살다가 나중에 쥐뿔도 없으면 어떻게 하지? 그리고 하늘 높은줄 모르고 이렇게 주택 가격이 오르는데, 언젠가는 내 몸 하나 뉘일 작은 내 집도 없으면 서러워서 어떻게 사나 하며 불안했다. 결국 최근에 괜찮아보이는 중고 맨션 하나를 골라 직접 물건을 보고 왔다.
도쿄 23구 안이지만 그나마 조금 저렴하다고 말하는 곳의 3LDK 맨션이었다. LDK는 리빙, 다이닝, 키친으로 거실과 식탁 둘 자리와 주방이 따로 분리되어 있다는 의미이고 앞의 3은 방 세 개라는 뜻이다. 이 매물을 처음에 발견했을 때는 드물게도 거주자 전용 정원이 딸려 있어 텐트 치고 놀거나 정원에 의자를 두고 아침 먹을 수도 있을 것 같아 너무 좋아보였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이 54제곱미터인지라 생각보다 넓을 것 같았고 방이 세 개 있다는 점에서도 점수가 높았다. 그래서 당장 부동산에 전화해서 집을 보겠다고 했다. 6280만엔? 저축도 얼마 하지 못한 나였지만 지금 연봉을 생각하면 매달 갚지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집을 살 생각으로 며칠동안 의지를 다졌다.
결론적으로 저 집은 내 집이 아닌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첫 번째 이유는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어서였다.
부동산은 이 물건을 살 경우 앞으로 35년 론을 어떻게 변제해 가게 될 것인지, 그리고 물건을 사면 어떤 제비용이 드는지 설명을 위해 견적을 내주는데 위의 사진이 그 계획서이다. 6280만엔, 한국 돈으로 약 6억 3천 정도 되는 이 맨션을 사면 보통 연 이자 0.65퍼센트를 지불하게 되고, 매달 17만엔 가량을 변제하게 된다. 여기에 관리비와 수선비 (주택이 노후화됨에 따라 수선하는 비용을 미리 적립해둔다.) 에 무료가 아니었던 정원 사용료, 인터넷, 보일러, 티비 사용료 등등 포함하면 21만엔을 내게 된다. 지금 사는 곳이 월세가 13만엔인데... 사실 못 낼 돈도 아니지만 35년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무거워지는 것이다. 이 집에서 사려면 35년 일을 해야 하는 것이 기정사실화된다. 이제 서른살인데, 65살까지 일한다... 아득해진다.
거기에 제비용은 왜 이렇게 많이 드는지, 중개수수료가 2200만원 가까이 되고 론 관련해서 수수료가 (별 수수료가 왜 이렇게 많은지) 1500만원, 화재보험도 들어야 하고, 고정재산세도 매년 내야 한다. 거기다가 맨션 보일러는 10-15년마다 바꾸어야 한다는데 그때마다 3-400씩 나가고. 아니, 다들 이렇게 돈 많이 내고 살았어요? 도저히 살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물건을 사고 나중에 10년 뒤에 판다고 생각했을 때 이 물건은 팔릴 것인가 생각해보면 그것도 애매했다. 도쿄에서 집을 살 때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역에서 거리가 얼마나 걸리는가인데, 도쿄 중심부로 갈 수 있는 히비야 선 역까지 도보 6분 거리이고 30초 거리의 집 앞에 큰 슈퍼가 있기는 하지만 동네 자체가 낙후되었고 치안도 그렇게 좋은 곳은 아니라서 주변이 재개발되지 않는 이상 조금 애매한 곳이었다. 그렇다고 학군이 좋은 곳도 아니라 3LDK를 사는 사람은 보통 애 딸린 가족일텐데 굳이 그들이 이 곳으로 올 것 같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직접 물건을 눈으로 보고 난 이후 관심이 떨어졌다. 물론 이것저것 그렇게 좋은 조건이 아니니 6천만엔 대 맨션이겠지만 그래도 아직 도쿄에서 6천만엔이면 살만한 곳은 있는데 싶기도 하고, 이런 답답하고 좁아터진 방을 이 돈 주고 사야되나 싶기도 했다. 심지어 방 하나는 창문이 아예 없었다. 창이 없으면 환기는 어떻게 할 것인가. 게다가 천장까지의 높이도 낮아서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 결국 나는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여러 생각이 들었다. 집을 사면 정말로 행복해질 수 있는걸까? 오히려 그 집에 얽매여서 자유롭게 살 수 없는 것은 아닐까? 앞으로 이탈리아에 가서 살아보고 싶고, 시골에 내려가서 살고 싶기도 하고 많은 선택지 안에서 그 때마다 하고 싶은 것을 골라가며 살고 싶은데 집을 가지면 그것들을 다 할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닐까? 만약 집을 사고 나면 다른 선택지를 골랐을 때 내야하는 비용이 너무 커지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나는 왜 집을 사고 싶은가?
그런 질문들을 통해 내린 결론은 내가 불안하기 때문에 마음이 왔다갔다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 집이 있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내 삶에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가 아니고 내가 어떻게 마음을 내고 있는가이다. 600만엔을 벌면 행복할 것 같았던 과거의 나는 넉넉한 연봉을 받아도 집을 살 수가 없겠구나 하면서 슬퍼하고 있다. 결국 경쟁과 비교에 익숙해진 나는 타지에서도 더 많이 가진 사람과 나를 비교하며 불안을 느끼고 불행해진다. 우리는 무엇이 있으면 행복할 수 있을까? 무엇이 답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보다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가지는 것'은 그 답이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