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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과 열심 May 04. 2024

좋아하는 곳에서 일하고 있나요?

꾸준히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일터의 기준

예뻐 보이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과 오랜만의 만남을 앞두고 세 공간을 다녀왔다. 기부하겠다는 목표로 겨우내 덥수룩하게 기른 머리카락의 숱을 쳤고, 거의 1년 만에 속눈썹 펌을 했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숍에 가서 정식으로 네일아트를 받았다. 직장인이 된 후론 내가 편하게 대우를 받는 곳이더라도 그 장소가 누군가의 생계를 책임지는 일터로 보인다. 단순히 미용 목적으로 찾은 이분들의 일터에서 일에 관한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1. 좋아하는 일을 하는 곳

가장 먼저 간 곳은 미용실이었다. 동료에게 추천받은 헤어디자이너님이 있었고 그분께서 친근하게 대화를 이어나가 주셨다. 디자이너님은 영상학과를 나오셨는데, 잘 맞지 않아서 무슨 일을 할지 찾던 중 어머니의 추천으로 전공과는 전혀 다른 이 일을 시작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너무 잘 맞아서 재밌게 일하고 있다고 하셨다. 디자이너님처럼 자신의 일을 좋아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을 볼 때면 기분이 좋아진다.

나 역시 직업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좋아하는 일’이었다. 대학 시절 의류학을 전공했지만 결국 직업으로 살리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도 ‘좋아함’의 기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직업으로 생각해오던 건 패션 MD였는데 대학교 4학년 때 깔끔하게 포기했다. 내가 옷을 좋아했던 건 브랜드 때문이 아니라, 옷이 사람의 심리와 성향을 비추어주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다. 당시에도 좋아하지 않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오래가지 못할 거라고 분명하게 느꼈다.

방송작가로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적성의 80퍼센트 정도가 맞는다는 느낌이 들었고 출판편집자로 일하는 지금은 적성의 90퍼센트가 맞는다고 생각한다. 늘 새롭게 배우고 메시지를 건네는 일.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생각을 발전시켜서 결과물로 만들어 누군가에게 전하는 과정을 좋아한다.


2. 안정감을 느끼는 곳

눈썹이 진하고 숱이 많은 나는 한 달에 한 번 브로우 왁싱숍에 가서 눈썹을 정리한다. 작년부터 내게 준 선물이다. 실장님과 한 달에 한 번 만나기에, 열두 번을 만나면 어느덧 한 해가 지나 있다. 원장님과 실장님 두 분이 운영하는 곳인데, 이 공간에 들어서면 인테리어부터 안정감이 느껴진다. 성격이 둥글둥글한 두 분이 고객들과 오붓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방 같은 따스한 곳이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속눈썹 펌을 받다가 나도 모르게 단잠을 잤다.

안정감을 느끼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있는 것 같다. 심리적인 안정감과 장소로서의 안정감. 방송 일을 하던 3년 동안은 6년의 시간을 보냈다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로 주말, 밤낮 없이 일했다. 적성에 맞기에 버텨낸 것일 수도 있지만, 당시에 늘 심리적으로 불안했다. 방송작가는 거의 프리랜서이기에 이 일이 끝나면 또 어느 곳에서 누구를 만나 어떻게 일할지가 바로 그려지지 않았다. 대학생 시절엔 막연히 프리랜서의 삶을 동경했는데, 내가 소속감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방송 일을 하며 깨달았다. 그래서 어느 곳에든 소속되는 직장인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방송 일을 그만둬야겠다고 느낀 결정적인 계기는 ‘장소적인 안정감’이 한몫했다. 밤샘이 근무 조건으로 명시되어 있던 한 시사 프로그램을 했던 때, 너무나 졸려서 창고 같은 곳에 들어가서 소품을 덮는 흰 천을 아무렇게나 뒤집어쓰고 쪽잠을 잤는데, 그 모습을 어떤 남자 피디님께 들켰다. 그냥 덤덤한 일로 넘길 수도 있었는데 그날 나는 커다란 수치심과 회의감을 느꼈다. 그 프로그램을 끝으로 방송 일을 그만두었다. 이렇듯 안정감이 일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클 수 있다.


3. 좋은 동료가 있는 곳

재택근무를 하다가 점심시간에 집 앞에 눈여겨본 네일숍에 전화를 걸었다. 처음 전화했는데도 내게 싹싹하게 ‘언니’라고 부르시며 바로 예약을 잡아주셨다. 도착하니 이미 손님들이 있었고 조금 기다렸는데, 네일아트를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가 오랜 친구처럼 돈독해 보였다.

네일 아티스트 두 분이 운영하는 곳으로, 매일 반복되는 상황일 텐데도 점심 메뉴를 신중하면서도 사이좋게 고르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두 분은 서로 나누는 대화가 너무 재밌어서 잠시 밖에 나가 웃고 오기도 한다고 하셨다. 두 분에게는 서로가 있기에 그것만으로도 좋은 일터에서 일하고 계시다는 게 느껴졌다.

나에게도 좋은 동료들이 있다. 이들 덕분에 사회에서 만난 친구도 얼마나 끈끈할 수 있는지, 삶의 중요한 순간을 함께하며 내면의 깊은 곳까지 닿을 수 있는 사이가 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이렇게 멋진 사람들이 내 동료라는 게 가끔은 눈물 나도록 벅차다. 마음에 맞는 동료가 있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즐겁게 출근할 수 있다.


4.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는 곳

어떤 일을 하든 ‘전문가’가 되고 싶었다. 인턴으로 시작한 예전 회사에선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목표였다. 그런 능력을 가지는 게 너무나 까마득해 보였다. 어느 해에는 미얀마로 여름휴가를 떠났는데, 오랜 불상 조각들을 보며 “쓰임이 있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라고 간절히 빌었다. 책 만드는 일을 한 지 10년쯤이 된 지금은 다행히도 쓰임이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느낀다.

얼마 전에는 ‘국내 유일’이라는 타이틀을 지닌 한 분을 저자로서 만나 뵈었는데, 나를 전문가로 인정해주시며 내 가이드를 잘 따르겠다고 말씀해주셨다. 회사로 복귀하는 길에 누군가에게 일로 신뢰감을 주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 감개무량했다.

내가 이번에 방문한 세 곳에 계신 분들 역시 일터의 전문가라고 느꼈다. 그분들 덕분에 나 역시 만족할 만한 서비스를 받으며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니까.


사람 vs 일 vs 돈

사회초년생 때부터 선배들이 내게 해준 말이다. 어떤 일을 할 때 ‘사람, 일, 돈’ 중 만족하는 게 하나라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 13년간 사회생활을 하며 내가 깨달은 건 (욕심일 수 있겠지만) 이 중 어느 하나라도 모자라지 않아야 한다는 거다. 이 세 가지가 어느 정도는 모두 기준점 이상일 수 있는 좋은 일터는 분명히 존재한다.  

가끔 동료들과 맛있는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하하호호 떠들며 걸어가는 길, 〈나의 아저씨〉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아이유 배우가 연기했던 주인공 지안 역시 나처럼 커피를 들고 동료들과 정답게 이야기하며 걸어간다. 그 뒷모습에 “지안, 편안함에 이르렀나?”라는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나도 지안처럼 편안함을 찾았다. 집 이외의 공간에 내 이름이 쓰인 내 자리가 있다. 좋아하는 동료들과 다정히 인사를 나누고 팀장님께 “저 장난 아니죠? 완전 멋있죠?”라며 너스레를 떨 수 있는 지금의 일터. 이 호사스러운 행복에 뭉클하도록 감사하다. 회사 메신저 이름을 ‘일터 감사히’로 바꾸어놓았다. 매일의 애씀으로 찾은 행복, 감사히 열심히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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