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 36가 5와 6 애비뉴 사이, 그 회사가.
한국일보 최희은 기자. 낯익은 이름이었다. 웹서핑을 하다 그녀의 이름을 보게 될 줄이야; 지난 1년 간 인턴으로 일하던 첫 직장에서, 나는 격주에 한 번 꼴로 회사 홍보 기사를 썼고 그 덕에 최 기자와 나는 꽤나 자주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대게 그 홍보 기사라는 것은 백화점의 세일 소식이나 신제품 출시 따위를 알리는 시시한 글이었다. 대학생 시절 학보사를 했다는 이유로 주어진 업무다. 내 글을 한인 사회에서 꽤 영향력 있는 미디어에 '대외 홍보용'으로 쓴다는 거창한 목적이, 전문 기자와 연락한다는 사실이 왠지 마음에 들었다. 사수 박 과장이 이메일 말미에 “저희 기사 잘 좀 부탁드린다”는 멘트를 붙이라며 장난스레 당부하던, 오래된 기억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우연히 발견한 그녀의 이름 세 글자는 사는 게 바빠 몇 달간 잊고 지냈던 그곳을, 맨해튼 36가 5와 6 애비뉴 사이에 있던 그곳을 기억 속에서 소환해냈다.
그곳은 '인턴'이라는 이유로 온갖 잡무를 시키며 최저 임금도 안 주던 회사로 악명이 높은 곳이었다. 주말이나 공휴일에도 은근한 출근을 강요했던 그곳. 최저 임금에 못 미치는 월급으로는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상사의 눈치가 보여서, 어쩔 수 없는 주말 워커홀릭이 돼야 했다. 뉴욕에 오기만 하면 주말엔 파티를 즐기는 근사한 뉴요커가 될 줄 알았는데…. 내가 마주한 현실판 뉴요커의 삶은 퍽퍽하기 짝이 없었다.
회사의 가장 큰 문제는 38년의 역사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체계라곤 찾아볼 수 없던 주먹구구식 가족 경영이었다. 회장을 주축으로 그의 아들과 아내, 사촌의 팔촌으로 구성된 이 가족 경영진은 서로 간 소통도 잘 안되는지 손발이 참 안 맞았다. 덕분에 어렵게 결정을 내린 업무도 중간에 곧잘 '나가리'되곤 했다. 나는 회사의 유일한 '영 블러드'라서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내곤 했지만 계속되는 경영진의 결정 번복으로 실무자들의 사기는 떨어져만 갔다. 업무는 속도를 내지 못한 채 진전이 없었다. 과연 이런 것도 배우는 과정의 일부일까? 의심스러웠다.
대신 일이 고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회사에 걸려오는 전화에 한국어가 아닌 "Thanks for calling Cosmos, how may I help you?"라고 내뱉을 때면, 현지인 고객이나 외국인 관광객이 와서 영어로 응대할 때면 영어 쓰며 일한다고, 스스로 미국에 있다는 사실에 전율하고 짜릿했다. 재고가 쌓여있던 지하 창고에 내려가 혼자만의 작업을 할 때에도, 그 넓은 지하실이 아지트라도 된 것 마냥 발걸음조차 신이 났다. 패션의 도시 뉴욕에서 내가 패션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작게나마 내가 몸담을 사무실이 있다는 사실이 매우 고무적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패션 브랜드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라니. 매일 하는 일은 멋대가리 없었지만 왠지 폼나는 일 같았다.
의구심과 짜릿함의 반복 속에 1년의 시간이 지났고 나는 수십 번의 눈물을 흘리고 나서야 깨달았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이란 가사처럼 너무 힘든 회사는 나와 인연이 아니었음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인턴십을 마치고 나에게 남은 것은 회사에 대한 애(愛)와 증(憎)의 감정과, 걸러야 할 회사의 리스트였다. 다신 뒤돌아보지 말아야지 싶었는데 나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왠지 짠내 가득하던 그곳의 소식을 종종 찾아보곤 했다. 지나간 옛 애인을 대하는 것 같은 심정으로, 나 없이 잘 지내니?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지면서. 그러나 그 마저도 새로운 일을 시작하며 사는 게 바빠 소홀해졌다. 유일하게 연락을 하고 지내는 그곳의 마지막 연결고리 사수 박 과장에게 안부를 묻던 것도 올해 초였으니, 최근 소식은 거의 못 듣다시피 한 거나 다름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발견한 최 기자의 이름이 그곳을 다시 떠올리게 한 것이다.
문득 궁금한 마음에 회사와 관련한 최근 뉴스를 검색해보다 "OOOO, 38년 역사 속으로…"로 시작하는 헤드라인이 눈에 띄었다. 기사는 실제 내가 다니던 그곳이 다른 지점과 합쳐지며 곧 문을 닫을 예정이라는 내용이었다. 8월에 쓰인 기사를 나는 12월에 읽었으니, 지금은 이미 문을 닫고 없어졌겠지. 회사에 다니면서 이런 악덕기업은 망해야 해 하며 소심한 저주를 퍼붓긴 했지만 실제로 없어졌다니 망해서 잘 됐네! 보다는 괜스레 먹먹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미운 정이 더 무섭다는 건 이런 걸까? 아아, 나름의 추억이 깃들어 있던 장소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니, 왠지 퇴근 후 매일 같이 눈물 흘리던 기억마저 미화되는 것 같았다. 같이 일하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함께 일하며 은근히 구박하던 I 씨 소식도, 까탈스럽지만 자기 일에 프라이드가 넘치던 J도, 언제나 친절하던 아이리나도 모두 잘 지내고 있을런지. 37년 역사만큼 한결같이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아서, 나중에 성공하여 뉴욕에 가면 꼭 한 번 들러보려 했는데.
씁쓸한 마음에 오랫동안 추억을 더듬거렸다.
드니 빌 뵈브 <컨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