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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ndys May 26. 2020

무직은 아니지만 당분간 쉬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시국에 휴직한 직장인의 고군분투기


월요일 출근을 앞둔 날, 여느 직장인이 그러하듯 경건한 마음으로 월요병에 맞설 ‘마음의 준비’를 막 하려던 참이었다. 회사에 불온한(?) 생각을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때 마침 회사 메신저가 울렸다. 띠링띠링. ‘주말에 웬 연락이지?’ 싶어 확인해보니 내일부터 전 직원 대상으로 재택근무를 실시한다는 내용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이었다. 회사는 평소 직원들로부터 재택근무에 대한 요청을 꾸준히 받아왔지만 업무 효율과 담당자 간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등의 이유로 재택근무만큼은 안 된다는 입장을 강하게 고수해온 역사가 있어서인지, 전사 재택근무의 신속하고 빠른 결정이 꽤 의외라고 생각했다. 물론 사안이 감염병과 관련된 만큼 회사 측에서도 급히 결정한 것 같았지만.


우선 일주일 간 재택근무를 실시해보고 바이러스 확산이나 근무 상황에 따라 연장을 할 수도, 재택근무가 조기 종료될수도 있다고 했다. 이번 생에 집에서 일하는 건 회사나 직원 모두 처음이었기 때문에 슬기로운 재택근무를 위한 가이드라인도 함께 배포됐다. 근무 환경은 집 또는 회사라는 조건이 있었고 단 일주일 시범 시행일뿐이었지만 그럼에도 회사의 결정이 남몰래 반가웠다. 업무량은 같더라도 장거리 통근러에게 재택근무가 가져다주는 이점은 너무나 명백했기 때문이었다. 재택은 곧 하루 4시간, 일주일이면 20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할 거라는 안도감이나 바이러스의 위험성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사실도 잊은 채 눈 앞의 재택근무가 가진 장점과 달콤함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일주일만 예정돼있던 재택근무가 끝나갈 쯤 코로나는 여전히 확산세에 있었다. ‘설마 다음 주도 재택인가....?’ 싶었던 차에 재택 연장 결정이 다시 한번 공지됐다. 재택근무는 이주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계속됐다. 그때의 나는 몰랐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토록 많은 사람의 삶을, 특히 나의 삶 마저 하루아침에 360도 바꿔놓을 줄은.


출처: Unsplash @Kelly Sikkema


한편 재택근무로 집에서 평화롭게 근무하는 동안 뉴스는 코로나 바이러스 소식으로 떠들썩했다. 자영업자를 비롯해 중소기업부터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기업까지 막심한 피해가 속출했다. 전국 여기저기서 상점이 문을 닫았고 여행업이나 항공업계에서는 줄줄이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고 했다. 어느 기업들은 경영이 악화되어 대다수의 직원들을 무급 휴가 보내거나 임금 삭감을 한다는 소식도 심심찮게 들려왔다. 같은 직장인으로서 직장인에게 월급이 주는 안락함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기에 코로나의 직격탄을 받은 이들이 새삼 걱정스러웠다.


일각에선 제2의 IMF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들리는가하면 빠른 속도로 퍼지는 바이러스에 전 세계적으로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고 있었다. 듣도 보도 못한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장기전이 되어갈 조짐이 보이는 가운데 '외식업'도 타격을 입기는 마찬가지였다. 식당을 찾는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겨 전국의 자영업자들이 울상인 것은 당연할 터였다.


이쯤 되자 '우리 회사는 코로나 영향권에서 안전할까?' 하는 불안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우리 회사의 사업모델은 외식 업계를 근간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쩐지 세상이 코로나로 인한 뉴스로 떠들썩할 때에도 회사 사정을 가장 잘 알고 있을 경영진은 잠잠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부디 그들의 무소식이 희소식이기를 바라며 불안함을 떨쳐내려 노력하는 수밖에.


그로부터 며칠 뒤, 평소라면 출근 시간에 맞춰 활발해야 할 회사 채팅방이 유독 조용했다. 착 가라앉은 분위기. 고작 메신저에서 느낀 분위기였지만 분명 평소와 달랐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알아차렸지만 팀장님이나 동료에게 어떤 상황인지조차 물어보기도 주저하던 그 날 저녁, 회사 임원인 잭슨으로부터 1:1 채팅이 왔다.


잭슨과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는 따로 심각한(?) 얘기를 나누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지난 2년 간 그와 독대로 진행했던 미팅은 연봉 협상 외에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로부터 메시지가 왔다는 사실 자체에 살짝 불안함이 들었다. 연봉협상 급 미팅이 뭐가 있을런지. 메시지 열어보기를 주저하길 몇 분.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확인해보니 그는 내일 미팅에 올 수 있겠냐고 간단히 물어왔다. 무릇 미팅에는 아젠다가 있기 마련이다. 미팅의 아젠다가 무엇인지 묻자 그는 코로나19와 관련한 내용이라고 짧게 답하곤 자세한 얘기는 내일 하자며 즉답을 피했다. 눈치를 보니 나뿐 아니라 주변의 다른 직원은 이미 미팅을 했거나 할 예정인 것 같았다. 감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본능적으로 좋은 소식보다는 나쁜 소식에 가까울 거란 예감이 스쳤다.


권고사직인가? 임금 삭감일까? 잭슨과 짧은 대화를 나누고 온갖 나쁜 상황을 상상하고 있을 때쯤, 팀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늦게 연락하게 돼서 미안하다며 본인도 전달할 새가 없었다고 했다. 아마도 잭슨과의 미팅에서 좋은 소식은 없을 것 같다'며 '되도록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갈 것'이라는 친절하지만 다소 무서운(?) 경고를 덧붙였다.


출처: Unsplash @Kyle Glenn


다음날 오후, 재택근무로 한 달 만에 찾은 회사에서 오랜만에 잭슨을 만났다. 우리 사이엔 어색한 미소와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나는 그의 표정에서 무언가라도 힌트를 얻으려는 듯 잭슨의 눈치를 살폈지만 그러기에 그는 지쳐 보였다. 서로 재택근무를 하는 동안의 안부를 짧게 묻고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잭슨은 우리 회사도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아 회사 사정이 많이 어렵다고 했다. 그리곤 회사의 수익을 담당하던 부분들이 직접적으로 어떤 영향을 받게 됐는지 설명을 덧붙였다. 진행 중이던 정부 사업은 예산 집행이 일시 중단되었고, 투자 유치도 준비 중이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더딘 상황이라고. 다른 제휴사들과 진행 예정이었던 캠페인들은 시국이 시국인 만큼 일정을 뒤로 조정하게 됐다는 말도 덧붙였다. 내용을 모두 종합하면 회사 내 현금 흐름이 원활하지 않아 그 달 월급은 연체된다는 내용과 최소의 인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인원은 두 달간 무급 휴가를 가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최악의 상황은 임금 삭감 정도였는데, 예상과는 너무나 다르게 흘러가는 시나리오에 충격을 받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무슨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하지? 라고 생각하며 “시국이 시국이니까...”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였던 것과는 달리 마음 한켠에선 '나도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호소해야 할까?', '며칠 뒤 카드값은 또 어쩌고?' 같은 생각이 동시에 떠올랐다. 아무리 스쳐가는 월급이었지만 그래도 그렇지 월급이 안 들어온다니. 그러나 회사에 돈도, 직원들 앞에 면목도 없다는 잭슨 앞에서 없는 돈을 만들어서라도 월급은 줘야지 않냐고 소리칠 용기 같은 건 없었다. 그가 내민 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착잡한 마음으로 회사를 나섰다.


출처: Unsplash @Wes Hicks


평소 휴가를 간절히 바랐기는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휴가를 가고 싶었던 건 아니었는데…. 원하던 휴가가 생겼지만 그리 달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가 아닌 어쩔 수 없이 떠나는 휴가는 달콤하기보단 씁쓰름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난 한달 벌어 사는 월급쟁이였는데. 평소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비상금을 충분히 준비해 두었으면 마음이라도 한결 편했을 텐데, 매달 욜로(YOLO)를 외치며 무계획 소비를 일삼던 과거의 나는 미래에 대한 대책이 없어도 너무 없는 인간이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늦었다고 하던 모 코미디언의 명언이 떠올랐다. 여유는 통장에서 나온다고 웃으며 말하던 친구의 말도 그땐 같이 웃었지만 지금은 왠지 더 쓰라리게 느껴졌다. 하지만 과거의 나를 탓해봐도 이미 때는 늦은 상황이었다. 카드값, 생활비, 통신비에 보험료 같은 문제는 현실이었고 나는 돈이 필요했다. 그제야 코로나19도, 회사도, 나 자신도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휴가가 생겼다고 해서 2달 동안 무작정 쉴 수는 없었다. 용돈이라도 벌어야 했다. 그동안 야근과 업무에 치여 밀려있던 이력서와 경력 업데이트도 이참에 하면 되겠지. 우선 각종 아르바이트 사이트와 과외 사이트, 프리랜서 사이트 등 단기로 할 수 있는 구직사이트에 간단한 이력서를 업데이트했다. 아르바이트를 구하며 나만의 규칙이 있었다면 아무리 급하더라도 고된 육체노동이나 감정 노동이 필연적인 일만큼은 최대한 피하자는 것이었다. 쉽게 버는 돈은 없지만 감정까지 상해가며 돈 벌지는 말자는, 내가 부릴 수 있는 최소한의 자존심이었달까. 밤낮으로 구직 사이트를 열심히 순회했다. 그러나 손품을 판 것이 무색하리만큼 나이 제한 등의 이유로 원하는 조건에 맞는 일이 생각보다 적었다. 과외나 프리랜서 사이트는 경쟁률이 치열했다.


그간의 이력을 정리하는 일은 업무의 중요도에 따라 분류하고 내가 이뤘던 성과를 곱씹으며 차근차근 정리해 보기로 했다. 2년 동안 했던 일을 돌아보고 요약한다는 것은, 지나온 시간만큼이나 꽤 시간이 걸리는 일이구나. 평소라면 손댈 엄두도 못 냈던 이력 정리였을텐데. 이력 정리를 하며 앞으로의 커리어에 대해 진지한 불안과 고민이 몰려왔다. 만약 복귀를 못하게 된다면? 이직을 해야 한다면? 나의 첫 직장이 이렇게 끝나는 건가? 월급이 밀리면 탈출해야 한다던데. 과거의 나는 참 바쁘게 지냈었구나 등 각종 잡생각과 추억라떼 감상도 잊지 않았다.  


일자리를 알아보고, 이력을 정리하는 동안 자영업을 하고 있는 친언니에게 아르바이트 빈자리가 있는지도 물어봐두었다. 그는 갑자기 일자리를 찾는 나에게 회사에 무슨 일이 있는지 나의 신변에 대해 몇 가지 묻더니 흔쾌히 나오라고 했다. 새로운 단기 아르바이트를 구하거나 이직을 하기 전에 잠시간 나와도 좋다고. 그곳은 외식업 중에서도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매장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식당을 직접 찾는 손님은 줄었지만 배달 음식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는 뉴스를 봤던 기억이 스쳤다. 외식 업계가 힘들어서 회사에선 무급 휴가를 받았는데, 다시 외식업으로 돈을 벌게 된 상황이라니.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출처: Unsplash @Glenn Carstens-Peters


아무튼 낮에는 평소 미뤄둔 이력서 업데이트와 아르바이트 준비를 하고 저녁엔 언니네 가게에서 6시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다. 육체노동은 피할 수 없었지만 그리 고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감정 노동을 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소위 내가 정한 워라밸은 보장되는 곳이었다. 그리고 적지만 고정 수입이 생긴다는 사실은 든든했고 새삼 언니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아르바이트 첫날, 동생이 아닌 신입 아르바이트생으로 찾은 매장. 음식을 만들고 매장 관리를 업무라서 일 자체는 금방 배웠다. 물론 처음 며칠간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허둥대긴 했지만. 신입 아르바이트생으로서 일을 배우는 게 몇 년 만이지? 싶었다.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한 달 차, 일이 어느 정도 손에 익자 낮엔 채용 공고를 찾고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며 밤엔 아르바이트를 하는 패턴으로 차차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았다.


평소처럼 매장에서 홀로 일하던 금요일 밤이었다. 주문 마감을 30분 앞둔 시각. 그 날따라 유난히 잠잠했던 주문창에 갑자기 5분 간격으로 주문이 밀려들었다. 청소도 못한 채 마감 시간을 훌쩍 넘기고도 밀린 주문을 하나씩 소화하고 있던 그때, 늦은 시간에 매장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전화번호의 출처를 보니 조금 전 배달을 보냈던 곳이다. "네, 안녕하세요. ㅇㅇㅇ입니다." 하고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 상냥한 톤으로 전화를 받았다. 건너편에서는 받자마자 왜 음식만 보내고 일회용 수저를 안 가져다줬냐며 버럭 화를 냈다. 고객이 주문한 메뉴에는 일회용품이 포함되지 않는 거라고 분명 들었는데…. 죄송하지만 주문서에는 그 내용이 나와 있다고 답하니 건너편에서는 그럼 지금 수저가 없는데 어떡하라는 거냐고, 손으로 먹으라는 거냐며 언성을 높였다. 자신이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발생한 일에 되려 먼저 화를 내는 어이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할 말이 많은지 한참 동안 불만을 쏟아냈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하다는 걸 안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보내주는 것. 머리로는 그 간단한 방법을 알고 있으면서도 왠지 오기를 부리고 싶었다. 하지만 밀려있는 주문서를 보니 오기를 부리며 에너지를 쏟고 있을 한가한 때가 아니었다. 게다가 내 가게도 아니고, 언니의 가게에 민폐를 끼칠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미안하다고, 바로 보내주겠노라고 거듭 사과했다. 솔직히 말하면 미안하지 않았지만 미안하다는 말이 술술 나왔다. 이렇게 거짓 사과도 가끔은 먹히는 법이니까.


"사과나 드쇼..." 출처: Unsplash @Priscilla Du Preez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주문도 다 처리한 시각, 시계를 보니 열두 시 십분 전이다. 서둘러 매장 마감 청소를 하는데 갑자기 툭하고 눈물이 터졌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관찮았는데... 처음에는 한 방울이 또르륵 똑!하고 떨어지더니 이내 걷잡을 수 없이 흐르기 시작해 얼굴을 감싸고 엉엉 울었다. 퇴근 시간 11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 야속한지 서러움이 더해졌다. 그때는 눈물의 의미를 몰랐지만 울면서도 이따 집에 갈 때 내야 하는 택시비가 떠올라 심란했다. 천 원짜리 한 장도 아껴야 할 마당에 2만 원짜리 할증 택시라니. 돈 벌려고 하는 일인데 돈 때문에 마음 편히 울 수도 없고 택시도 못 탄다고 생각하자 문득 스스로가 불쌍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 날의 눈물의 의미를 곱씹어보니 목소리를 높인 고객으로 인한 당혹감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안 그래도 불안한 '시국'에 더 불안한 회사와 캄캄해 보이기만 하는 미래, 그리고 어떻게 될지 모르는 커리어 고민 등이 한데 섞여 서러움이 폭발했던 게 아닐까 싶다.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일이 가끔 누군가는 눈이 퉁퉁 붓도록 한바탕 울수 밖에 없는 일이기도 하니까. 그날 밤 눈물 머금은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길, 아무리 생각해도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역시 코로나 바이러스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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