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 缺乏 Lack

아무것도 아니지, 모든 것이기도 하고

by 생각
예루살렘은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아니지, 모든 것이기도 하고.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의 대사 中


결핍은 불편함이다. 불편함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모든 문제의 근원이기도 하다. 결핍을 채우면 불편함이 사라진다. 우리 주변에는 결핍이 차고 넘친다. 하지만 우리는 결핍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불편함을 억지로 참으며 살아간다. 결핍은 찾는 즉시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 아무것도 아닌 것을 모든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이노우에는 일본의 야간 경비원이었다. 어느 겨울밤, 근무를 하다가 쪽잠을 자게 되었다. 추워서 난로를 켰다. 난로를 켜면 실내가 건조해진다. 그래서 주전자에 물을 담아 난로 위에 올려 두었다. 문제는 소리였다. 물이 끓자 주전자 뚜껑이 덜그럭 거리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화가 난 이노우에는 옆에 있던 송곳으로 주전자를 내리찍었다. 송곳은 주전자 뚜껑에 구멍을 뚫었다. 송곳을 빼자, 구멍으로 증기가 세어 나오면서 소리는 줄어들었다. 이노우에는 이 아이디어를 특허로 등록했다. 우리가 쓰고 있는 모든 주전자에는 이노우에의 특허가 걸려 있다. 결핍을 즉시 해결하자 주전자가 특별해졌다.


이노우에가 우리보다 특별한 사람일까? 아니다. 누구나 주전자에 구멍을 뚫을 수 있다. 결핍을 만났을 때, 즉시 해결하면 누구나 특별해질 수 있다. 결핍을 찾기 위해서는 3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충분한 의도가 있어야 한다. 둘째, 공유된 경험을 찾아야 한다. 나만 불편한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셋째, 소비자의 행동을 관찰해야 한다.



결핍은 의도를 가지고, 공유된 행동을 관찰하면 찾을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광고하는 사람이라면 가장 먼저 배우는 성공사례 중에 경동보일러 광고가 있다. 이 광고는 대한민국 광고인 최초로 대통령 표창을 수상한 것으로 유명하다. 경동보일러의 경쟁상대는 귀뚜라미 보일러다. 1991년, 경쟁자였던 귀뚜라미 보일러가 먼저 가스보일러를 출시한다. 저렴한 연료비용과 과감한 광고 등으로 귀뚜라미의 가스보일러는 시장에서 승승장구한다. 뒤늦게 경동보일러도 가스보일러를 개발했다. 문제는 광고였다.


경동보일러는 후발주자였고, 광고 예산도 넉넉하지 못했다. 경동보일러는 유명한 광고 제작자인 이강우 대표와 윤석태 감독에게 SOS를 보냈다. 두 분은 지금도 광고학 개론 시간에 배우는 고향의 맛 ‘다시다’, 초코파이 ‘정’ 캠페인, 델몬트 ‘따봉’ 광고 등으로 유명한 국내 최대의 TV CF 프로덕션 세종문화의 공동 창업자다. 당시 광고를 총괄했던 국내 최초 CM플래너 이강우는 소비자의 결핍 찾기에 주목했다. 보일러를 구매하는 소비자의 행동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결핍 찾기 1주일이 되어가던 무렵, 한 신혼부부가 보일러를 사는 행동을 관찰한 두 사람은 광고의 영감을 찾았다. 컨셉이 정해지고, 광고가 제작된다. 광고가 방송에 송출된 후 3일 만에 경동보일러의 모든 제고가 판매됐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가스보일러 광고를 송출했는데, 연탄보일러와 기름보일러까지 모두 완판 되었다는 점이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가능했을까?


여보,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놓아드려야 되겠어요.


경동보일러 광고는 결핍을 찾아 해결했다. 경동보일러 광고 전의 소비자는 보일러를 집을 따뜻하게 해주는 제품으로 인식했다. 하지만 광고를 보고 난 후, 소비자의 인식은 바뀐다. 보일러의 따뜻한 기능은 당연한 것이 되어 버린다. 그럼 당연히 부모님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해주는 경동 보일러를 선택하게 된다.


당시 시대 상황도 광고의 성공에 크게 작용했다. 시골에서 농사짓고 소 팔아서 서울로 보낸 자녀들은 경제성장기의 바쁜 일과로 명절에도 자주 고향을 찾지 못했다. 고생하신 부모님께 큰 마음의 결핍을 가지고 살았다. 광고는 서울에 살던 지방 출신들의 결핍을 건드렸고, 경동보일러를 부모님 댁에 놓아 드림으로써 결핍은 해소됐다. 이처럼 결핍은 찾는 즉시 해결해야 한다. 결핍을 찾는 일을 습관화되면 작은 문제들을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친구는 가까이 두고
적은 더 가까이 둬라.

영화 ‘대부’의 대사 中


한식대첩은 결핍을 활용한 좋은 사례다. 시간에 결핍을 주거나, 채점과 대결 방식에 결핍을 일부러 만들어 긴장과 몰입을 극대화시킨다. 우리가 즐겨보는 대부분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이런 식으로 결핍을 적극 활용해서 시청률을 높인다.


한식대첩은 지역 음식 고수들의 대결을 다룬 프로그램이다. 한식대첩의 경연 방식은 시청자들에게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제작진은 일부러 고수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첫째, 매주 한 팀씩 탈락시킨다. 둘째, 매주 꼴찌 2팀이 제한된 시간에 패자부활전을 벌인다. 셋째, 예상하지 못한 재료로 특별 경연을 진행한다.


한식대첩은 매주 한 팀을 탈락시킨다. 인생 최고의 기회를 노리고 출전한 고수들이 한 주 만에 고향으로 돌아간다. 이 규칙은 고수들의 자만심을 제거시킨다. 천천히 하나씩 보여주겠다던 생각은 사라진다. 참가자들의 눈에는 첫 경기가 마지막이라는 결의가 넘친다. 결국 매회의 경기가 최고의 대결이 될 수밖에 없다.


한식대첩은 매주 꼴찌 2팀을 경쟁시킨다. 패자부활전이다. 요리 시간은 30분이다. 본 경기의 절반밖에 안 되는 시간이다. 당연히 경기는 2배 이상 힘들다. 패자부활전에서 떨어지면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시간도 부족하다. 고수들은 기존과 전혀 다른 방식을 찾아야 승리할 수 있다. 익숙함을 버려야 살아남을 수 있다. 이 순간에 숨겨둔 진짜 실력이 발휘된다. 결핍이 주는 좋은 가능성이라고 할까?



한식대첩 최고의 백미는 특별 경연이다. 고수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대결 조건이 주어진다. 고수들이 사전에 아무리 많은 연습을 했더라도, 갑자기 공개되는 뜻밖의 경연 방식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둘이 요리를 하다가, 한 명이 빠져야 하는 상황을 만들거나 5분씩 돌아가며 요리를 해야 하는 식이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불편한 요리 대결이다.


일정한 결핍은 새로운 방식을 탄생시킨다. 한식대첩 특별 경연의 제한된 조건은 더 멋진 요리를 만드는 최고의 재료다. 심사위원들도 제한된 상황이라는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존과 같은 맛을 내더라도 훨씬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이런 효과를 집중 배당금이라고 부른다.


사용기한이 있는 할인쿠폰의 사용률이 훨씬 높다거나, 영업 마감 마지막 주에 영업사원들의 실적이 높아진다거나, 마감기한이 있는 원고의 질이 훨씬 높다는 연구결과들이 집중 배당금 효과다. 이처럼 불편함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전략적으로 활용하면 적은 투자로 큰 효용을 만들 수 있다. 익숙함에서 벗어나야 특별해진다. 결핍은 특별한 경험을 획득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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