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 眞情性 Authenticity

포기 안 합니다. 절대 포기 안 합니다.

by 생각
포기 안 합니다.
절대 포기 안 합니다.

영화 ‘변호인’의 대사 中


진정성이란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마음이다. 맹수는 작은 사냥감을 잡는 일에도 목숨을 건다. 진정성은 속이지 않는 마음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정직한 사람이다. 진정성은 무섭다. 남을 속이지 않으면 내가 속을 일도 없다. 정직하게 진심을 다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무섭다.


축제가 열리기 하루 전, 인디언 추장이 제사에서 쓸 머리 휘장의 깃을 정리하고 있었다. 한 땀 한 땀 정성스럽지만 매우 천천히 깃을 손질하는 아버지를 보며, 추장의 아들이 물었다.


아버지, 어차피 어두워서 깃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텐데, 뭐하러 그리 수고스럽게 일을 하십니까?


답답해하는 아들에게 추장이 답한다.


아들아.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네가 알고, 내가 알지 않느냐?


이성은 차갑다. 이성은 속지 않으려고 한다. 진심은 따뜻하다. 상대의 칼을 보지 못한다. 차가운 이성은 이야기가 되지 못한다. 이야기가 되지 못하면 기억되지 않는다. 기억되는 힘이 진심이다. 이성과 진심이 만나면 진정성이 태어난다. 진정성은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진짜 마음이다. 세상의 모든 감동은 진정성이 만든다.


디디에 이브 드로그바 테빌리(Didier Yves Drogba Tébily). 그는 2000년대 아프리카 축구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다. 그의 국적은 코트디부아르, 내전이 끊이지 않는 나라였다. 드로그바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 소속으로 9번의 결승전에서 9번의 결승골을 넣은 아프리카의 영웅이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아프리카 예선에서 코트디부아르는 드로그바의 활약으로 사상 첫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다.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를 하던 드로그바는 간청한다. 정부군과 반군의 내전으로 국토가 분단되어 7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한 나라를 위해 슈퍼스타는 진심으로 무릎을 꿇는다.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그는 진심을 담아 말한다.


여러분, 단 1주일 만이라도 전쟁을 멈춰주세요.


드로그바의 눈물 어린 호소와 눈부신 활약으로, 전쟁은 거짓말처럼 멈췄다. 1년 후, 정부군과 반군은 기적처럼 평화협정을 체결했고, 5년간 끌어오던 내전은 거짓말처럼 끝났다. 많은 사람들이 축구를 전쟁에 비유한다. 하지만 드로그바는 축구로 전쟁을 끝냈다. 간절한 마음이 기적을 만든다.



진정성은 따뜻함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해리 할로우(Harry Harlow)는 접촉위안(Contact Comport)을 실험했다. 갓 태어난 새끼 원숭이를 엄마와 떼어놓은 후, 한쪽에는 가슴에 우유병을 단 차가운 철사 인형을 다른 한쪽에는 부드러운 헝겊으로 둘러싸여 있는 인형을 놓아준다. 원숭이는 배가 고플 때만 철사 인형에서 우유를 먹고, 헝겊 인형 곁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따뜻한 포옹이 배를 채우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진정성은 생명을 살린다. 2010년 3월, 호주 시드니에서 귀여운 쌍둥이 남매가 태어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 아기는 태어난 지 20분 만에 사망진단을 받는다. 사망선고를 들은 엄마가 의사에게 부탁한다. 한 번만 안아봐도 될까요? 엄마는 환자복을 벗고 온 몸의 체온을 담아 죽은 아이와 작별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엄마의 심장소리가 들리니? 엄마는 널 많이 사랑한단다.


바로 그때, 아이의 몸에서 작은 움직임이 느껴진다. 급히 달려온 의사는 죽은 아이의 반사행동일 뿐이라고 말했지만, 엄마는 포기하지 않고 모유를 건네기 시작한다. 두 시간 뒤, 아기는 작은 손을 뻗어 엄마의 손가락을 잡는다. 엄마의 포옹으로 사망선고를 받은 아기가 기적처럼 살아난다. 엄마의 진정성이 아이의 생명을 살렸다.


대한민국의 음악 역사는 서태지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말한다. 문화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서태지, 그의 데뷔 무대는 어땠을까? 출발부터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순탄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방송에 처음 데뷔한 서태지와 아이들을 전문가들은 혹평했다. 심지어 평가 자체를 거부한 평론가도 있었다.


진정성은 쉽게 비판받는다. 진짜인지 거짓인지 누구도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진심은 도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좌절이 없으면 성공의 이야기도 있을 수 없다. 위기와 실패는 진실로 극복하면 된다. 진정성은 나와 세상을 바꾼다. 중용 23장은 우리에게 진정성의 힘을 알려준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내 글씨는 아직 말하기에 부족함이 있지만,
나는 70 평생에 벼루 10개를 밑창 냈고,
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

추사 김정희 ‘완당평전’ 中


진정성은 전략을 만나야 완성된다. 전략은 차갑지만 촘촘하다. 전략의 목적은 전쟁의 승리다. 승리를 위해 전투를 계획·조직·수행하는 큰 차원의 계획이다. 전략론의 저자 바실 헨리 리델 하트는 "전쟁의 목적은 살육이 아니다. 적을 항복시키는 것이다. 전략이 적의 저항 의지를 마비시킬 수 있다면, 살육은 필요 없다"라고 말했다. 전략은 피 흘리지 않는 승리다.


전략은 비군사적 분야에서도 응용되고 있다. 특히 기업의 경영분야에서 크게 발전했다. 존스홉킨스 대학교의 경영사 교수였던 알프레드 챈들러는 경영전략을 "기업의 장기적 목적 및 목표의 결정, 이들 목표를 실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활동방향과 자원배분의 결정"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논문 ‘보이는 손’으로 퓰리쳐상을 수상했다.


현대적 의미의 전략이란, 승리를 목적으로 필요한 활동방향과 자원배분을 결정해서 경쟁자를 항복시키는 행동이다. 전략은 경쟁이 있어 존재한다. 하버드대학교의 마이클 포터 교수는 전략의 경쟁요인을 새로운 진입 기업의 위협, 대체재의 위협, 구매자의 교섭력, 공급자의 교섭력, 기존 기업 간의 경쟁의 5가지로 정의한다.


기업은 5가지 경쟁요인을 통해 시장의 현황과 미래를 읽을 수 있고, 시장의 여러 신호를 판단해서 대응전략을 설계할 수 있다. 마이클 포터는 기업이 경쟁우위를 가지기 위해서는 본원적인 3가지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3가지 전략이란 원가 우위 전략, 차별화 전략, 집중화 전략이다. 그럼 전략은 어떤 순서로 설계될까?



전쟁이란 속임수다. 손자병법(孫子兵法, The Art of War)은 고대 중국의 병법서로, 동서고금을 통틀어 가장 훌륭한 전략 지침서라 평가받는다. 조조는 "병법서 중에서 손자병법만이 가장 심오하다"라고 극찬했다. 손자병법 시계(始計) 편에는 전략 수립의 순서에 관한 좋은 지침이 나온다. 바로 도천지장법(道天地將法)이다.


전략의 시작은 도(道), 뜻을 세우는 일이다. 뜻은 의지고, 비전이다. 사업을 시작한다면, 왜 사업을 하는지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돈을 벌자가 아니라, 돈을 왜 벌어야 하는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뜻을 세웠다면 전략을 펼칠 때를 결정해야 한다. 행동의 적절한 시기를 결정하는 일이 천(天)이다. 뜻이 좋아도 시기를 놓치면 패한다.


지(地)는 위치를 결정하는 단계다. 전쟁에서는 전장(戰場)이고, 경영에서는 시장이다. 아무리 좋은 뜻과 시기를 잡았어도, 내가 싸워 이길 수 없는 곳에서는 전쟁을 할 수 없다. 해군이 공중에서 싸울 수 없고, 한국어 강사가 미국에서 성공하기 힘든 이치와 같다. 내부적으로는 나의 현재 위치와 역량을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뜻과 때와 위치까지 결정했다면, 나가서 싸울 장수를 선임해야 한다. 장(將)은 적임자를 뽑아 권한을 위임하는 단계다. 장의 본질은 적재적소와 권력분산이다. 전략의 마지막 단계는 법(法)이다. 법은 제도이자 시스템이다. 시스템은 체계적이어야 한다. 좋은 시스템은 때와 장소, 사람이 바뀌어도 문제없이 작동되는 유기체다.




칼에 피가 흐르게 할 것이냐,
아니면 칼이 되겠느냐.

영화 ‘역린’의 대사 中


아무리 전략을 잘 세워도 세상 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2008년의 일이다. 한 대기업 인사교육팀에서 큰 프로젝트를 의뢰받았다. 너무 좋은 기회라 초반 손해를 감수하고 정성을 다했다. 문제는 고객사 매니저의 태도였다. 예술가에게 무례한 요구를 하는 행동이 반복되었다. 우리 회사 직원이 이 문제를 정중하게 항의했다.


직원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인격적인 모욕을 당했고, 심지어 욕설까지 들었다고 했다. 화가 났다. 고객사 매니저 전화번호를 받았다. 통화버튼을 누르기 전에 생각했다. 침착하자, 전략이 필요하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의 가짓수를 머리에 그렸다. 그리고 예상 가능한 반응을 모두 적은 후, 최선의 행동을 선택했다.


나 : 여보세요?
갑 : 네, 대표님 안녕하세요. (상당히 상냥했다)
나 : 네, 잘 지내셨죠? 직원에게 보고를 받았...
갑 : (말을 끊으며 대뜸) 그러게 말이에요! 어떻게 그렇게 건방질 수가 있죠?
나 : (옳거니) 욕설을 들었다고 하던데요?
갑 : (머뭇거리며) 네, 그럴 수밖에 없었네요....
나 : 사과하실 거죠?
갑 : 뭐라고요? 대표님 미치신 거 아니에요??!! (욕도 했다)
나 : 그럼 상무님과 통화하겠습니다. (딸깍)


내가 상무와 통화를 했을까? 하지 않았다. 내가 예상한 시나리오는 본인 스스로의 입으로 갑질을 상사에게 보고하는 매니저의 행동이었다. 내가 전화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매니저는 (너무나 고맙게도) 상무를 직접 찾아가 자신의 행동을 당당하게 보고했다. 결과는? 상무가 나에게 전화를 했고, 며칠 후 우리는 사과를 받았다.


물론 피해도 있었다. 고객사 매니저는 그날 이후 우리에게 프로젝트를 의뢰하지 않았다. 본인이 가진 권력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한때, 이 갑질 사건을 술자리에서 자랑했던 시절이 있다. 이제는 하지 않는다. 결코 훌륭한 전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과를 받고 고객사 매니저를 진심으로 용서하지 않았다. 이성이 감성에 패배했다. 내가 나에게 졌다.



전략은 완벽할 수 없다. 세상에 완벽한 승리란 없다. 전략의 함정은 신의 한 수를 믿는 순간 생겨난다. 2016년 이세돌 선수와 알파고가 벌인 세기의 대결. 대결 4국에서 이세돌의 절묘한 수가 나온다. 알파고의 시스템은 당황했다. 결국 이세돌 선수가 승리한다. 그런데 그게 정말 신의 한 수였을까? 다시 반복될 수 있을까?


이후 구글은 알파고 제로를 출시했다. 셀프 바둑 시스템으로 바둑의 이치를 스스로 터득하는 알파고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알파고 제로는 강화 학습을 시작한 지 36시간 만에 이세돌을 상대했던 알파고의 실력을 넘었고, 40일 만에 커제를 꺾은 알파고 마스터의 실력도 넘어섰다. 이세돌이 다시 알파고 제로를 넘을 수 있을까?


세상에는 전략이 필요 없는 순간이 더 많다. 명백한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잘못은 진심으로 인정해야 수습된다. 세상에는 피해를 주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가해자들에게 신의 한 수는 없다. 세상에 잘못을 없앨 수 있는 전략은 없다. 무릎 꿇고, 정성을 다해 사과하고, 충분한 죗값을 받는 길이 최선이다.


영원한 승리는 없다. 따라서 영원한 전략도 없다. 신의 한 수가 존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또한 영원한 전략은 될 수 없다. 전략의 함정은 지속가능함을 맹신하는 일이다. 치밀한 전략이란, 최악의 수를 두고도 최선을 쫓는 치열함이다. 이기는 전략이란 신의 한 수를 잊고, 인간의 불완전함을 완성하기 위해 계속 걷는 것이다.


완벽한 것은 하늘의 길이고, 완벽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인간의 길이다. 사람은 완전하지 않다. 사람이 만드는 일도 완전할 수 없다. 완전해지는 유일한 길은 진정성이다. 이성과 감성의 균형을 맞추면 내가 바뀐다. 균형은 군사를 움직일 때는 질풍처럼 날쌔게 하고, 나아가지 않을 때는 숲처럼 고요하게 있는 것이다. 균형만이 진정성을 성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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