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학년말에 내년에 담임할 반은 뽑기로 뽑는다. 내 운은 내가 정하고, 내가 선택했기 때문에 누군가를 원망할 일도 없다. 한 해 걸러 한 해 또는 두 해 연속 통합반 담임이었다. 그것도 내가 아직 한참 어린 병아리 선생님일 때 특수반에서도 힘들기로 소문난 아이들을 우리 반으로 뽑은 것이다. 내 손으로 내가 직접!
'특수교육에 대한 소양도 없는 내가 통합반 담임이라니...'
우리 반 출석부를 보고 있는데 특수반 선생님이 교실로 찾아왔다. 특수반인 현이가 우리 반인 것을 알고 찾아온 것이다. 내가 3월에 현이를 만나기 전에 미리 현이에 대해 알려 주려고 말이다. 통합반 담임은 처음이라 난감했지만, 특수반 선생님이 계시니 많이 의지가 되었다.
현이가 잘하는 것, 싫어하는 것 등을 알려 주시고는 돌발행동에 대해 주의를 기울일 것까지 상세히 알려 주었는데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았다.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3월이 되고 개학을 했다. 나 역시 설레고 약간은 긴장된 마음으로 아이들을 맞이했다. 검은 안경을 쓴 아이가 훈이다. 뭐라고 하는지 쉬지 않고 중얼중얼거렸다. 훈이에게 다가가 알은체를 하며 자리를 안내해 주었는데, 눈길도 안 주었다. 낯선 선생님인 나와 눈도 안마주치는 훈이... 난처한 웃음이 절로 나왔지만 첫술에 배부르랴. 시간이 걸리겠구나 했다.
3월이 다 지나가는데도 훈이는 눈길을 잘 주지 않았고, 뭔가 성에 안 차면 교실을 뛰쳐나가 버렸다. 어찌나 빨리 달리는지 미꾸라지처럼 이리저리 잘 피해서 달렸다. 수업시간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결국 특수반에 sos 연락을 한다. 그러면 특수반 선생님이 재빨리 훈이를 찾아 나섰다. 특수반도 여의치 않지만 특수반 선생님은 훈이를 다루는 법을 나보다는 잘 알았기에... 한동안은 연락을 했다.
한 번은 수업을 다 마치고 인사를 하고 가려는데 훈이는 또 뭔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큰소리로 "선생님 죽어버려~"라고 말했고, 11살 우리 반 아이들은 다 어안이 벙벙한 채로 서 있었다. 나는 이미 그런 말을 할 수 있으니 너무 놀라지 말라는 말을 전해 들었기 때문에, '아~ 이런 거구나!'하고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크고 작은 일들을 겪는 동안에 훈이는 나와 눈도 마주쳤고, 나를 담임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수시로 특수반 선생님께 찾아가 상담을 했고, 조언을 들었다. 특수반 영희 선생님은 언제나 나를 반겨 주었고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었다. 훈이와 같이 자폐 아이의 성향에 대해서도 수시로 말해 주었다. 나보다 훨씬 힘들 영희 선생님을 만나고 오면 더 힘이 낫고 내일은 훈이와 어떻게 지내야 할지 계획이 서고 마음도 다잡을 수 있었다.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통합반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교사와 학생 모두 장애 인식이 개선될 수 있도록 애쓰시는 분들이 특수교사들이다. 일반학교에서 특수반은 또 다른 하나의 작은 학교처럼 운영이 되기 때문에 특수 선생님들의 일은 정말 많다. 그럼에도 선생님들은 항시 웃는 얼굴로 친절하게 대해 주셔서 저분들은 천사들인가 생각한 적도 있다. 영희 선생님을 만나면서 나는 늘 주변에 "특수 선생님들은 천사야~" 하고 말하고 다니곤 했다.
12월이다. 영희 선생님은 무슨 일로 분주해 보였다. 바쁘시냐고 물었는데... 크리스마스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크리스마스 이벤트라니...
"우리 반 아이들이 산타를 만나서 선물 받은 일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산타 복장을 하고 찾아가려고요."
"네~? 아이들 집으로 직접 가신다고요?"
나는 정말 영희 선생님의 열정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영희 선생님은 진심으로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었고, 장애아에 대한 학교와 사회의 인식 변화를 사명으로 알고 사는 선생님이었다. 선생님과 대화를 나눌 때마다 마음이 뭉클뭉클했었다.
내가 처음으로 통합반 담임을 하고 훈이를 맡았을 때, 영희 선생님을 만난 것도 얼마나 복인지...
시간은 20년도 더 흘렀는데 영희 선생님의 열정은 여전했다. 지금은 특수교사들을 위한 연수에서 강의도 하시며 더 활발히 활동하고 계신다고 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과 학교 안팎에서 선생님들과 협력하며 장애 아동을 위해 애쓰시는 영희 선생님의 열정은 사그라들줄을 몰랐다.
영희 선생님 덕분에 나는 통합반을 잘 운영할 수 있었고, 지금은 어떤 특수반 아이가 와도 두렵지 않다. 우리 반 아이들을 교육할 때도 "우리가 훈이랑 1년을 보낼 수 있는 것은 행운이야. 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우리와 잘 어울려 지내야 하고 우리는 그것을 올 한 해에 더 잘 배울 수 있어."이렇게 말해 두면 우리 반 아이들도 수긍했다. 그 해 훈이는 우리 반 스타가 되어 일 년을 잘 보냈다.
훈이 덕분에 더 많이 배우고 성장한 것은 담임인 나와 우리 반 아이들이었다. 학교 밖에서 장애인을 만나도 어색하지 않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지 물을 수 있었으며 함께 나아갈 수 있었다.
산타가 되어 준 영희 선생님과 비록 산타는 아니었어도 장애아를 위해 애쓰는 많은 특수 교사들의 노고에 존경을 표한다.
** 고 인천특수선생님...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기사를 보다가 우리를 '천사'라 부르지 말아달라는 문구를 보았습니다.
진심으로 존경스러운 분들이라 그렇게 표현했는데, 어쩌면 큰 무게로 다가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옆에서 보아 온 특수교사들은 한결같이 아이들을 위해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에 반해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한 이해는 학교 관리자도 일반 교사도 학부모도 제대로 모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의 아이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교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정규 슈업이 끝났는데도 아이를 찾아가지 않는 학부모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특수교사가 하는 노로에 비해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처우지요. 사회에서 특수교사들 만큼 장애아를 위해 애쓸 사람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 많이 합니다. 존경받아 마땅하고 힘든 만큼 대우받아야 할 일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 애들 어떻게~?'라면서 아파도 힘들어도 꾸역꾸역 그 자리를 지키고 계신 분들인데... 다들 잘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