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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러버 Nov 18. 2024

너의 색깔은 블랙

고개 숙인 너

11살 한창 예쁜 어린이들

학교에서 만난 11살 어린이들은 말귀를 알아들으면서 주도적으로 일도 잘하고 아직은 귀여운 면이 많은 아이들이라 언제 만나도 좋았다. 내가 맡은 4학년 아이들은 호기심도 많고 책도 많이 읽어서 똘똘하고 게다가 심성도 고와서 '이게 왠 복인가?' 했다. 하나의 주제만 던져 주어도 한 시간을 꼬박 이야기할 수 있는 아이들이라니 정말 수업할 맛 나는 그런 교실이 우리 반이라니, 복 받았다.


똘똘하고 착실한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은 더할 나위 없이 신나고 좋았다. 내 입에서 감사가 절로 나오는 때라고 해야 할까? 그렇긴 했지만 아이들 개개인을 보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뛰어난 아이들은 많았지만 한 명 한 명을 들여다보면 나름의 고민은 있었다. 1년을 보내면서 모든 아이들이 나와 마음이 맞거나 합이 잘 맞는 것은 아니다. 끝끝내 마음을 열지 않는 아이들도 있다. 나는 주로 그런 아이들에게 마음이 간다. 누구에게나 칭찬받을 만한 아이들은 꼭 내가 아니어도 충분히 잘 지낼 수 있지만, 올 한 해 우리 반에 있으면서 어둡거나 말이 없는 아이들은 항상 내 눈길을 사로잡는다.


우리 반 S는 항상 검정 운동복을 입고 다닌다. 언제나 검은색 옷을 입는다. 여학생들 중 키는 가장 크고 11살이라고 하기엔 좀 성숙해 보였다. 키가 크고 조금 마른듯한 S는 항상 검정 운동복 복장을 하고 땅을 보고 다녔다. 얼굴을 들고 다닌 일을 본 적이 거의 없다. 고래를 약간 숙이고 무표정하게 지냈다. S는 친구들에게 먼저 말을 시키는 일도 없었다. 굳이 한다면 학습지나 시험지를 전달할 때 친구를 부르는 정도였다. 친구들은 먼저 S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놀고 싶어 했지만 혼자를 자처한 것은 S였다. 그런 S가 궁금했다. 왜 그러는 건지...


아침에도 어찌나 일찍 오던지 출근길에 S를 만나면 유난히 더 크고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S야 안녕~ 주말은 잘 보냈니?"

"네~"

나를 쳐다보고는 낮고 짧은 답을 하고 다시 땅을 보며 걷는다.


 S에게 인사를 건네고 먼저 교실로 들어가면서도 궁금했다.

'S는 학교를 참 일찍 오네~'

그러고 보니 S는 일찍 등교해서 돌봄 교실로 갔다가 교실로 온다. 학교가 끝나고 돌봄에 가 있다가 학원을 하고 어떤 날은 돌봄 교실에서 석식까지 먹고 집으로 갔다.

학교에 교사인 나보다 더 오랜 시간을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방학 때도 똑같이 학교에 나와 돌봄 교실에 있다가 저녁에 돌아간다는 것이다.

'오 마이 갓!'


'S의 어두움이 학교에서 너무 오랜 시간 머물러서인가?'

아이들이 하교하면 집에 가서 뒹굴거리기도 하고, 놀이터에서도 놀고, 친구 집에도 놀러 가고 해야 하는 건데

생각해 보니 S는 그럴 일이 없겠다. 주말에 가족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긴 했겠지만 아직 11살  어린 나이인데 집 밖에 나와 있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누가 봐도 편안한 상황은 아닌데 그렇다고 부모님께 이런 일로 상담을 하기도 어려웠다. 나름의 사정이 있을 텐데 섣불리 말을 꺼낼 수도 없고...


S는 말이 없었지만 항상 스스로에게 파이팅을 외치고 있었다. 벌써 미래의 모습을 꿈꾸며 잘 살아갈 다짐을 하는 것이 20대 젊은이를 보는 듯했다. 속내를 잘 내비치지 않아서 알은체를 할 수도 없었지만 S는 그랬다.

말이 없고 표정이 어두운 것 말고는 나무랄 데 없이 자기 할 일을 잘하는 아이였고, 주말에는 부모님과 운동도 하고 외식도 하며 시간을 잘 보내는 듯해서 다행이다 싶었다.


S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말을 건네도 단답형의 대답 밖에 돌아오지 않아서 S의 마음은 끝끝내 알지 못했다. 한 해가 가고 아이들과 마지막 인사를 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악수를 권하며 덕담을 해 주었다. S와 악수를 하다 S를 와락 껴안으며 'S야 5학년 때도 즐겁게 건강하게 잘 지내~'하고 인사를 했다. S를 한 번 안아 주고 싶었다. 나보다 더 큰 아이를 말이다.


그렇게 아이들을 떠나보내고 나는 또 다른 어린이들을 만나 정을 쌓고 있었다.

스승의 날이라고 작년 반 아이들이 손수 만든 편지를 가지고 왔다. S도 그 무리에 껴 있었다.

S가 편지를 가져오다니...

이런저런 안부를 묻는 말들을 지나

'선생님의 은혜를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라는 한 문장에 눈물이 맺혔다.


S가 끝끝내 마음은 열지 않았지만 내 마음은 알아주었구나 싶어서


지금도 생각하면 S의 이미지는 블랙이다.

하지만 S가 다짐하고 노력하여 성장한 어느 날엔 활짝 웃는 모습을 기대한다.


'S야 강인하고 멋진 모습으로 잘 살아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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