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국어시간이다. 동화 속 인물에게 편지를 썼다.
1학기에 배운 편지 형식을 다시 한 번 설명해 주었다. 편지 형식에 맞게 글을 쓸 것을 주문했고, 당연히 제일 중요한 것은 '하고 싶은 말'이라고 강조했다. 교과서에 있는 편지지를 꽉 채워야 하냐는 질문은 항상 나온다.
"그럼~ 편지 형식에 맞춰 쓰려면 그 종이도 부족하지 않을까?"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을 거라고 답했다. 몇 줄이라도 줄여 보려는 아이들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칸이 부족하면 아래에 더 써도 되냐고 묻는 아이들이 나온다. 물론 그렇다고 말한다.
어떤 인물에게 무슨 말을 했을지 궁금해진다. 발표하고 싶은 사람을 시킬 수도 있지만 우선 뽑기로 발표할 사 람을 정했다. 누가 나올지 몰라 두근거리는 마음도 있고, 뽑기로 뽑힌 거라 기분 좋게 나오기도 한다. 교탁 앞으로 나와서 발표를 하자니 은근 부담스러웠는지 아이들의 목소리가 잦아든다.
동화 속 주인공을 칭찬하는 편지글을 들으며 아이들이 긍정적이고 밝아서 내심 기분이 좋았다. 그러다 한 친구가 자기 자리에서 발표를 하고 싶다고 했다. 앞에 나가는 것은 부담스럽다고 말이다. 그 친구의 마음은 이해가 되었으나, 이미 앞에 나와 발표한 친구들도 있고, 너 또한 그렇게 할 수 있으니 나와서 해 보자고 했다.
나오긴 나왔는데 또 한참 뜸을 들인다. 교탁에 몸을 기대어 머리를 앞뒤로 흔들고 다리도 들었다 놨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괜찮으니 평소대로 발표해 주면 된다고 했지만, 좀 더 기다려야 했다. 평소에 말도 많고 승부욕도 강해서 체육시간마다 큰 소리로 경기를 주도하던 아이라 의외의 모습이었다. 끝내 속사포처럼 주르륵 편지글을 읽고 들어갔다. 뭐라고 말하는지 귀 기울여 들으려 애썼다. 그 친구가 발표하고 들어가자, 한 친구는 뭐라고 하는지 못 들었다고 하고, 또 한 친구는 동화 속 주인공이 착하다는 이야기네 하고 요약을 했다. 둘 다 맞는 말이었다. 교실 뒤쪽에 있는 친구는 발표를 듣기 어려웠을 거 같고, 앞쪽에 앉아서 열심히 들은 아이는 친구가 발표한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었다.
"얘들아, 많은 사람들 앞에 나와서 발표를 한다는 것은 모두에게 부담스러운 일이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앞에 나와 말하는 것을 힘들어해. 긴장되고 실수할까 걱정하고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말이야. 하지만 앞에 나와서 발표하는 경험이 쌓이면 점점 익숙해져. 선생님도 그랬어. 교탁 앞에 서서 우리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게 처음부터 익숙하고 편했을까? 아니야... 오래 하니까 편해진 거지. 그러니 너무 걱정 말고 다 똑같은 마음이다 생각하고 나와서 해 보면 돼~. 여기서 중요한 건 청중... 듣는 사람의 태도야. 앞에서 발표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청중이 할 일. 우리는 그걸 잘하면 돼."
아이들은 알아 들었다는 듯이 의자를 당기고 자세를 바로 해서 앉았다.
마지막 당첨자. 평소에 조용하고 목소리도 작은 S가 뽑혔다. S는 '아~ 나다'하며 어쩔 수 없는 미소를 짓곤 앞으로 걸어 나왔다. 교탁 앞에 선 S는 주저하지 않고 바로 편지글을 읽었다.
"에밀~ 아저씨를 위해 피아노를 연주하는 너의 모습이 정말 용기 있다고 생각해. 나는 그런 네가 부러워. 왜냐면 나는 용기가 없거든~ "
S의 편지를 듣다 '나는 용기가 없거든.' 그 대목에서 나도, 그 앞에서 듣던 A도, B도 다 멈칫했다. S가 자신의 마음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A의 표정이 내 눈에 들어왔다. 친구의 마음이 전해진 표정... '아~'하고 친구의 발표를 들으며 박수를 칠 준비를 하는 모습. S의 발표가 끝나자, 나와 동시에 A는 크게 박수를 쳤다. 친구들의 박수를 받고 들어가는 S에게 B가 말했다.
"S야~ 너는 용기가 있어."
나는 교실에서 자주 뭉클해진다.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쓴 친구도, 뜨겁게 박수를 보내는 친구들도, 넌 용기가 있다고 말해 주는 친구도 다 얼마나 멋진가.
마음도 자신을 드러낼 때, 진짜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