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 노릇

동심을 지킬 것이냐 내가 편할 것이냐?

by 북러버

이번 크리스마스는 난이도 백이었다.

크리스마스이브가 등교날이라 학교에서도 뭔가 재미있는 것을 해야 하고 집에서도 이벤트를 준비해야 해서 마음이 분주했다. 현실은 아들 독감에 병시중 들다 학교 가서 학년말 업무 처리하느라 정신하나 없는 때다. 미리 과자파티를 예고했어야 했는데 못했고, 교실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다 말았다. 어느 거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어서 속상했다.

사회 시간에 배우는 가족이라는 주제와 어울리는 <인크레더블> 영화를 보여주는 것이 나름의 이벤트였다. 미리 예고하지 않고 보여준 것이니 아이들은 이게 웬일이냐 했을 것이다. 미리 준비해 둔 크리스마스 시즌 젤리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과자파티를 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급식시간을 앞두고 젤리 두 봉지 정도면 충분했을 테다.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아이들은 야무지게 젤리를 씹으며 영화를 보았다.


집에는 독감으로 학교를 못 간 아이가 있다. 정신없이 집으로 달려왔는데, 아직까지 준비해 둔 산타 선물이 없다. '왜 나는 선물 준비도 안 해 놓고 있었나?' 둘째는 산타할아버지에게 다람쥐를 달라고 편지를 썼다.

'아니 다람쥐라니... ' 유튜브에서 다람쥐를 키우는 아이를 보았다며 자기도 다람쥐를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침착하게 이성적으로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 다람쥐가 집에서 사는 게 행복할까? 다람쥐는 산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을 거야. 산타 할아버지도 다람쥐 선물은 안 해 주실 거 같아. 다람쥐가 불쌍하잖아~"

그러든가 말든가 아들은 다람쥐와 함께하는 일상을 꿈꾸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무 선물도 준비 못하고 24일을 맞이했다.


아이가 일어났을 때, 아무것도 없는 것은 말이 안 되었다. 작년에는 산타가 쿠키까지 먹고 갔다고 이번에도 쿠키 3개와 우유를 준비해 두고 자겠다고 했다. 나는 저녁에 부랴부랴 쇼핑몰로 달려가 아이가 좋아하는 책 한 권을 하고 간식거리를 사서 상자에 담았다. '에라 모르겠다. 내가 산타라고 밝히자~ 산타 노릇도 너무 힘들어'

책 한 권, 간식, 그리고 내가 쓴 크리스마스 카드 그리고 그 봉투에 5만 원을 넣었다.


5만 원을 넣은 이유는... 사춘 소녀인 딸은 철저히 산타의 존재가 있다고 동생의 동심을 지켜주며 자신도 더불어 선물을 받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엄마, 산타가 선물로 현금도 줘~?"

그랬다. 이왕이면 선물로 현금을 받고 싶었던 게다. "아유~ 현금을 어떻게 선물로 줘~" 했던 나는, 거리낌 없이 두 아이의 크리스 마스 카드 봉투에 현금을 넣었다. 그리고 산타는 엄마다!라고 말할 참이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아들은 너무 설레어서 잠이 안 온다고 했다. 쿠키와 우유를 쟁반에 예쁘게 담아서 트리 앞에 갖다 주고는 너무 떨린다는 말을 되뇌다. 잠이 들었다. 가슴이 아팠다. 아이의 마음을 읽으면서 더 고민하지 않고 더 부지런을 떨지 않은 나를 자책하며 마음을 졸였다. '아이가 실망할 거 같아...'


아침에 일어나 선물을 신나게 열던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엄마~ 이건 선물이 아니야!"

그러고는 소파로 달려가 드러누웠다. 상심에 가득한 얼굴로 꿈쩍도 않다가 자기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곤 내 옆으로 달려와 훌쩍훌쩍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하~~~~'


곰곰이 생각하던 아들은 이러저러한 모든 의심을 뒤로 한채,

"엄마. 왜 산타할아버지가 나한테도 5만 원을 줬는지 알겠어. 누나가 현금을 받고 싶어 해서 그런 거야."

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면서 최악의 크리스마스라고 했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학교로 왔다. 아이들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뭘 받았냐며 한 마디씩 했다.

아윤이는 내 앞으로 다가와 조용히 속내를 이야기했다.

"선생님, 제 선물은 우리 집에 있던 포장지로 포장이 되어 있었고요. 제 동생은 해리포터 지팡이가 우리 집에 있었는데, 그걸 선물로 받았어요. 진짜 엄마는 속임수가 너무 없어요."

현수도 다가와 말했다.

"선생님, 저는 5만 원을 받았어요. 아니 돈을 원한 것도 아닌데 5만 원이 있었다니까요. 아쉽지만 산타가 엄마아빠라는 것을 알게 돼서 미스터리가 풀린 건 다행이에요. 속이 다 시원해요."


'하하하~'

5만 원을 받은 아이가 우리 집 아이들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속으로 웃었다.

아윤이엄마도 현수의 부모님도 다 이해가 됐다.


이럴 땐, 온전히 아이들 편이 되지 못한다.

'그랬구나~' 하고 엷은 미소를 띠며 아이들 이야기를 듣고, 속으로는 '부모님들도 고생이시네요~' 한다.


한탄일 수도 있고, 자랑일수도 있는, 슬픔과 기쁨 그 어느 것이 됐든 아이들의 가감없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이 교사가 가지는 또 하나의 '뭉클한 매력'이 아닌가 한다.







토요일 연재
이전 09화화내기를 더디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