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말아 주세요

by 북러버

유난히 얼굴이 하얗고 또래 친구들보다 성숙한 하준이...

10살 하준이는 뭐든지 열심히 하는 아이였다.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공부든 운동이든 미술이든 다 열심히 해서 눈에 띄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의젓한 하준이는 인기가 있어서 학급 회장으로 당선이 되었다. 그 당시에는 학급회장이 되면 어머니들이 학교에 방문해서 학급에 도울 일이 없냐고 묻곤 하던 시절이다. 학급회장단 어머니들이 교실에 왔다. 하준이 엄마는 첫눈에 보기에도 아주 젊어 보였다. 짧은 플레어 청치마를 입고 와서 조금 놀랐다. 그 당시 유행하는 옷이기는 했지만 대개 엄마들은 학교에 올 때 점잖게 빼입고 오는데 하준이 엄마는 발랄하게 입고 왔다고 해야 할까? 뭐 그건 개인의 취향이니 문제가 될 일은 아니다. 다만, 흔하지 않은 장면으로 내게 인상을 남겼을 뿐이다.


지금은 각종 대회가 많이 사라졌지만, 교내 포스터 그리기, 표어 만들기 대회 등이 있을 때다. 몇몇 아이들의 그림은 기존에 상을 받거나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그림이랑 많이 닮아 있었다. 그럴 수 있다. 포스터를 그리고, 표어를 쓰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따라도 그려보고 따라 써 보면서 내 것이 탄생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똑같이 베껴 온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교탁 앞에 선 채로 모든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포스터를 그릴 때, 다른 사람의 것을 보고 그대로 베끼는 것은 안돼~.:

하고 말하자마자 하준이가

"저 안 그랬어요~"

하고 다급하게 받아쳤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일테다. 하준이 이름을 들지도 않았고 하준이를 향해 말한 것도 아닌데... 하준이는 스스로 그렇게 반응할 만큼 딱 그 정도로 어리고 순수했다.


한 날은 하준이가 지각을 했다. 아이가 9시가 넘도록 학교에 오지 않아서 집으로 전화를 했다. 하준이 엄마는 하준이가 늦게 일어나서 이제 학교로 보낸다고 했다. 그러면서 혼내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어쩌다 한 번 지각한 것으로 혼내는 사람은 아닌데 혼내지 말아 달라는 말을 들으니 언짢았다.

하준이는 1교시가 끝날 무렵 교실로 들어왔다. 하준이가 들어와서 자리에 앉는 것을 보고 교실을 휘 둘러보다 교실 뒷문 창문에서 얼굴만 내민 하준이 엄마가 보였다. 무엇이 걱정이었는지 엄마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교과시간이 되어 아이들은 영어 교과실로 이동을 했다. 놓고 간 것이 있는지 하준이가 교실로 다시 돌아왔다. 필통을 손에 든 하준이의 오른팔에 시커먼 뭔가가 보였다. 하준이를 잠깐 불러 세워 소매 자락을 살짝 들어 보았다. 멍이었다. 오른팔 전체가 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하준아 이게 무슨 일이야? 네 팔이 왜 이래?"

하준이는 들키지 말아야 할 것을 들킨 것처럼 어쩔 줄 몰라하며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나 역시도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할지 난감했다. 하준이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하준아 혹시 엄마한테 맞았니?"

물어보는 내 얼굴을 외면한 채 작은 목소리로 네~라고 대답했다.

"하준아 일단 보건실에 가서 연고라도 발라야겠다."

"선생님, 괜찮아요.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 주세요~"

마음이 내려앉았다. 고작 10살 아이가 참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하준이는 3학년이 되어 나를 만나기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린 삼 남매를 남겨놓고 남편이 죽고, 하준이 엄마는 홀로 아이 셋을 키워야 했다. 그 사정은 알기에 엄마가 얼마나 힘이 들까는 짐작했지만, 아이를 이렇게 때리는 줄은 몰랐다.


나와 친한 동료 교사는 하준이 누나의 담임이었다. 조심스레 이 일을 이야기했다. 그녀도 이미 알고 있었다. 누나는 하준이보다 더 많이 맞은 거 같았다. 엄마와 상담을 했는데, 엄마가 솔직하게 인정을 했고, 본인도 그렇게 맞으면서 자라서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잘 몰랐다고 말했다고 했다. 엄마도 아이도 잘못된 상황은 알지만 서로 어쩌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이가 곪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졌다.


하준이는 말수가 줄었지만 학교 생활을 무던히 해나가고 있었고, 겨울방학이 되기 전에 전학을 갔다. 하준이의 안부가 궁금했었는데, 동료 교사한테 전화가 왔다. 하준이 누나가 자길 만나러 왔었다고. 엄마의 폭행은 줄어들지 않았고, 견디지 못한 6학년 누나는 집을 나왔던 모양이다. 하준이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 걸까?


아이들은 언제나 부모를 용서한다. 자기를 때리는 엄마지만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 달라는 하준이의 말은 그 모든 것을 함축했다. 아이가 부모를 원망하지 않도록 하준이 엄마의 폭행이 줄어들길 바라고 또 바랐다.



아동학대법은 부모의 학대를 받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입안된 법안인데, 지금은 아동을 상대로 하는 다수의 어른들에게 화살이 날아갔다. 정작 가정에서 학대받는 아이들은 구하지도 못한 채 말이다. 지금의 많은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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