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연 May 22. 2023

작고 소중한 나의 신혼집

알고 보면 쓸 만한 신혼 일기

“결혼하고 제일 좋은 게 뭐야?”

“집이 넓어졌다는 거...?”


누군가가 나에게 그렇게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다. 서울에서 코딱지만 한 방에서 좀 덜 코딱지만 한 방으로 전전하던 내 삶에서 드디어 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비록 지방 소도시의 전셋집이긴 하지만 리모델링을 하고 처음으로 입주하는 새것 같은 집이었다. 냉장고 소음과 젖은 빨랫감으로부터 분리되는 삶이 필요했다. 원룸에서는 그 당연한 것이 불가능했다. 옵션으로 들어간 냉장고는 연식이 오래돼 늦은 밤이면 냉각기 돌아가는 소리로 시끄러웠다. 밤잠을 설칠 이유는 그것 말고도 많았지만 나는 한동안 불면증으로 고생했다.


4.5평, 7평, 9평으로 전전하다가 처음으로 그 두 배가 되는 평수로 이사를 하게 된 것이다. 서울과 비교하면 정말 절반도 안 되는 전세 비용에 옵션까지 좋은 집이었다. 신혼집을 구하는 과정이 고되고 힘들었지만 서울에서 집을 구하러 다니면서 마주한 집 같지 않은 집들을 생각하면 여기는 천국이었다.


비록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공장도 있고 논밭도 있지만 그토록 꿈꿔왔던 헤드에 불이 들어오는 침대가 안방에 놓이는 순간 타지 생활에 대한 불안감 위로 안락함이 안착했다. 새로 산 이불은 보드라웠고 고심해서 고른 침대 매트리스는 적당히 푹신했다. 이전에는 남편과 싱글 매트리스에서 꼭 붙어서 칼잠을 잤는데 잘못 돌아누우면 매트리스에서 떨어지는 일도 빈번했다. ‘으악’ 소리를 내며 떨어진 남편을 살피며 웃음을 터뜨리는 것도 이제 안녕이었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옷방이 따로 생기니 안방에 지저분한 것들을 두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수납과 정리가 비로소 가능해졌다. 중고로 받아온 화장대는 내가 꿈꿔온 모양은 아니었지만 어울리는 벨벳 의자를 주문해 함께 놓으니 꽤 그럴듯해 보였다. 거실에는 식탁을 놓을지 소파를 놓을지 정말 오랫동안 고민을 했다. 두 개를 다 놓을 수는 없었다. 식탁에서 밥을 먹는 건 잠깐이고 티브이를 보면서 소파에 뒹굴 거릴 시간은 영원할 것이므로(?) 결국 소파를 구매했다. 돈보다도 공간이 없어서 들이지 못했던 물건들이 차곡차곡 나의 로망을 채워주었다.


침대와 소파가 주는 안락함과 포근함에 나는 완전히 매료되었다. 이건 사치가 아니라 주거지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욕구로 봐야 하지 않을까. 화장실에 놓인 변기처럼, 안방에는 침실이, 거실에는 소파가. 근심을 풀어놓을 수 있는 해우소가 공간마다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나의 소비를 합리화했다.


아직은 청소기를 돌리는 시간도 즐겁고 넓어진 개수대에서 설거지하는 것도 즐겁고 해가 드는 베란다에 빨래를 너는 것도 즐겁다. 곧 이 모든 마음이 시시해지고 관성적으로 변하겠지만 나는 남편과 함께 꾸려나갈 우리 집이 참 좋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