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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예 Dec 05. 2023

템플스테이 - 변산반도 내소사

산책하는 진저캣

지난주 토요일에 변산반도에 있는 내소사에 다녀왔다.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템플 스테이였는데 방바닥에 누워 있다가 남이 차려주는 채식 위주의 식단을 삼시 세끼 받아먹고 싶은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 내 버킷 리스트가 친구 덕분에 갑작스럽게 이뤄졌다.

김포에서 줄발해 두 곳의 휴게소를 들르며 쉬엄쉬엄 다섯 시간 동안 운전했다.

내소사로 가는 길에 소문으로만 듣던 대천 해수욕장을 들렀다.  넓게 펼쳐진  모래사장과 쉼 없이 부서지는 파도를 보니 가슴이 트였다. 이 좋은 곳에 아이들과 왔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 유리를 주웠다. 잔뜩 주워볼 심산이었지만 생각보다 찾기 어려웠다.

낮게 깔린 회색 구름 사이로 햇빛이 핀조명처럼 빛났다. 나는 "우와 햇빛이 영광스럽게 내려요."라고 말했고 다람쥐 볼을 닮은 친구는 귀엽게 웃었다.

조금 썰렁했지만 곰소염전에도 들렀다. 면과 면의 만남. 네모와 세모의 조화.

탁 트인 시야로 들어오는 산새가 아름다웠다.

내소사에 도착하니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 600m였다. 전나무 향이 진해서 걷는 내내 피톤치드 샤워를 하는 것 같았다.

사찰 입구가 긴 이유는 삶에서 끌고 온 번뇌와 잡생각을 털고 온전한 나로 부처님을 마주하라는 뜻이라고 들었다. 다행히 템플 스테이를 제안한 친구는 말이 별로 없어서 우리는 나무 향기를 맡으며 묵묵히 걸을 수 있었다.


사실 그래서 이번 여행이 더욱 좋았다. 그동안 사람들의 얘기를 듣는 일에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쉬지 않고 벌리는 입과 번뜩이는 눈이 뿜어내는 진짜 속내가 뻔히 들려서 지쳐 있었다. 내가 이야기를 담는 그릇으로 생긴 탓이겠지만 나에게 감동을 주거나 영감을 주거나 온기를 넣어주는 말들이 고팠던 만큼 나는 계속 지쳐 갔다.

내소사는 633년 백제 시대에 지어졌으나 화재를 겪는 등의 일을 겪다가 1633년에 대웅전까지 지으면서 완성되었다고 한다. 조선 중기 사찰 문화를 대표하는 건축이며 학이 알을 품듯 빙 두르고 있는 산새가 절경이었다.

최근에 보물로 지정된 동종.

이 모습을 마지막으로 내년에는 모사품이 걸리고 원작은 박물관에 보관된다고 한다.

대웅이라는 이름의 고양이.

시골 고양이답지 않게 럭셔리했다.

우리가 묵은 숙소는 아주 깔끔했고 난방과 온수의 수압이 좋았다. 머무는 이들을 위해 방을 충분히 달궈놓은 것 같았다.

숙박형이 아니라 체험형이어서 잠깐 쉬고 108배를 하고 또 잠깐 쉬고 차담을 하는 등 일정이 계속되었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여유 있게 웃으며 진행이 돼서 부담이 없었다. 장시간 운전의 여파로 얼굴은 퉁퉁 부었지만 자연의 품 안에서 회복의 에너지가 전해지는 것 같았다.

묘향스님이 선물로 주신 오색 팔찌를 차고 찍은 기념 사진.

은근히 멋스럽고 예뻐서 계속 들여다 보게된다.

다양한 형태의 돌과 오래된 돌에 피어난 돌꽃, 나무꽃, 나뭇결... 그림으로 그리고 싶은 것들로 가득했다. 다음엔 휴식형 템플 스테이를 신청해서 실컷 그리고 먹고 산책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결국 우리는 내년 석가탄신일에 자원봉사를 히러 오기로 했다. 그때는 정읍이나 근처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한 뒤 차량 렌트를 하자고 할 거다. 새로운 계획과 도전이 설렌다. 분명 바쁘겠지만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그림을 그릴 시간이 생기면 좋겠다.

먹고 기도하고 그림을 그리리라.

내가 템플 스테이를 하고 싶었던 건 내 영혼이 자신을 좀 돌보라며 내게 보낸 신호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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