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미레짱 Oct 10. 2020

다시 한번 가족여행. 이제... 끝 일라나?

원가족의 해체. 개별 독립.

<별 사탕 내리는 밤>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소담 출판사

하지만 그것들은 다 나중일이다. 부엌의 코르크 보드에 남겨진 메모를 발견했을 때 사와코와 여동생에게 버림받은 듯한 기분과,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자신이 여동생을 버리고 말았다는 기분이 비슷한 강도로 느껴져 당혹스러웠다... 20년이 지난 지금, 이번에는 내가 그와 같은 짓을 저지르려 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사와코는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다쓰야를 버리는 것이라는 기분과, 마침내 다쓰야에게 버림받게 되었다는 기분-역시 말이 안 되는 소리다-이 이번에도 또 비슷한 강도로 사와코를 괴롭혔다.... 사흘 전에 다부치와 대회한 이대 사와코는 수도 없이 그렇게 생각하고, 그때마다 놀라고 만다. 이곳에서 이토록 오랫동안 살아왔는데 사람의 감정 이외 레 내게 남은 거라곤 정말 아무것도 없다. 사람의 감정을 제외하면 사물은 '어쩐지 무서울'정도로 간단하게 정리된다.-158p

두 사람이 남녀 관계였다는 건 '백번 양보해' 이해한다 쳐도 납득이 안 가는 건 사와코가 그런 일과 이혼을 걸부 지어 생각했다는 점이다... "그렇지? 모든 것을 손에 넣은 남자처럼 보이지, 내가 말이야."...... 실제로 다쓰야는 무척 많은 것을 노력해서(하긴 개중에는 타고난 부분도 있지만) 손에 넣어왔다. 튼실하고 보기 좋은 몸, 그에 수반되는 운동 능력,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솔직한 성격,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유감없이 발휘되는 책임감, 충분한 수입이 뒤따르는 일,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겨주는 건강한 부모, 아름다운 아내, 친구들, 그리고 여자들-다쓰야에게 그것은 자만이 아니라 반은 체념이고 반은 자랑tm러운 현실이었다. 그래서 더욱 우쓰미처럼 나이 어린 사람에게 '자뻑'이라느니'오만하다'느니 질투 어린 말을 듣고 싶었다.-170p

인간관계-동료들, 학생들-에 관해선 다쓰야는 완전 백지였다. 아마도 가장 친했던(지나치게 친하다!) 다부 찡의 존재만 간신히 알고 있었을 뿐, 그 외 사람은 하나도 모른다. 당시 사와코가 열심히 다니던 다도 교실이며 서예 교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나가는 듯한 '독서모임'인가 뭔가 하는 곳의 얼굴들도 다쓰야는-몇 사람 소개받긴 했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도쿄에서 살 때는 사와코도 가게일을 도와주었기에 다쓰야가 데리고 있는 직원들과도 친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사와코가 그중 누군가와 특별히 친하게 지냈던 기억은 없다. 누구에게나 웃는 낯으로 대하긴 하지만 그 이상 거리를 좁히는 법이 없는 사와코의 고집스러움이랄까, 융통성 없는 성격에 다쓰야는 새삼 놀라기도 했다. 나한테만 의지했던 게 아니었어?-224p

"와타나베 세탁소, 없어졌네?" 사와코가 말했다. "그건 진즉에 없어졌지.""벌써 오륙 년 됐지, 아마." 아버지가 거들었다. " 이 부근도 많이 변했어."치릭, 하고 종이 타는 소리에 이어 단대가 났다. "아버지 담배, 얼마만인지." 아버지는 옛날부터 손수 담배를 말아 피웠다. 담뱃잎도 직접 조합한다. "언제까지 있을 수 있니?" 엄마의 물음에 사와코는 순간 주저했으나, 눈 딱 감고 말했다. " 쭉, 아주 돌아온 걸."...... 방안에 침묵이 내려앉는다. 타는 뭉실뭉실하니 메마른 냄새. 레이스 커튼 너머로 햇살 가득한 마당이 보인다. 사와코는 피아노 위로 시선을 옮겼다.  11년 전의 자신과 다쓰야가 웃는 얼굴을 사와코는 가만히 응시한다. 이구아수 폭포에서 찍은 사진인데 그 며칠 전에는 미카엘라가 다쓰야를 아버지의 픽업트럭에 태우고 팜파로 안내했다. -228p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처음 만났을 무렵의 사와코가 떠올랐다. 거기에는 자신이 새겼을 흔적도, 애정-애증일까, 하고 다쓰야는 다시 생각한다-의 징표도 없었다. 완벽한'사와코'였다고 다쓰야는 생각한다. 원래의, 오리지널의.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이만한 세월이 흐른 뒤에.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몸을 포개고, 한 지붕 아래 살고, 집에서 뿐만 아니라 직장에서도 힘을 합쳐-적어도 도코로자와로 이사하기 전까지는 그랬다-서로의 친족과 친지가 되고, 서로의 친구와 친구가 되고, 밥그릇 하나부터 은행 예금까지 모든 것을 속속들이 나누며 살아온 후에? 하지만 그건 동시에 희미한 광명이기도 했다. 원래의, 오리지널'사와코'. 다쓰야의 흔적 혹은 다쓰야와 함께 보낸 시간의 흔적이 없어 보인 것처럼, 거기에는 새로운 남자의 냄새도 색깔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326p

당신은 내게 어느 쪽을 퍼붓든 상관없다고 여기지. 나는 당신 거니까. 언제든 자기 좋을 대로 아무 자각 없이 퍼붓지. 가령 다른 여자와 자고 온 후에도 당신은 내게 엄청 달콤한 말을 토해내거든." 다쓰야가 반론하려고 입을 벌리려는데 한 발 앞서 "아니야."하고 사와코가 말을 이었다. "아니야. 다른 사람과의 일을 탓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나는 당신의 혀 차는 소리와 사랑의 언어를 구분할 수 없게 돼버렸어. 그렇잖아. 뭐가 다른데? 상상해봐. 둘 다 모욕으로 들리는 것뿐만이 아니야. 둘 다 당신의 진심이라는 거 알아."..."그 정도는 이해하지 싶었는데.""믿어주면 좋겠는데, 이해해"-334p

시간, 기억, 과거.
어떻게 부르든 되찾을 수 없는 걸. 그것이 눈앞에 있고, 심지어 자신을 뒤에서 안은 채 피부의 따스함과 부드러움, 자그마한 골격, 생각지 못한 힘까지 전해주다 보니 도저히 스스로를 억제할 수 없었다. 사와코이자 미카엘라이기도 한 그 여자는 단지 다쓰야의 몸을 원하고 있었다. 사랑도 아닌, 약속도 아닌. 테라스는 넓고 살풍경했다. 빨랫줄이 두 가닥 매여 있었다. 하늘은 가짜처럼 푸르고 약간이지만 바람이 일었다.-400p


여동생을 뒤로한 채 만든 새로운 내 세상을 체념한다. 간단히 정리될 수 있었을 리 없다. 얼마나 뒤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을까? 내가 전부인 존재가 있어야만 살아가는 다쓰야. 사와코에게 다른 세상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할 수 없으니 보지 않고 살아가는 건 얼마나 치열하고 삭막할까? 각자의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순간은 온다. 누군가를 이해한다고 해서 내가 그 길을 함께 가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할 수만 있다면 가능한 가장 오랜 시간 동안 머물고 싶다는 건, 변할 수 있는 용기가 없는 걸까? 버틸 수 있다는 과욕일까? 빛났던 추억에 대한 집착일까?  


새로이 기획하고 출발. 쏠비치 리조트 양양으로 친정가족과의 여름휴가.


헬륨가스를 자판기가 자동으로 주입해서 완성하다니~ 신세계로 세. 하늘이도 정말 신기해하고, 아쉽게도 그 상황을 담은 영상은 사라졌지만. 그때 그 설레어하고 신나 하던 아이의 표정이 두고두고 잊히지 않을  듯싶다.


거실 방에서 아이와 파도소리를 들으며 겨우 재우고 나오니 데면데면한 남자 두 명이 쳐다보고 있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두 사람. 왜 둘이서 자연스레 이야기를 이어갈 수 없는지. 이제 분위기 말랑하게 만들고 이야기의 장을 열고 공감해야 할 타이밍이 기다리고 있었다. 동생이 이런저런 얘기를 풀어냈었다. 곁의 신랑은 예전과 다르게 각 잡지 않고 꼰대 멘트도 쓰지 않고 듣고 웃으며 바라본다. 관람객 모드? 대리만족 중인 건가? 뭔가 그럴 수밖에 없는 걸 알면서도 얄밉다.  


"누나가 대답 안 한다고 할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는 게 있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트라우마가 있어. 그래서 결국에는 안 하게 돼.(진지)"

"하라고 하는 거야. (웃음)"


"누나한테 좀 그런 게 있어. 뭔가 확실히 멀어지는 순간이 있었어...(흘림)"

"언젠데?"

"알 텐데?"(몇 마디 소곤소곤)"

"결혼하고?""(긍정의 침묵)"


"나는 내가 엄마를 먹여 살려야 한다는, 책임져야 한다는 게 있어"

"착각하지 마, 먹여 살려? 돈 버는 게 전부가 아니야, 그 뒤가 있는 거야. 요즘 시대에 그런 거 원하는 여자는 아무도 없어. 그저 같이 사는 거야. 서로, 함께 살아가는 거야."

"아니야. 넌 잘하고 있어. 대한민국 남자들이 그렇게 살지. 우린 그렇게 살아야 돼. 네가 맞아. 이렇게 솔직하게 얘기한 것도 나는 용기 있다고 생각하고, 부럽다."


"이번에 여행 온 거 솔직히 이해가 안 돼. 누나가 여행 가자고 한 건데 왜 돈을 분담해야 돼?"

"나 혼자 오자고 한 거 아냐. 내가 먼저 아냐~ 엄마가 깐 거야, 두세 가지 마음이 있지 엄마가(웃음)"

"?? 그게 뭐야? 이제 헷갈리는데? 머리 아파."

"엄마가 얘기한 거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마, 너한테 하는 말하고 나한테 하는 말하고 달라~. 그런 거야.

엄마의 세뇌에서, 세계에서 빠져나오라고. 엄마가 깔아놓을 레일 위를 네가 꼭 걸어가야 할 필요는 없어."

"나는... 그렇게 살 수밖에 없어."

"... 그건... 너의 선택인 거지..."


늦은 밤. 동생의 솔직한 이야기가 깊어졌다. 순수하게 깊은 공감을 해줄 수만은 없었다. 역할 갈등 속에서 헤매었다. 이어지는 사회생활, 친구들의 고된 삶의 이야기. 과장되게 힘준 주관이 이어진다. 창밖으로 바람을 쐬러 가는 신랑. 이런 순수한 속내를 듣다니? 고마움과 즐거움이  교차했다. 어른들의 치열한 전쟁 얘기, 할 수밖에 없는 현실 얘기만을 듣고, 아이의 투명한 언어를 해석해야 하는 내게 이런 이야기와 시간은 선물 같았다. 하지만 내일이 걱정되었다. 먹어야 할 아침. 놀아야 할 시간. 돌아가야 할 차량 안의 시간까지...... 그 속에서 하늘이와 마음이를 케어해야 하는데 나의 체력과 정신이 버텨줄까? 시간과 챙겨야 할 것들이 하나씩 밀리게 되면 분명 후회할 일이 생길 텐데...


길어진 이야기 속에서 이제야 겨우 빗장을 밀고 물렁한 속마음을 풀어놓고 싶은 동생을 앞두고 나는 머뭇거렸다. 깊은 공감의 문으로 들어가는 내 마음속 문을 선뜻 열 수없었다. 누나였을 때는 망설임 없이 그 자리를 내어 주었을 텐데. 엄마의 딸일 때는 기쁘게 보듬어 주었을 텐데. 이제는 쓸쓸하게도, 나는 이 여행에서 마음을 놓은 채 끝없이 놀 수 없는 역할이 되어버렸다. 무엇이 되고 있는 걸까? 말하고 싶어 쓰며 술자리를 접고 싶지 않아 하는 동생에게...  여러 번 다독여 접게 하는 나는... 그랬다. 머리는 차갑고, 가슴이 뜨겁게 아렸고, 졸렸다. ... 나 좀 쓰다듬어주고 싶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리조트 복도 안은 적막감이 감돌았다. 한 발짝 내디딘 새벽의 바깥은 서늘했다.  홀로그램으로 장식된 바닥을 보며 분위기를 잡는 것도 잠시. 옆길에 지나가는 커플이 보였다. 남자 친구가 나처럼 사진을 찍어 데는 걸 보고 "이걸 뭐하러 찍어?"이쁘잖아." 살포시 흘기는 여자의 시선이 느껴졌다. 신비로웠던 기분은 금세 사라졌다.


룸과 멀어져 메인동으로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가며 앞으로 가는 길이...... 무서웠다.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불안이 가슴을 뛰게 했다. 살갗을 뒤덮는 새까맣고 어두운 밤공기는 혼자의 시간을 고 싶은 마음을 접고 싶게 할 만큼 무겁고 서늘했다. 술이 얼굴까지 차올라 정줄을 놓고 뛰어다니는 젊은 할머니를 쫒았다니는 신혼부부,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흥 이차 모임 장소로 통화하며 지나가는 동남아계 외국인이 곁을 지나갔다. 밤에 취한 사람들의 흥이 두려웠다. 곁에서 휘말릴 것만 같았다. 떨어져야 한다. 밤은... 어느새 위험 새 졌다.


재빨리 이정표가 가리키는 바다 산책로를 찾아 들어갔다. 정비되고 판판한 벽돌 도로, 은은히 비추는 주황 전구빛, 옅고 일정하게 울려 퍼지는 귀뚜라미 벌레의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쪼그라든 심장이 펴지고, 바짝바짝 말라가던 입술에도 물기가 돌았다. 벽을 깎고 높게 올라가 있는 소노 리조트 건물을 바라보았다. 고압스러움이 느껴졌다. 가파르게 깎여진 계단 아래 정자를 바라보며 차마 내려가고 싶은 맘은 들진 않았다. 난간에 기댄 채 밤바다에 내려치는 잔잔한 파도를 바라만 보고 싶었다. 귀를 간질이고 하루를 버티느라 닳아있던 마음의 돌덩이를 조금씩, 천천히 밀어주는 듯했다. 이 조용한 소리, 잔잔한 파도, 넓은 바다에 서서히 흐르는 시간을 손 안의 연필에 담아서 언제든지 꺼내어 쓸 수 있고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행이다. 아직 밤바다는 무섭지 않다. 지금은 여기는구나. 바다는 여전히 나에게 친절하고 평온을 가져다주는구나. 다행이다.


밤이 좋았다. 밤이 주는 감정이 좋았다. 어둠과 함께 찾아오는 자유를 사랑했다. 두렵다 느꼈던 적은 없었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고, 무엇을 할 필요가 없고, 어떤 것을 해도 방해받을 이유 없는 심야. 좁은 복도, 얽혀 있는 호텔동의 길을 헤매며 호기심이 샘솟으며 가슴이 두근거렸을 것이다. 점점 기분이 고조되었을 것이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기대했을 것이고, 알아보고 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어디로 간 걸까? 사라졌나? 숨어져 있나? 나는 밤이 무서워졌다. 어둠 속에서 홀로 산책을 즐길 수만은 없어졌다.


이제는 친정 파워도 때고
나 홀로 서야 되나?


동생도 나와 다른 인생을 살 것 같고,

엄마가 원하는 세상도 나와 다르다.

우린 한 가족이었지만,

이제 각기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게 돼겠구나.


내가 원하는 나는?

살아가고 싶은 세상은?

어떻게 해야 철벽 같은

세상 속에서, 사람들 속에서

내 목소리를 갖고 살지?

그건 듣고 싶은 이야기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나다움은 할 수 있는 가까운데서부터 찾는거더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