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가족의 해체. 개별 독립.
<별 사탕 내리는 밤>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소담 출판사
하지만 그것들은 다 나중일이다. 부엌의 코르크 보드에 남겨진 메모를 발견했을 때 사와코와 여동생에게 버림받은 듯한 기분과,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자신이 여동생을 버리고 말았다는 기분이 비슷한 강도로 느껴져 당혹스러웠다... 20년이 지난 지금, 이번에는 내가 그와 같은 짓을 저지르려 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사와코는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다쓰야를 버리는 것이라는 기분과, 마침내 다쓰야에게 버림받게 되었다는 기분-역시 말이 안 되는 소리다-이 이번에도 또 비슷한 강도로 사와코를 괴롭혔다.... 사흘 전에 다부치와 대회한 이대 사와코는 수도 없이 그렇게 생각하고, 그때마다 놀라고 만다. 이곳에서 이토록 오랫동안 살아왔는데 사람의 감정 이외 레 내게 남은 거라곤 정말 아무것도 없다. 사람의 감정을 제외하면 사물은 '어쩐지 무서울'정도로 간단하게 정리된다.-158p
두 사람이 남녀 관계였다는 건 '백번 양보해' 이해한다 쳐도 납득이 안 가는 건 사와코가 그런 일과 이혼을 걸부 지어 생각했다는 점이다... "그렇지? 모든 것을 손에 넣은 남자처럼 보이지, 내가 말이야."...... 실제로 다쓰야는 무척 많은 것을 노력해서(하긴 개중에는 타고난 부분도 있지만) 손에 넣어왔다. 튼실하고 보기 좋은 몸, 그에 수반되는 운동 능력,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솔직한 성격,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유감없이 발휘되는 책임감, 충분한 수입이 뒤따르는 일,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겨주는 건강한 부모, 아름다운 아내, 친구들, 그리고 여자들-다쓰야에게 그것은 자만이 아니라 반은 체념이고 반은 자랑tm러운 현실이었다. 그래서 더욱 우쓰미처럼 나이 어린 사람에게 '자뻑'이라느니'오만하다'느니 질투 어린 말을 듣고 싶었다.-170p
인간관계-동료들, 학생들-에 관해선 다쓰야는 완전 백지였다. 아마도 가장 친했던(지나치게 친하다!) 다부 찡의 존재만 간신히 알고 있었을 뿐, 그 외 사람은 하나도 모른다. 당시 사와코가 열심히 다니던 다도 교실이며 서예 교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나가는 듯한 '독서모임'인가 뭔가 하는 곳의 얼굴들도 다쓰야는-몇 사람 소개받긴 했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도쿄에서 살 때는 사와코도 가게일을 도와주었기에 다쓰야가 데리고 있는 직원들과도 친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사와코가 그중 누군가와 특별히 친하게 지냈던 기억은 없다. 누구에게나 웃는 낯으로 대하긴 하지만 그 이상 거리를 좁히는 법이 없는 사와코의 고집스러움이랄까, 융통성 없는 성격에 다쓰야는 새삼 놀라기도 했다. 나한테만 의지했던 게 아니었어?-224p
"와타나베 세탁소, 없어졌네?" 사와코가 말했다. "그건 진즉에 없어졌지.""벌써 오륙 년 됐지, 아마." 아버지가 거들었다. " 이 부근도 많이 변했어."치릭, 하고 종이 타는 소리에 이어 단대가 났다. "아버지 담배, 얼마만인지." 아버지는 옛날부터 손수 담배를 말아 피웠다. 담뱃잎도 직접 조합한다. "언제까지 있을 수 있니?" 엄마의 물음에 사와코는 순간 주저했으나, 눈 딱 감고 말했다. " 쭉, 아주 돌아온 걸."...... 방안에 침묵이 내려앉는다. 타는 뭉실뭉실하니 메마른 냄새. 레이스 커튼 너머로 햇살 가득한 마당이 보인다. 사와코는 피아노 위로 시선을 옮겼다. 11년 전의 자신과 다쓰야가 웃는 얼굴을 사와코는 가만히 응시한다. 이구아수 폭포에서 찍은 사진인데 그 며칠 전에는 미카엘라가 다쓰야를 아버지의 픽업트럭에 태우고 팜파로 안내했다. -228p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처음 만났을 무렵의 사와코가 떠올랐다. 거기에는 자신이 새겼을 흔적도, 애정-애증일까, 하고 다쓰야는 다시 생각한다-의 징표도 없었다. 완벽한'사와코'였다고 다쓰야는 생각한다. 원래의, 오리지널의.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이만한 세월이 흐른 뒤에.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몸을 포개고, 한 지붕 아래 살고, 집에서 뿐만 아니라 직장에서도 힘을 합쳐-적어도 도코로자와로 이사하기 전까지는 그랬다-서로의 친족과 친지가 되고, 서로의 친구와 친구가 되고, 밥그릇 하나부터 은행 예금까지 모든 것을 속속들이 나누며 살아온 후에? 하지만 그건 동시에 희미한 광명이기도 했다. 원래의, 오리지널'사와코'. 다쓰야의 흔적 혹은 다쓰야와 함께 보낸 시간의 흔적이 없어 보인 것처럼, 거기에는 새로운 남자의 냄새도 색깔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326p
당신은 내게 어느 쪽을 퍼붓든 상관없다고 여기지. 나는 당신 거니까. 언제든 자기 좋을 대로 아무 자각 없이 퍼붓지. 가령 다른 여자와 자고 온 후에도 당신은 내게 엄청 달콤한 말을 토해내거든." 다쓰야가 반론하려고 입을 벌리려는데 한 발 앞서 "아니야."하고 사와코가 말을 이었다. "아니야. 다른 사람과의 일을 탓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나는 당신의 혀 차는 소리와 사랑의 언어를 구분할 수 없게 돼버렸어. 그렇잖아. 뭐가 다른데? 상상해봐. 둘 다 모욕으로 들리는 것뿐만이 아니야. 둘 다 당신의 진심이라는 거 알아."..."그 정도는 이해하지 싶었는데.""믿어주면 좋겠는데, 이해해"-334p
시간, 기억, 과거.
어떻게 부르든 되찾을 수 없는 걸. 그것이 눈앞에 있고, 심지어 자신을 뒤에서 안은 채 피부의 따스함과 부드러움, 자그마한 골격, 생각지 못한 힘까지 전해주다 보니 도저히 스스로를 억제할 수 없었다. 사와코이자 미카엘라이기도 한 그 여자는 단지 다쓰야의 몸을 원하고 있었다. 사랑도 아닌, 약속도 아닌. 테라스는 넓고 살풍경했다. 빨랫줄이 두 가닥 매여 있었다. 하늘은 가짜처럼 푸르고 약간이지만 바람이 일었다.-400p
새로이 기획하고 출발. 쏠비치 리조트 양양으로 친정가족과의 여름휴가.
이제는 친정 파워도 때고
나 홀로 서야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