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너희보다 시간을 벌었을 뿐

나이야, 간다 (3)

by ThisJunghye

동네 고양이 돌보미로 살아온 지 10년을 넘겼다. 귀촌 전 수도권 생활 시절에도 동네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긴 했지만 그 당시엔 살던 동네에서 밥을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마주치는 고양이들에게 간식을 준다거나 그릇이 비어 있는 경우 채워주는 정도로만 챙겨 주다가 귀촌 후에는 우연히 구내염으로 아픈 고양이를 낫게 해 주고 시작한 게 한 두 개씩 밥자리가 늘었고 5년을 넘겼다.


자신을 피곤하게 만드는 완벽주의 기질로 인해 첫 밥자리를 운영하던 2022년 3월부터 매일 주요 상황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했다. 어느 고양이가 다녀갔는지, 누가 좋은 말을 해 줬는지, 누가 시비를 걸었는지... 동네 분들에게 마을 내 하나의 구성요소로 좋게 자리 잡을 수 있게 매일 청소하고 주변 쓰레기를 줍는다. 작년부터는 고양이 식당 바로 옆 공유지 텃밭을 주민 분이 물려 주셨는데 휴식 공간이 옆이다 보니 담배꽁초나 쓰레기가 너무 많이 버려져서 일부러 각종 꽃들을 심고 가꾸고 있다. 지나가시는 주민 분들이나 산책 오는 강아지들도, 쉬고 가는 고양이들도 기분 좋도록.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이 꽤 된다. 그래도 보람은 확실히 있다. 시작은 느렸으나 5년의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대하는 주민 분들의 반응이 긍정적으로 변하고 표현도 많이들 해 주신다. 귀촌 후 지역에 별로 기여하는 게 없지만 나름 꾸준히 잘 하고 있는 일 중에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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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이삼일의 한 번 꼴로 옆 동네에 간다. 내 돌봄을 받다가 홍수 때 사라졌던 고양이가 이주해 있다는 걸 우연히 강아지 산책하던 동네 이웃의 SNS 사진을 통해 발견했고, 옆 동네지만 산 아래에 있어 귀촌 후 7년 동안 전혀 연이 없었던 곳인데다 솔찬히 동네 고양이 돌봄의 흔적이 많아서 살펴볼 겸 오가고 있다. 그 곳엔 고양이를 상주시키면서 많이 돌보고 계시는 식당 사장님이 계신데 지난 겨울 부터는 옆 편의점에 누가 두었는지 간이 숨숨집이 생기면서 편의점 천막 뒤에서 나른하게 쉬고 있는 고양이들을 매번 볼 수 있다.


사진의 주인공 이름은 ‘인중이’. 남들이 붙인 게 아니고 내가 붙인 이름이다. 이름 그대로 인중이 길어서 붙인 이름인데, 여기 상당수의 고양이가 인중이의 자식들이라 그들도 대부분 인중이 길다! (그래서 딱, 봐도 알아볼 수 있다) 보통 나이 많은 고양이들이 겨울을 넘기기고 나면 – 그게 집에서 생활하든 밖에서 생활하든 – 폭삭, 나이 듦의 큰 계단을 넘어가는 게 느껴는데 최소 열 살이 넘었을 거라는 인중이는 겨울에 한동안 안 보이더니 다시 맞이한 봄날에 몸이 매우 쇠해 있었다. 내가 반갑긴 한데 힘이 없어 숨숨집 안에서 겨우 얼굴만 내미는 인중이는 그 사이 구내염이 매우 심해져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급하게 구내염 약을 섞은 간식을 내밀었지만 잘 먹던 인중이는 내키지 않았는지 숨숨집 안으로 고개를 서서히 젖혀 누워 버렸다. 숨숨집 위에 있던 아들 인상이는 내 맘을 아는 지 모르는지 주는 것마다 챱챱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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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 링겔 맞고 와서 어제는 괜찮았는데 오늘은 기운이 또 빠졌네...
28만 원 들었어.


오랜만에 마주친 식당 사장님이 부르는 인중이의 이름은 ‘야옹이’. 기운이 영 없는 발걸음을 내딛어 볕이 좋은 곳으로 나온 야옹이는 사장님의 손길에 두 눈을 감고 바닥에 몸을 뉘었다. 동물병원 원장님이 야옹이를 보더니 ‘아직도 살아있는 게 용하네’ 했다는 거 보면 야옹이의 남은 현생은 얼마 안 남았는지도 모른다. 기운 없어도 자신을 향해 걸어 와 준 야옹이가 기특하다며 한없이 쓰다듬어 주는 사장님의 손과 맞닿은 야옹이의 얼굴을 보니 내 코끝이 시려졌다.


길고양이의 평균 수명이 3년. 집고양이가 15년. 그리고 고양이들의 1년은 인간의 7년과 같다고 하니 우리는 그들에 비해 시간을 많이 벌고 있는 셈이다. 늘어가는 내 흰 머리는 뽑을 수 있지만, 너희들의 흰 털은 뽑을 수가 없다. 너희들의 눈에 큰 고양이인 나는 아직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지만, 내 눈에 작은 고양이인 너희들은 걸을 수 있는 발걸음이 줄어만 간다. 나는 죽어도 어쨌든 신고와 관공서 처리를 통해 죽음이 기록으로 남겠지만, 너희들은 이름 없이 죽어가는 생명이 훨씬 더 많다.


그래서 약속한다. 내일 또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기에 오늘 최선을 다해 사랑하겠다고. 그래야 후회가 덜할 테니. 인중이(야옹이)와 함께 생활하던 코난과 예삐가 로드킬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식을 다 키운 인중이는 어쩌면 코난과 예삐를 서둘러 보러 가고 싶은지도 모른다. 고양이들이 사람보다 선도적인 것 중에 하나는, 혈연에 상관없이 서로 가족이 되고 함께 돌본다는 점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함께 살았을 이들의 현생이 행복했길 바라며, 그저 그들보다 시간을 벌었을 뿐인 내 삶도 행여 내일이 없을 지라도 아쉬움 없을 오늘에 감사하며 잠들어야겠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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