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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은 Feb 20. 2019

디자인 전공생이 갑자기 방송작가가 된 이유

모든 것을 다 다루고 싶어!

장래희망은 없지만 죽어도 안 할 직업으로 방송작가를 꼽던 나는 어느 날 갑자기 방송작가가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천상 문과에서 고3 3월 돌연 예체능을 선포하고 공업디자인(산업디자인)과 시각디자인을 복수전공한 미대졸업생은 또다시 예측불허의 길을 선택했다. 어쩐 일인지 생전 처음 본 면접도 모두 합격했고, 방송이라는 분야에 대한 배경 지식 하나 없이 덜컥 방송작가라는 타이틀을 단 지 벌써 4년이 넘었다.


방송작가가 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너무 많았다. 밤샘에 주말 없는 과도한 업무, 불안정한 삶, 쥐꼬리만한 월급,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 등등. 그럼에도 방송작가의 길을 선택한 것은 2가지 이유에서였다. 1) 사진과 영상, 그래픽, 글을 모두 활용하는 영역이라는 점과 2) 평범한 개인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1) 사진과 영상, 그래픽, 글을 모두 활용하는 영역

나는 성향이 혼자 있는 걸 즐기고 혼자서도 잘하는 스타일이긴 하다. 하지만 혼자서는 아무리 해도 혼자라는 벽을 뛰어넘기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때문에 나는 함께 할 사람들, 일을 배울 수 있는 조직에 들어가기로 결정했고, 일하는 법을 배운 뒤 독립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었다. 나는 텍스트를 좋아하면서도 디자인을 전공했고, 그러면서도 사진이나 영상 다루는 일을 취미로 했다. 그래서 이 모든 것 중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글만 쓰기에는 디자인과 사진, 영상 재능을 썩히기 아까웠고, 사진/영상만 하기에는 그 정도의 재능은 없었고, 디자인만 하기는 그냥 싫었다.


2) 평범한 개인의 이야기

국내여행을 준비하던 내가 문득 보게 된 다큐멘터리에서 번개 같이 그 답을 찾았다. 글을 쓰면서 여행을 다니고 영상도 만질 수 있는 직업! 그리고 특별하지 않아도 평범한 일상을 전달하는 직업! 이런 일은 어떻게 하는 거지 싶어 스크롤을 꼼꼼히 살피던 기억이 난다. 글/구성, 자료조사, 연출, 제작사까지..



물론 처음부터 방송작가!를 고른 것은 아니었고, 나름 연출과 작가 사이에서 고민을 했다. 당시에는 글 쓰는 것보다 촬영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인데, 일단 작가를 먼저 해보고 결정하자 싶어서 방송작가 쪽으로 이력서를 썼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 직업이 되었다.





그래서 원하던 것을 얻었는가 하면 나름 YES라고 할 수 있다. 일하는 법을 배웠고, 내 안에 숨겨져 있던 능력도 찾았고, 개인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는 방송을 했다. 여기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오히려 방송이란 곳에 환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4년에 면접 본 2곳 중 한 곳은 한 달 월급으로 80만 원을 이야기했고, 다른 한 곳은 110만 원을 이야기했다. 출근 시간은 있고 퇴근 시간은 없는 주 6~7일 상근이지만 3.3% 프리랜서 계약이고 식대 제공이나 기타 복지는 당연히 없다. 그 뒤로 2년 정도 같은 월급을 받았다. 밤샘은 부지기수고 주말도 없고 휴가도 없고 욕은 욕대로 먹고 기타 등등 충격적인 것들이 많지만 일을 배우기 위해 이 모든 것을 각오하고 들어갔기 때문에 몸과 마음 부서져라 버텼다. (실제로 부서졌다.)


 밤 11시는 한낮이죠


여전히 많은 청춘들이 방송작가에 도전한다. 지금은 막내작가 처우가 많이 개선되어 월급도 최저시급에 맞춰 오르고, 과도한 업무는 막내작가들 스스로 거절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사실, TV산업이 축소되는만큼 줄어드는 제작비 때문에 파이 나눠먹기 수준이라, 막내 처우가 개선되면 사실상 연차 있는 작가들 처우는 줄어들고 있다. 몇 년 전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방송작가유니온 이라는 조합이 생겨 방송작가의 권리를 찾기 위해 불철주야 싸우고 계시다. (#방송작가협회 는 다른 이야기이다. 그곳은 이미 자리잡은 작가선배님들의 이권을 보장해주는 곳으로, 평균적으로 10년 이상 경력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다.)


나는 어느 시점부터 방송을 벗어난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다. 쥐꼬리만한 월급, 워라밸은커녕 라이프가 0으로 수렴하는 업무 환경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한계는 연차가 쌓여도 같은 업무를 반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반복적으로 찍어내는 작업에서 더 배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고민하고 파고들어서 보다 크리에이티브한 영역에 일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2014년 이후는 시대적으로 모바일로 흐름이 흘러가고 유튜브라는 뉴미디어가 힘을 얻어가는 시기였고, 나는 일찍부터 유튜브 세계에서 놀고 있었다. TV는 이제 라디오와 같은 운명을 걷겠거니 하는 막연한 믿음으로, 뉴미디어 세계로 넘어가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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