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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네맘 천준아 Jul 16. 2022

남대문 은호식당 - 진하게 우린 세월의 맛



날 선 바람이 하루가 다르게 매섭다. 이 즈음이면 으레 한 해를 마감하는 부산함이 있지만 올해는 유난히 시끌시끌하다. 수상한 정국에 마음 둘 곳 없는 연말이다. 회현역 5번 출구를 나와 ‘은호식당’을 찾아 나섰다. 무려 4대에 걸친 꼬리곰탕 전문집이다. 얼마 전 ‘곰탕’이 뉴스와 신문에 많이 오르내리긴 했지만 이런 시국에 든든한 곰탕 한 그릇은 얼마나 큰 위안이 될까. 겨울과 곰탕만한 궁합도 없으니 말이다.


많은 상권이 동대문으로 넘어갔다고 해도 남대문 시장의 떠들썩한 풍경은 여전하다. 어딜 가나 지갑 열기 참 무서운 요즘이지만 그나마 여긴 한결 숨통이 트인다. 가벼운 지갑으로 아직 쇼핑할 것들이 남았구나 하는 안도감마저 든다. 5번 출구 앞에 길게 펼쳐진 칼국수골목과 뜨끈뜨끈한 왕만두의 유혹을 참아내면 지난 84년의 세월을 우려낸 꼬리곰탕의 명가‘은호식당’을 만날 수 있다.





설렁탕이나 해장국을 전문적으로 하는 식당은 많지만 ‘꼬리곰탕’전문 식당은 들어본 바가 없다. ‘꼬리곰탕의 명가’라고 쓰인 낡고 허름한 간판에서 알 수 없는 자부심마저 느껴진다. 마침 점심시간이었다. 가게 안에는 곰탕 냄새가 진동한다. 오랜 명성만큼이나 손님들로 빽빽하다. 문을 여닫으며 손님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3대 정용식 대표(57). 그런데 가지런히 양복을 차려입고 넥타이까지 멘 모습이 꼬리곰탕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꼬리곰탕집 주인장의 옷차림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쑥한 양복차림은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항상 양복을 입습니다.
하는 일이라곤 문 열어 손님을 맞는 것이지만
돈을 가지고 와서 저를 먹여 살리는 분들이잖아요.
유럽에 가면 나이든 점장들이
수트를 멋스럽게 차려입고 손님들을 맞는다면서요.
저도 단정한 모습으로 오랜 손님들을 모시고 싶더라고요.”





꼬리곰탕을 주문했다. 생파가 가득한 뽀얀 국물에 두툼한 꼬리 토막이 얹어져 나온다. 여기에 큼직한 깍두기와 싱싱한 겉절이, 그리고 고기를 찍어먹는 부추양념장이 세트다. 일단 국물부터 한 숟가락 떠먹는다. 말갛고 담백한 국물에서 깔끔하면서도 깊은 맛이 입 안 가득 퍼진다. 뱃속까지 금세 따뜻해진다. 먹음직스러운 고기를 부추양념장에 찍어 크게 베어 먹는다. 너무 흐물거리지도 그렇다고 질기지도 않다. 적당히 기분 좋은 식감이 이어지다가 이내 부드럽게 녹는다. 국물에 밥을 말아 깍두기와 겉절이를 얹어 순식간에 먹었다. 음식평론가도 아니고 미식가는 더더욱 아니지만 84년 세월의 맛은 알겠다.   

  

“같은 라면을 끓여도
물의 양, 불 조절, 그리고 시간에 따라서
다 다른 맛이 나지 않습니까?
꼬리곰탕도 똑같아요.
시간과 불 조절이 관건입니다.”     


곰탕은 그저 오래 끓이면 진하게 우러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헌데 소꼬리는 너무 오래 삶으면 터지고, 그렇다고 금방 건져내면 질기단다. 적당한 시간과 화력이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소꼬리 마디를 잘 잘라야 육즙이 새지 않아 뻑뻑하지 않고 부드럽단다. 여기에 직접 공수한 전남 신의도 천일염을 볶아 간을 하면 짜지 않고 구수한 맛이 살아난단다.





시작은 ‘평화옥’이었다. 1932년의 일이다. 1대 김은임 할머니는 해장국 끓이는 솜씨가 남달랐다. 물론 당시엔 남대문 대도상가 앞 작은 가판대가 전부였다. 차츰 해장국 맛이 소문이 나면서 지금의 식당자리에 가게를 열게 되었다. 2대 이명순 씨와의 인연은 그때 시작됐다. 이명순 씨는 인근에서 야채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평화옥에 야채를 대면서 김은임 할머니를 알게 됐다. 미국으로 시집간 딸이 유일한 혈육이었던 김은임 할머니는 이명순 씨를 유난히 예뻐했다. 어느새 서로를 부르는 호칭도 ‘엄마’와‘딸’이 될 정도로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그러다 미국 사는 딸의 부름에 못 이긴 김은임 할머니가 이명순 씨에게 가게를 이어줄 것을 당부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는 꿈도 못 꿀 일입니다.
어머니가 가게를 인수할 돈이 없다고 말씀드렸는데도
할머니가 돈은 신경 쓰지 말라고 하셨대요.
그리고는 미국으로 가시기 전까지
어머니께 모든 걸 일일이 다 가르쳐주셨죠.”   

  

김은임 할머니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까지 2대 이명순 씨는 가게에서 일하고 받은 돈을 할머니께 꼬박꼬박 드리려고 애썼다. 그리고 조금씩 분할 납부한 후에 결국 자신의 가게로 인수했다. 그런 상황을 봐주신 걸 보면 야채가게를 성실히 운영했던 어머니의 됨됨이가 할머니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아닐까 3대 정용식 대표는 짐작할 뿐이다.





1971년, 2대 이명순 씨가 남편 정태희 씨와 함께 본격적으로 가게를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간판은‘평화옥’에서 ‘은성옥’으로 바뀌었다. 정태희 씨가 유명한 작명소에서 직접 받아온 이름이었다. 간판만 바뀐 것이 아니라 메뉴도 추가되었다. 현재 은호식당의 대표 메뉴인 ‘꼬리곰탕’과 특별메뉴인‘방치찜’도 이 시기에 새롭게 선보였다.


소꼬리를 끓이는 꼬리곰탕과 소 엉덩이살로 만드는 방치찜의 인기는 어마어마했다. 당시, 남대문 근처에 서울시경이 있었던 때라 점심시간 주요 고객들은 서울시경, 한국은행, 세무서 등에 근무하던 공무원들이 대다수였다. 게다가 워낙 접대가 흔했던 시대였기 때문에 원기회복에 그만인 보양음식‘꼬리곰탕’은 연일 가게 1,2층을 손님들로 가득 채웠다. 점심 손님만 500명이던 시절이었다. 故 김영삼 대통령도 많은 수행원들을 대동하고 와서 먹고 갈 정도였다.     


‘은성옥’이‘은호식당’이 된 건 1985년의 일이다. 가게 건너편에 정차한 가스통 트럭에서 가스통 하나가 굴러 떨어져 트럭 뒷바퀴에 깔리면서 폭발했다. 그 사고로 일대 건물이 불에 타고, ‘은성옥’에도 불이 번졌다. 때마침 2층에 있었던 2대 이명순 씨가 불길을 피해 뛰어내리는 바람에 갈비뼈가 부러졌다. 하지만 불에 탄 가게와 병원비 등 아무런 보상도 받을 수 없었다. 그 사건 이후에 남편 정태희 씨는 또다시 작명소를 찾아가 새로운 이름을 받아왔다. 그것이 ‘은호식당’이다.     


“갈비뼈가 부러져 치료받는 와중에도
어머니는 불을 끄러 온 소방관들에게 무료로 밥을 제공하셨어요.
소방관들이 밥을 먹을 곳이 마땅히 없었거든요.
아마 식당이 지금껏 잘 되는 건
모두 어머니가 그렇게 쌓은 덕인 것 같아요.”





3대 정용식 대표에게 각인된 식당의 기억이란 국민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교가 끝나고 남산을 놀이터 삼아 놀다가 남대문으로 내려오면 늘 어머니가 시켜주셨던 짜장면 한 그릇. 어린 시절 가게에서 진동한 곰탕 냄새는 너무나 싫었다. 어머니가 한 숟가락 하라고 떠먹여준 곰탕 맛도 어린 입맛엔 맞지 않았다. 식당에 관한 가장 안 좋은 기억은 선생님이 나눠주신 ‘가정환경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었다.  

   


“친구들은 아버지 직업에 ‘회사원’이라고 적는 거예요.
저는 식당이라고 쓰는 게 너무나 창피했습니다.
그리고 너희 부모님 뭐하시니 라고 묻는 질문에도
식당하신다고 말하기가 부끄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식당을 한다는 것이 한없이 부끄러웠던 그가 어머니의 뒤를 잇기 시작한 것은 1997년의 일이다. 무릎이 좋지 않았던 2대 이명순 씨가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받던 도중 돌연 사망한 것이다. 성치 않은 무릎으로 거의 기어 다니다시피 하면서 어머니는 가게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그런 가게를 두고 편히 두 눈을 감기 힘드셨을 거란 생각에서 3대 정용식 대표는 가게를 지켜내는 것이 못다 한 효를 다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사실 저는 제 사업을 하고 있었어요. 
어머니는 제가 가게를 물려받는 걸 원치 않으셨습니다. 
너무나 고된 일이라고 생각하셨거든요. 
하지만 어머니가 일구신 가게를 주인 없이 방치하는 것은 
어머니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받아들였습니다.”

    



막상 가게에 나와 보니 모든 게 엉망이었다. 그 흔한 장부조차 없었다. 하루에 몇 명의 손님이 들었는지 매출은 얼마인지 기록하는 사람도 없었다. 어머니를 도왔던 아버지 또한 부가세에 대한 개념조차도 모른다는 사실에 3대 정용식 대표는 일단 가게에 체계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했다. 맛은 주방에서 어머니를 도왔던 외삼촌과 정용식 대표의 부인, 그리고 오래된 종업원들이 맡았다. 주인이 된 이상 매일같이 꼬리곰탕을 맛보며 맛에 대한 감각도 익혔다. 하지만 먼발치에서 어깨 너머로 보았던 식당일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술주정하는 손님들과 술기운에 싸우는 손님들
말리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어떤 손님들은 곰탕에서 철심이 나왔다,
휴지가 나왔다는 식으로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또 하루가 멀다 하고 노숙자들이 찾아와
밥이나 술을 요구하고 돌을 던지며 욕을 하기도 하고요.
막상 해보니까 어머니가 얼마나 힘드셨을지
뼈저리게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부재, 광우병 사태로 인한 위기 등을 넘기며 정용식 대표는 차츰 은호식당의 주인으로 거듭났다. 그 사이 식당에 대해 갖고 있었던 부끄러운 마음도 어느새 자부심으로 바뀌었다. 2002년 서소문점을 시작으로, 2005년에는 여의도에도 지점을 열었다. 서소문점은 여동생이, 여의도는 정용식 대표가 남대문 본점을 오가며 관리를 시작했다. 그리고 3년 전부터는 큰 아들 정희석 씨(31)가 합류해 은호식당 4대째를 잇고 있다.   




  

“식당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주방에서 고되게 일하는 것은
회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워낙 어렸을 때부터
가게 일을 도우며 컸기 때문에
큰 부침 없이 제 뒤를 이어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죠.”     


4대 정희석 씨 역시 가게를 잇는 것을 결정하기 까지 많이 고심했단다. 그에겐 부모님이 식당을 하신다는 게 부끄러움 보다는 부담이었다. ‘금수저’로 보는 선입견 때문이었다. ‘부모님이 유명한 식당 하니까 너는 부자’, ‘물려받을 게 있으니 공부 안 해도 좋겠다’는 주변의 말들이 상처였고 스트레스였다.    

 

“막연히 부모님이 쉽게 돈을 버시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제가 가게에서 일을 도우면서
고생하시는 걸 직접 보니까
대를 잇는다는 것은 남다른 각오가 필요한 거구나
생각하게 됐죠.”     


마음을 먹고 회사를 그만두었지만 가게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는 시점에 술 취한 손님에게 따귀를 맞았다. 눈앞이 캄캄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은호식당의 4대 주인이라는 역할은 버거울 때가 많았다. 아침 6시에 문을 열어 밤 9시에 닫는 하루 일과, 1년 통틀어 구정연휴 3일과 추석연휴 3일을 쉬는 스케줄은 좀체 익숙해지지 않았다. 결혼 한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기 때문에 늘 아내에게 미안했고, 또 갓 태어난 아이가 고열로 아파하는데 가게를 박차고 갈 수 없었던 날들도 마음 깊이 남았다.     


“단골손님 중에 신혼부부가 있었어요.
어느 날부터 부인이 배가 불러오더라고요.
그리고는 발길이 뚝 끊겼어요.
한참 후에 남편분이 혼자 와서 포장을 부탁하길래
 ‘출산 잘 하셨나요?’ 물었더니 기억하고 있었냐며
너무나 감격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최근에는 아이랑 셋이 와서 드시고 가셨어요.”     


나와 전혀 무관한 사람들의 풍경을 지켜보는 일이 어느새 4대 정희석 씨의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는 그 풍경 안에서 자신 또한 은호식당의 주인으로 성장해가고 있음을 느끼는 듯하다. 내가 만든 음식을 맛보며 누군가의 삶이 조금이나마 즐겁기를 염원하는 소박한 마음으로 말이다.





요즘 3대 정용식 대표는 더욱 꼬리곰탕 맛내기에 골몰하고 있다. 그것은 은호식당의 미래와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남대문 본점과 서소문점, 여의도점의 맛이 조금씩 다르다는 얘기가 있어 맛을 통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앞으로 오래도록 변함없는 맛을 유지하기 위해서, 한 장소에서 곰탕을 우려내 각 지점으로 배송하는 계획을 세웠다. 12월 중순이면 모든 준비가 마무리된다.


오랜 세월 국물 하나로 승부를 걸어온 음식점에서 변치 않는 국물 맛을 낸다는 건 그만큼 타협하지 않는 깐깐함이 있다는 의미일 게다. 맛은 세월에 비례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월을 우려낸 곰탕이라면 또 얘기가 다르지 않을까. 올 겨울, 남대문에 들를 기회가 있다면 수상한 시국에 꽁꽁 언 마음을 곰탕 한 그릇으로 덥히면 좋겠다.



_글,사진| 천준아

_서울문화재단 <서울, 人에게 묻다> (2016-2017년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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