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의 원을 영향력의 원으로 확장하기 3부 | EP.06
시민으로 살아간다는 건
국가의 구성원이라는 법적 지위만을 뜻하지 않는다.
‘내가 있는 곳’에서 ‘누군가와 함께’ 살아간다는
윤리적 태도이자 실천의 방식이다.
1부. 왜 정치를 습관으로 만들어야 하는가(9회)
2부. 성공하는 시민들의 3가지 습관(11회)
"요즘 세상에 공동체가 어디 있어요?"
이 말을 들은 적이 있을까?
혹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이웃 간의 대화는커녕, 같은 아파트에 살아도 서로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시대.
사회는 분절되고, 사람들은 점점 더 혼자가 되어간다.
‘공동체’라는 말이 마치 과거의 향수처럼 들리곤 한다.
그러니 누가 말한다.
“공동체는 원래 불편한 거잖아요.”
“나 혼자 사는 것도 버거운데, 남까지 어떻게 챙겨요?”
“그건 사회복지사나 주민센터가 할 일이지, 왜 내가 해요?”
정당한 말들이다.
공감할 수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진짜 불편해지는 순간은
‘공동체가 사라졌을 때’다.
밤늦게 골목에서 이상한 사람이 따라올 때,
위급한 일이 생겨도 누구 하나 문 열어주지 않을 때,
아이를 키우는데 믿고 맡길 사람이 한 명도 없을 때,
건물 옥상에 위험한 물건이 떨어지려 해도 말릴 사람이 없을 때...
우리는 문득 깨닫는다.
“아, 공동체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시민으로 살아간다는 건
국가의 구성원이라는 법적 지위만을 뜻하지 않는다.
‘내가 있는 곳’에서 ‘누군가와 함께’ 살아간다는
윤리적 태도이자 실천의 방식이다.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거창한 '지역 사회 개발'도
대규모 '공동체 운동'도 아니다.
바로 이것이다.
“내가 속한 이 공간,
이 관계망,
이 마을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
그 작은 마음이 모이면
새로운 ‘우리’가 만들어진다.
“공동체? 그거 하면 책임 늘어나고, 괜히 피곤해져요.”
많은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한다.
사실 틀리지 않다.
공동체란 늘 ‘다른 사람’이 포함된 구조이기 때문이다.
나 혼자 결정할 수 없고,
누군가와 상의해야 하고,
서로 의견이 달라 부딪히기도 하고,
가끔은 대신 감당해줘야 할 책임이 생긴다.
이쯤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그냥 나 혼자 사는 게 편해.”
하지만 편한 것과 좋은 것은 다르다.
편한 삶은 쉴 수 있지만,
좋은 삶은 오래 간다.
그 좋음의 시작이 바로
'공동체적인 태도'이다.
우리는 늘 '개인'으로서 살고 있다.
‘나’라는 정체성은 삶의 가장 기본 단위이다.
하지만 이 ‘나’가 지나치게 강화되면
‘우리’는 점점 낯설어지고
‘공공’은 불편한 단어가 되어버린다.
택배를 공유 현관 앞에 아무렇게나 두는 사람,
음식물 쓰레기를 그냥 비우는 사람,
엘리베이터 버튼을 발로 누르는 사람...
그들은 ‘나’의 이익과 편리만 생각한다.
그 순간, 공동체는 조금씩 해체된다.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자주 담배 냄새가 난다는 민원이 있었다.
입주민들은 관리자에게만 불만을 전했고,
관리자는 매번 순찰만 늘렸다.
어느 날, 한 입주민이 자발적으로 A4용지 하나를 붙였다.
“여기는 모두가 함께 쓰는 공간입니다.
아이들과 노약자도 탑니다.
작은 배려가 우리 아파트의 품격을 지켜줍니다.”
글에는 이름도 없고, 협박도 없었다.
단지 '우리'라는 단어가 있었다.
그 이후로 엘리베이터 안에서 담배 냄새는 거의 사라졌다.
무엇이 사람들을 바꿨을까?
바로, ‘누구나 이 공간의 주인이다’라는 인식.
전북 익산의 한 연립주택.
복도에 자주 쓰레기가 버려지곤 했다.
악취와 지저분한 환경에 주민들 불만이 쌓였다.
한 입주민이 말했다.
“복도에 화분을 놓으면 어떨까요?”
그는 말뿐 아니라 직접 화분을 들여놨다.
며칠 후, 옆집도 따라 화분을 놓았다.
또 다른 집은 작은 의자를 가져다 놨다.
그 복도는 ‘길’에서 ‘공간’으로 바뀌었다.
이 작은 정원이 생긴 후
그 구역에는 더 이상 쓰레기가 버려지지 않았다.
공동체는 '누가 하겠지'라는 생각이 멀어질수록 무너진다.
그 반대는 '내가 조금 더 해볼게요'라는 말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엘리베이터 안, 아파트 복도, 골목길, 마을 게시판.
이 모든 공간은
나와 무관한 곳이 아니라
내가 '함께 책임지는 장소'가 될 수 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옆집 사람의 얼굴조차 모른다고 한다.
같은 공간에 살지만
그 공간을 함께 ‘산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언제부턴가
‘인간관계는 피곤한 것’이라고 배웠고
‘공동체는 귀찮은 일’이라고 느끼게 됐다.
하지만,
고립의 끝에서 우리는 깨닫는다.
"함께 살아야 진짜 살 수 있다.”
전북 전주시의 한 다세대주택.
젊은 세대와 노년 세대가 섞여 사는 이 마을에는
특별한 ‘단톡방’이 있다.
이 단톡방의 이름은 ‘이웃 톡톡방’.
특정 커뮤니티가 만든 게 아니라
입주민이 직접 제안해서 만든 방이다.
방 안에서는 이런 글이 올라온다.
“오늘 오후 3시, 마을 앞 도로 공사 예정이에요.”
“101호 어르신이 며칠째 안 보이시네요. 혹시 아시는 분?”
“내일 비 온대요. 빨래 마당에 있는 분 꺼내주세요~”
이 단톡방 하나로
마을의 ‘사회적 연결망’이 만들어졌다.
서울 성동구의 한 주택가.
오래된 2층 주택이 한동안 비어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이를 ‘동네 도서관’으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처음엔 사람들 반응은 시큰둥했다.
“누가 관리해?”
“애들이 훼손하면 어쩌려고?”
하지만 뜻을 모은 주민 3명이
책장 몇 개를 놓고, 책을 기부 받기 시작했다.
처음엔 20권.
일주일 뒤 50권.
한 달 후엔 300권이 넘는 책이 채워졌다.
지금은 주말마다
아이들이 책 읽는 모습,
어른들이 커피 마시는 모습,
서로 이름을 부르며 인사하는 모습이
이 도서관에서 펼쳐지고 있다.
공간은 바뀌었고,
그 공간 안에서
‘관계’가 만들어졌다.
관계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같은 아파트에 살아도,
같은 회사를 다녀도,
같은 마을에 살아도,
‘인사’ 하나 없이 지나치면
그건 공동체가 아니다.
관계를 만든다는 건
작은 실천을 꾸준히 이어가는 일이다.
먼저 인사하기
안부 한 줄 남기기
공지사항을 공유하기
감사 인사를 표현하기
이 모든 행동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작은 정치다.
어떤 마을은 문제를 외면하고
어떤 마을은 문제를 함께 바라보고
어떤 마을은 함께 해결하려 한다.
그 차이는 사람의 수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다.
함께 인사하는 마을,
서로 안부를 묻는 마을,
낯선 이에게도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마을은
자연스레 더 안전해지고, 더 행복해진다.
관계는 공동체를 작동하게 만드는 엔진이다.
우리는 이제
모든 것을 시스템에 맡기며 살고 있다.
행정 민원은 ‘콜센터’에.
이웃 문제는 ‘관리실’에.
불편 사항은 ‘앱’에.
시스템은 편리하지만, 관계는 메마른다.
아파트에 불이 나면
“119에 신고했냐?”고 먼저 묻지
“옆집은 괜찮으세요?”라고 묻지 않는다.
편리함 뒤에 남겨진 건
책임 없는 거리감이다.
경기도 고양의 한 아파트.
90대 어르신 한 분이
복도에서 갑자기 쓰러졌다.
관리실? 당연히 멀었다.
구급차? 오는 데 15분.
그때, 우연히 복도 청소 중이던 입주민이
쓰러진 어르신을 발견하고
근처 단톡방에 글을 올린다.
“혹시 2층 어르신 연락처 아시는 분 계신가요?”
바로 위층의 주민이 뛰어나와
담요를 덮어드리고,
옆집 주민이 따뜻한 물을 가져온다.
그리고 관리실 대신 직접 119에 신고했다.
어르신은 큰 부상 없이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날의 구조자는, 제도도 아니고 공무원도 아니었다.
그저 ‘사람’이었다.
서울 동작구.
동네 엄마들 몇 명이
아이들의 귀갓길이 걱정되어
직접 ‘안심 귀갓길 지도’를 만들었다.
“여기가 가로등이 어두워요.”
“여기엔 술집이 많아 늦은 밤엔 위험해요.”
“여기엔 CCTV가 설치되어 있어요.”
이 정보들을 모아
PDF로 정리한 뒤,
학교와 주민센터,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배포했다.
한 달 뒤,
구청은 그 지도를 참고해
가로등 보강 공사를 시작했다.
시민이 만든 지도, 행정을 움직이다.
그게 바로 시민 중심 공동체의 증거다.
시민 중심 공동체는
행정이 아니라,
관계에서 시작된다.
서류가 아니라, 말 한 마디.
서명보다도 먼저, ‘관심’이 있어야 한다.
옆집 아이가 위험에 빠졌을 때
공원에서 이상한 사람이 서성일 때
아파트 게시판에 불편함이 적혔을 때
가장 먼저 움직이는 건
시스템이 아니라 ‘시민’이다.
공동체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매일의 작은 실천이 쌓이고,
그 실천이 기억되고,
기억이 신뢰가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는 공동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시민 중심 공동체의 출발은
시민 각자의 작은 책임이다.
소란을 피우는 사람에게 말 한마디 건네는 용기
마을 행사에 한 시간 발을 들이는 시간
동네 단톡방에 올라온 글에 한 줄 남기는 정성
이 모든 것들이
공동체의 살을 붙이고
뼈를 만들고
온기를 준다.
많은 사람이 말한다.
“우리 동네엔 공동체가 없어.”
“요즘은 이웃과 아무 인사도 안 해.”
“동네 사람들끼리 모이기가 힘들어.”
그러나 우리는 다시 질문해봐야 한다.
“내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한 게 있는가?”
공동체는
누가 대신 만들어주는 구조물이 아니다.
‘참여하는 시민’이 있을 때만
비로소 태어나는 생명체다.
서울 은평구의 한 주민.
그는 자신이 보유한 공구를
공동 현관 옆에 두고 이렇게 적었다.
“전동드릴, 몽키스패너, 필요하신 분 누구든 사용하세요.
단, 사용 후 제자리에 부탁드립니다.”
그는 3년째 그 공구함을 운영 중이다.
누구도 훼손하거나 가져간 적 없다.
오히려 이런 쪽지가 붙는다.
“감사합니다. 못 박는데 잘 썼어요.”
“전동드릴 쓰고 돌려놓았습니다. 다음에 커피 한 잔 대접하고 싶어요.”
공구 하나가 공동체의 문을 연 것이다.
부산의 한 아파트.
주민 중 한 명이 자투리 공간에 작은 텃밭을 만들었다.
그는 싱크대에서 나오는 남은 물을 모아
하루에 한 번 텃밭에 물을 줬다.
그리고 아이들이 지나갈 때면
“이건 고추고, 이건 방울토마토야.”
라고 설명해준다.
몇 달 후,
그 옆에 다른 주민이 또 다른 화분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웃들은 서로 농작물 얘기를 나누며
‘텃밭 모임’을 만들었다.
그들은 그해 가을,
함께 수확한 채소로 작은 파티를 열었다.
한 평의 흙이, 공동체의 대화가 되다.
혼자서도, 작게도, 조용하게도
공동체는 만들어집니다.
그 시작을 위한 6가지 실천을 소개한다.
동네 게시판, 커뮤니티 앱, 전단지를
‘정보’가 아닌 ‘연결의 매개’로 바라보라.
→ 질문: “이걸 같이 할 사람은 없을까?”로 관점을 바꿔라.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이웃에게
“요즘 잘 지내세요?”라는 말 한마디가
이웃을 ‘사람’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집에 남는 물건, 음식, 물품을
‘나눔함’에 한 번 올려보라.
나눔이야말로 가장 쉬운 공동체의 시작이다.
동네 문제를 느꼈다면
단톡방, 블로그, 구청 민원 등을 활용해
소리 내는 연습을 해보라.
혼자의 불편이
‘모두의 해결’을 끌어낼 수 있다.
이미 있는 동네 모임, 자원봉사, 청년 커뮤니티 등에
가벼운 마음으로 참석해보라.
‘주도자’가 아니어도 ‘연결자’가 될 수 있다.
공동체는 서로를 신뢰할 때 자란다.
‘이웃은 날 불편하게 할 사람’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사람’이라는 전제를 가져라.
오늘의 블로그를 마무리하며, 독자 스스로에게 던져볼 질문은 다음과 같다.
� “내가 지금 속한 공동체는 어떤 모습인가?”
� “이웃, 동료, 친구와 함께 무엇을 시작해볼 수 있을까?”
� “작은 실천 하나가, 어떤 공동체의 시작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들은 당신이 살아가는 공간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혼자가 아닌 삶’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몸으로 깨닫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공동체는 어디서 오는가?
제도에서? 예산에서? 행정에서?
아니다.
공동체는 ‘살아가는 방식’에서 나온다.
혼자보다는 함께를 선택하는 사람
무관심보다는 관심을 선택하는 사람
비난보다는 제안을 선택하는 사람
그런 시민이 모일 때,
그곳이 바로 공동체다.
우리는 이미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제,
그 가능성을 실천으로 바꿀 차례다.
『성공하는 시민들의 3가지 습관』
� 28화: 정책을 넘어서 대안을 상상하는 시민들
에서는 “비판을 넘어, 대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정책의 소비자가 아닌 상상하는 시민의 모습에 주목합니다.
생활 속 불편에서 출발한 상상,
그 상상이 실제 제도가 되는 과정을
다음 회차에서 함께 따라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