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힘, 진리인가 설득인가

[진리 탐구 01] 소피스트 vs 소크라테스

고대 광장에서 오늘날 SNS 광장까지



저녁 무렵의 아테네 아고라(Agora, 광장)는 늘 사람들로 가득했다. 상인들은 오늘 장사를 마치고 남은 빵과 포도주를 진열해두었고, 젊은 청년들은 시시때때로 벌어지는 토론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정치가, 장군, 상인, 시인, 학생이 모두 모여들던 그곳은 단순한 장터가 아니라, 말의 힘이 권력이 되고 지혜가 화폐가 되는 살아있는 정치 무대였다.


이날 토론의 주제는 “정의란 무엇인가”였다. 한쪽에서는 소피스트가 유려한 언변으로 군중을 사로잡는다. 그는 수사학적 기교를 부려 상대방의 말을 꼬투리 잡고, 재치 있는 농담과 극적인 비유로 청중을 압도한다. 그의 말은 때로는 화려한 불꽃놀이 같아서, 사람들은 넋을 잃고 그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 주장이 참으로 옳은 것인지, 아니면 단지 매혹적인 말의 껍데기에 불과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반대편에는 소크라테스가 서 있다. 그는 소피스트처럼 청중의 환호를 받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는 특유의 끈질긴 질문으로 상대방을 몰아붙인다. “네가 말하는 정의란, 모든 경우에 성립할 수 있는 보편적 진리인가? 아니면 단지 네가 처한 상황에서 그럴 듯하게 들리는 말일 뿐인가?” 소크라테스는 상대를 곤란하게 만들고, 때로는 청중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그의 목적은 승리도, 명성도 아니다. 오직 진리를 밝히려는 의지뿐이다.


이 장면은 단순한 고대의 한 풍경이 아니다. 오늘날의 우리 사회 역시 또 다른 ‘광장’을 가지고 있다. 이름하여 SNS 광장이다. 트위터(X), 인스타그램, 유튜브, 틱톡 같은 온라인 공간은 현대판 아고라다. 여기에서도 수많은 목소리가 쏟아져 나온다. 어떤 이는 화려한 영상 편집과 자극적인 언어로 대중을 설득하고, 또 다른 이는 느리지만 집요하게 근거와 질문을 던진다.


특히 한국 사회의 최근 몇 년은 이 두 목소리의 충돌을 여실히 보여준다. 팬데믹 시기, 유튜브와 카카오톡을 통해 퍼진 가짜뉴스는 소피스트의 화려한 언변을 떠올리게 했다. “백신은 위험하다”는 단편적인 문장, “정부는 진실을 숨기고 있다”는 자극적인 구호는 근거보다 감정을 자극했다. 그러나 이 언어는 수많은 사람들의 불안을 부추기며 사회를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반대로, 일부 학자와 언론인들은 차분히 데이터를 분석하고 근거를 제시하며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그들의 태도는 마치 현대판 소크라테스처럼 “우리는 무엇을 모르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오늘의 한국 청년 세대는 바로 이 ‘언어의 격투장’에서 살아간다. 취업을 준비하면서도, 사회 문제를 토론하면서도, 심지어 일상적인 관계 속에서도 끊임없이 말과 정보의 홍수에 노출된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소피스트적 언어, 즉 감정과 자극을 극대화한 메시지를 앞세운다. 반면,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고 대화를 이어가려는 목소리는 묻히기 쉽다. 이들은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처럼 “진리를 향한 더딘 길”을 택해야 할까, 아니면 소피스트처럼 “즉각적인 설득의 길”을 택해야 할까?


이 물음은 고대와 현대를 가로지르는 오래된 질문이다. 국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지도자는 사람들의 환호를 얻는 능변가여야 하는가, 아니면 불편하더라도 진리를 향해 묻는 철학자여야 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인가?


이제,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의 대립을 다시 불러내 보자. 그것은 단순히 고대 철학사의 한 페이지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한국의 청년 세대가 매일 부딪히는 언어와 진리, 설득과 질문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소피스트 – 설득의 기술, 말의 힘



1) 아테네의 새로운 전문가 집단



기원전 5세기, 아테네는 전례 없는 변화의 한가운데 있었다. 페르시아 전쟁에서의 승리 이후, 민주정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았고, 시민들은 더 이상 왕이나 귀족의 명령에만 따르지 않았다. 이제 법정과 민회, 그리고 광장에서 스스로의 권리를 주장하고 설득해야 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소피스트(Sophistes)였다.


그들은 지중해 전역을 떠돌며 아테네에 모여든 젊은이들에게 “성공의 기술”을 가르쳤다. 단순히 글을 읽고 쓰는 교육이 아니라, 재판장에서 배심원들을 설득하는 방법, 민회에서 대중을 움직이는 연설법, 논쟁에서 상대를 꺾는 말솜씨였다. 한마디로, 소피스트들은 말로 살아남는 기술자였다.


고리타분한 철학적 사유보다는 당장 눈앞의 실질적 이익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그들은 당대 청년들에게 절대적인 인기를 끌었다. 부모들은 비싼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자녀를 소피스트의 제자로 보냈다. 오늘날로 치면, 이름난 스타 강사의 스피치 학원이나 정치 컨설턴트의 조언을 받는 것과 비슷하다.






2) 상대적 진리와 설득의 기술



소피스트들의 핵심 사상은 “진리는 상대적이다”라는 입장이었다.
프로타고라스(Protagoras)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


이는 절대적인 진리란 존재하지 않고, 상황과 관점에 따라 진리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였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진리’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더 많은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느냐였다.


그 결과, 소피스트들은 화려한 수사학을 발전시켰다. 예리한 질문으로 상대의 논리를 꼬아버리고, 감정적 공감을 이끌어내며, 때로는 웃음과 조롱으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청중은 진리보다 재미와 감동에 더 쉽게 휘둘렸다. 소피스트들은 그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 모습은 오늘날의 SNS 정치 담론을 연상시킨다. 짧고 자극적인 말, ‘밈(meme)’으로 가공된 이미지, 통계보다 감정에 호소하는 한 문장이 대중을 움직인다. “팩트 체크”보다는 “임팩트 있는 메시지”가 더 강력하게 작동하는 것이다.






3) 소피스트적 언어의 힘과 그림자



소피스트들의 영향력은 막대했다. 법정에서 승소를 원한 귀족들은 소피스트의 제자가 되었고, 정치적 입지를 다지고자 한 젊은이들도 그들의 언변을 배우려 했다. 아테네의 공적 담론은 그들 덕분에 풍성해졌지만, 동시에 위험도 커졌다.


첫째, 진리보다 승리가 중요해졌다.
정말 옳은 주장이 아니라, 더 설득력 있는 주장이 힘을 가졌다. 이는 공공의 선보다는 개인의 이익이 앞서는 상황을 낳았다.


둘째, 감정 조작의 기술이 발달했다.
군중의 분노를 자극하고, 두려움을 키우며, 웃음을 무기로 상대를 무너뜨리는 방식은 사회적 갈등을 키웠다.


셋째, 정치의 연극화가 심화되었다.
실질적인 문제 해결보다는 청중 앞에서 멋지게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오늘날 한국 정치와 사회의 언어 풍경 역시 이와 닮아 있다. 국회 속 여야 공방은 종종 정책의 내용보다 한 줄 발언이나 자극적인 장면으로 뉴스를 장식한다. SNS에서는 “한 방 먹였다”는 짧은 영상 클립이 수십만 회 공유되며 정치 담론을 대신한다. 진리보다는 이미지와 언어의 기교가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4) 사례: 한국 정치 속 소피스트적 언어



대통령 선거 TV 토론회
후보자들이 제시하는 정책의 세부 내용보다 “상대 후보를 곤란하게 만든 한 마디”가 다음 날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이는 소크라테스적 대화보다는 소피스트적 수사학의 힘을 보여준다.


SNS 정치 담론
트위터(X)에서는 긴 논증 글보다 280자의 짧고 강렬한 문장이 여론을 주도한다. “내 편”과 “네 편”을 나누는 단정적 언어가 확산되면서, 대화의 가능성은 점점 줄어든다.


청년 세대의 일상적 언어 경험
대학생 토론 수업에서도 종종 내용보다 말의 유려함이 점수를 좌우한다. 취업 면접에서는 ‘진정성’보다 ‘설득력 있는 포장’이 더 높게 평가되기도 한다. 청년들은 일상적으로 소피스트적 언어의 압력 속에서 살아간다.






5) 청년 세대에게 남겨진 질문



소피스트들의 언어는 강력했지만, 그만큼 위험했다. 오늘날 한국 청년 세대 역시 소피스트적 언어의 유혹과 소크라테스적 질문의 끈질김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


“나는 내 말이 사람들을 설득하기만 하면 충분한가?”

“아니면, 그 말이 진리에 가까운가를 따져야 하는가?”

“AI와 SNS 시대, 우리는 소피스트가 될 것인가, 소크라테스가 될 것인가?”


이 질문은 단순히 고대 아테네의 논쟁이 아니다. 바로 지금, SNS 타임라인을 스크롤하는 청년들의 삶 속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소크라테스 – 진리를 향한 대화와 비판적 질문




1) 광장에서의 다른 목소리



아테네의 광장은 언제나 소란스러웠다. 소피스트들의 수사학은 청년들을 사로잡았고, 군중을 열광케 했다. 그러나 그 틈바구니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을 붙잡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화려한 언변 대신, 끊임없는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정의란 무엇인가?”
“용기란 무엇이지?”
“네가 말한 선(善)은 정말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을까?”


그가 바로 소크라테스였다. 그는 강의실이나 연단이 아니라, 시장과 길거리에서 만난 이들에게 말을 걸었다. 목적은 단순했다. 사람들이 스스로 진리를 발견하도록 돕는 것.






2) 산파술(産婆術)의 철학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은 종종 ‘산파술(maieutic method)’이라 불린다. 산파가 아기를 직접 낳는 것이 아니라, 산모가 아기를 낳을 수 있도록 돕듯, 그는 상대방이 스스로 ‘지식’을 낳을 수 있도록 질문을 던졌다.


이 과정에서 그는 결코 대답을 강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의 말을 집요하게 되묻고, 모순을 드러내고, 더 깊은 생각을 끌어냈다. 소피스트가 ‘설득’을 목표로 했다면, 소크라테스는 ‘깨달음’을 목표로 했다.


대표적인 예가 『소크라테스의 변명』에 기록된 그의 태도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라는 선언은 단순한 겸손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혜의 출발점이었다. 모른다는 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진리를 향한 대화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3) 진리와 공동체



소크라테스에게 중요한 것은 진리가 공동체를 위한 것이라는 점이었다.
소피스트가 개인의 이익을 위한 수사학을 가르쳤다면, 소크라테스는 정의, 선, 용기, 행복 같은 보편적 가치가 무엇인지 탐구했다. 그는 시민 개개인이 올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해야만 민주정이 제대로 작동한다고 믿었다.


이 때문에 그는 종종 아테네의 권력자들과 갈등을 빚었다. 그들의 위선을 집요하게 파헤치고, 대중의 무지를 비판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그 죽음조차 그의 신념을 증명했다. 진리는 권력에 의해 침묵당할 수 없다는 것을.






4) 오늘날 청년 세대와 소크라테스적 질문



현대 한국의 청년 세대는 유례없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간다. AI가 제공하는 요약본, SNS에서 빠르게 소비되는 밈, 그리고 짧은 뉴스 클립이 생각을 대신한다. 하지만 이런 정보 과잉은 역설적으로 정체성의 위기를 낳는다.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나는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사회가 요구하는 성공과 나의 행복은 같은 것인가?”

이 질문들은 소크라테스가 광장에서 던졌던 질문들과 다르지 않다. 청년 세대는 화려한 답변보다, 오히려 질문을 끊임없이 유지하는 힘을 필요로 한다.


실제로 대학 교정이나 청년 커뮤니티에서, ‘진로를 왜 이 방향으로 정했는가’라는 질문에 많은 학생들이 “그냥 다들 그렇게 하니까”라고 답한다. 소크라테스적 대화는 바로 그 순간, 무심히 흘려보낸 당연함을 흔들어놓는다.






5) 사례: 토론 문화와 청년의 성장



한국 사회의 토론 문화는 종종 ‘이기기 위한 언쟁’으로 기울어져 있다. 대학 토론대회나 면접 준비 과정에서, 내용보다 표현력이 평가받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적 대화는 정반대다. 목적은 승리가 아니라 탐구다.


예컨대, 한 대학 수업에서 AI 윤리에 대한 토론이 열렸다고 해보자.


소피스트적 토론: “AI는 반드시 규제해야 한다” vs “규제는 혁신을 죽인다” → 누가 더 설득력 있게 말하는가에 초점.

소크라테스적 대화: “AI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지?” “인간의 자유와 AI의 결정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지?” → 진리를 향한 질문으로 확장.


청년 세대가 이런 방식의 대화를 경험할 때,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니라 철학적 성찰과 자기 이해 가능해진다.






6) SNS 시대, 질문을 지켜내기



오늘날 SNS는 빠른 답변을 요구한다. 댓글, 해시태그, ‘좋아요’는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지만, 질문을 오래 붙잡는 힘은 약화시킨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적 태도는 정반대다. 질문을 길게 붙잡고, 쉽게 답하지 않으며, 불편한 대화를 견디는 것.


청년 세대가 AI와 함께 살아가야 할 시대에, 이 태도는 더욱 절실하다. AI는 언제나 ‘답’을 제시하지만, 그 답을 어떻게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내 삶의 맥락 속에서 의미를 찾을 것인지는 인간의 몫이다.






7) 청년 세대에게 남겨진 과제



소크라테스의 삶은 하나의 도전이다.

- 편리한 답을 따라갈 것인가, 불편한 질문을 견딜 것인가?- 대중의 환호를 선택할 것인가, 진리를 향한 고독한 길을 갈 것인가?


오늘날 한국 청년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질문을 자기 삶 속에서 다시 붙잡는 용기다. 취업, 연애, 사회적 성공이라는 현실의 압박 속에서도,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지워버리지 않는 것.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진정한 자유는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소피스트 vs 소크라테스의 대립과 오늘날의 보완




1) 대립의 뿌리 – 설득과 진리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의 차이는 단순히 ‘수사학 vs 철학’의 구도가 아니다. 그 뿌리에는 인간이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라는 깊은 물음이 있다.

소피스트는 “설득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다수의 동의와 권력의 확보가 곧 성공의 기준이다.

반면 소크라테스는 “설득은 진리를 향한 과정이어야 한다”고 본다. 아무리 다수가 찬성해도 그것이 거짓이라면 진정한 가치가 될 수 없다.


이 대립은 단순히 학문적 논쟁이 아니라, 민주정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가를 가르는 기준이었다.






2) 소피스트의 장점 – 언어의 힘을 일깨우다



그러나 소피스트를 무조건 비난할 수는 없다. 그들은 언어와 논증의 힘을 시민들에게 자각시켰다.
당시 아테네의 법정과 민회에서 설득의 기술은 생존과 직결됐다. 억울함을 호소하려면, 정책을 주장하려면, 말을 잘해야 했다. 소피스트는 이러한 현실 속에서 시민들에게 필요한 능력을 제공했다.


오늘날로 치면, 프레젠테이션 스킬·SNS 콘텐츠 전략·정치 캠페인 기획과 같은 실용적 능력을 가르친 셈이다. 청년 세대에게도 이런 역량은 필수적이다.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전달하지 못하면 의미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3) 소크라테스의 장점 – 질문을 통한 자기 성찰



반면 소크라테스는 내적 성찰을 무엇보다 중시했다. 그는 “설득의 기술이 진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누군가를 설득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이 진리와 마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설득은 단순한 기술적 승부로 전락한다.


소크라테스적 태도는 깊이 생각하는 힘, 자기 삶을 돌아보는 힘을 길러준다. 이는 청년 세대가 자신의 진로와 가치관을 세울 때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4) 현대 사회에서의 충돌 – 실용과 성찰 사이



오늘날 우리는 소피스트적 능력과 소크라테스적 태도가 끊임없이 충돌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정치 현장에서는 ‘누가 더 진실한가’보다 ‘누가 더 설득력 있게 보이는가’가 승부를 가른다.

기업 채용 과정에서는 ‘어떤 역량을 가졌는가’보다 ‘어떻게 자신을 표현하는가’가 당락을 좌우하기도 한다.

청년 세대는 SNS에서 자신을 브랜딩하는 법을 배워야 하지만, 동시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이 긴장 속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현대인의 과제다.






5) 두 길의 보완 – 설득 위의 진리, 진리를 위한 설득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의 길은 사실 상호 보완적이다.

소크라테스적 성찰이 없는 소피스트의 언어는 공허하다.

소피스트적 표현이 없는 소크라테스의 성찰은 고립된다.


현대 사회에서는 진리를 위한 설득, 설득을 통한 진리의 확산이 필요하다.
예컨대,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하려면 과학적 진리를 발견하는 성찰적 태도(소크라테스)와, 그것을 사회적 행동으로 이끌어내는 설득의 기술(소피스트)이 함께 필요하다.






6) 사례 – 청년 세대의 토론 현장



최근 한 대학에서 진행된 ‘AI 윤리 토론 수업’을 떠올려 보자.

일부 학생들은 ChatGPT가 제시한 정보를 그대로 가져와 화려하게 발표했다. (소피스트적 방식)

다른 학생들은 “AI가 인간의 도덕적 판단을 대신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붙잡고, 답을 쉽게 내리지 못한 채 고민을 이어갔다. (소크라테스적 방식)


교수는 두 방식을 결합시켰다. 질문을 던지는 태도와 설득력 있는 전달 방식을 동시에 훈련하게 한 것이다. 그 결과 학생들은 단순히 ‘말 잘하는 기술자’도, ‘끝없는 질문가’도 아닌, 사유와 표현을 연결하는 주체로 성장했다.






7) 오늘날의 보완적 과제



청년 세대에게 남겨진 과제는 명확하다.


1. 소피스트처럼 표현하되, 소크라테스처럼 질문하라.2. 설득하려 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 설득당하지 말라.

3. 진리를 향한 내적 성찰과 사회적 설득의 기술을 동시에 갖춘 균형 잡힌 시민이 되라.


오늘날의 민주사회는 단순히 ‘설득력 있는 말쟁이’도, ‘고독한 사상가’도 아닌, 대화와 실천을 잇는 시민적 철학자를 필요로 한다.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의 대립은, 우리에게 이 두 전통을 어떻게 이어갈지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실제 사례 분석




1) 정치 담론에서의 사례 – 선거 토론회



현대 민주주의의 무대에서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의 그림자는 여전히 뚜렷하다.
선거 토론회를 떠올려 보자.

어떤 후보는 철저히 ‘이미지 메이킹’과 ‘화려한 언어’로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는 숫자와 통계, 슬로건을 능숙하게 활용하며 “설득”의 기술을 극대화한다. (소피스트적 방식)

다른 후보는 “정치인의 덕목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집요하게 제기한다.
당장의 표를 얻기 위한 화려한 언사가 아니라, 근본적 가치와 원칙을 성찰하려 한다. (소크라테스적 방식)


이 두 접근은 대립처럼 보이지만, 실제 유권자가 원하는 것은 설득력 있는 말 속에서 진정성 있는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다. 설득만 있고 가치가 없으면 공허하고, 가치만 있고 설득이 없으면 전달되지 않는다.






2) 기업 현장에서의 사례 – 스타트업 피칭



스타트업 창업자가 투자자 앞에서 ‘피칭’을 할 때도 두 전통은 충돌한다.

일부 창업자는 시장 규모, 매출 전망, 성장 곡선을 강조하며 설득의 기술을 극대화한다. (소피스트적 접근)

다른 창업자는 “왜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전면에 내세운다. (소크라테스적 접근)


성공적인 피칭은 두 방식을 결합할 때 가능하다.
예컨대, 환경문제를 다루는 한 청년 창업팀은 “지구를 지키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라는 가치 선언과 동시에, 구체적 사업 모델과 수익성을 제시했다.

그 결과, 투자자들은 가치와 실리 모두를 설득당했다.






3) 청년 세대의 사례 – SNS 자기표현



오늘날 청년 세대가 가장 체감하는 무대는 SNS다.

인스타그램, 틱톡, 유튜브는 ‘짧고 강렬한 메시지’로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이 점에서 SNS는 소피스트적 공간이다.

그러나 많은 청년들이 단순한 ‘좋아요 수’ 이상의 질문을 던지고 싶어 한다. “나는 왜 이런 콘텐츠를 만드는가?” “내 삶의 진짜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성찰은 소크라테스적 태도다.


최근 한 대학생이 자신의 SNS에 AI 일자리 대체 문제를 다룬 영상을 올렸다. 그는 단순히 ‘두려움을 자극하는 자극적 콘텐츠’를 만드는 대신, “AI 시대에 인간의 존엄은 어디에 있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조회수는 높지 않았지만, 댓글에는 진지한 토론이 이어졌다. 이것이야말로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가 교차하는 현대적 장면이다.






4) 사회 운동 사례 – 기후위기 시위



기후위기를 둘러싼 청년 세대의 운동에서도 두 방식은 공존한다.

시위 현장에서 피켓과 구호는 ‘설득’의 기술이다. 언론의 카메라에 담길 때 강렬한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 (소피스트적 측면)

동시에, 활동가들은 질문을 던진다. “지속 가능한 삶은 무엇인가?” “경제 성장과 환경 보존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소크라테스적 측면)


한쪽만 존재한다면 운동은 지속력을 잃는다. 구호만 외치면 공허해지고, 질문만 던지면 행동력이 떨어진다. 결국 두 방식이 만나야 사회적 변화를 이끌 수 있다.






5) 청년 세대에게의 메시지



이 모든 사례는 청년 세대에게 동일한 교훈을 준다.

소피스트적 설득: 사회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필요하다.

소크라테스적 질문: 자신의 삶과 사회의 방향성을 잃지 않게 한다.


현대 사회는 이 두 힘을 동시에 요구한다.
SNS 브랜딩, 취업 면접, 정치 참여, 사회 운동… 어떤 장면에서도 우리는 ‘말하는 능력’과 ‘생각하는 깊이’를 결합해야 한다.








철학적 해설과 현대적 적용




1)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의 긴장 관계 – 기술 vs 진리



고대 아테네에서 소피스트들은 ‘수사학(rhetoric)’과 ‘설득의 기술’을 가르쳤다.
그들의 관점에서 진리는 상대적이었다. 상황과 맥락, 그리고 설득의 능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다.
반면 소크라테스는 ‘절대적 진리’를 추구했다. 그의 변론법은 “네가 아는 것은 진짜 아는 것이냐?”라는 끝없는 질문을 통해, 허위와 무지를 드러내고 진리에 다가가려는 시도였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이 두 철학적 태도의 긴장을 여전히 경험한다.


정치인, 기업가, 인플루언서는 ‘소피스트적 기술’을 통해 대중의 주목을 끌려 한다.

그러나 대중은 동시에 “그 메시지가 진실인가?”라는 소크라테스적 물음을 제기한다.


즉, 설득의 기술과 진리를 향한 탐구는 지금도 공존해야 할 양 날개다.






2) 현대 민주주의와 소크라테스적 정신



민주주의 사회는 말 그대로 의사소통과 토론을 기반으로 유지된다. 그러나 실제 정치는 종종 ‘말의 기술’에 치우치곤 한다.

선거 유세에서 공약은 화려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검증되지 않는 경우.

미디어 정치에서 자극적 발언이 사실 검증보다 더 큰 주목을 받는 경우.


여기서 소크라테스의 정신이 필요하다.
“정치인은 왜 그런 주장을 하는가?” “그 말이 사실에 부합하는가?”라는 비판적 질문은 시민 사회가 가져야 할 기본 태도다.


특히 한국 사회의 촛불집회(2016~2017)는 그 대표적 사례다. 시민들은 단순히 화려한 수사에 현혹되지 않고, 정의와 진실이라는 소크라테스적 기준으로 정치 권력을 심판했다.






3) 디지털 시대와 소피스트적 기술



동시에 우리는 소피스트의 가르침을 무시할 수도 없다.
오늘날 SNS, 유튜브, 디지털 플랫폼은 설득의 기술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는 공간이다.

아무리 가치 있는 주장이라도 전달 방식이 매력적이지 않으면 대중의 주목을 끌지 못한다.

반대로, 메시지가 비어 있어도 세련된 언어와 영상 기술을 동원하면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따라서 디지털 시대의 청년 세대는 소피스트적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되, 그 속에 반드시 소크라테스적 질문과 진정성을 담아야 한다.
즉, 기술은 그릇이고, 진리는 내용물이다. 그릇만 화려하면 금세 비워지고, 내용물만 있어도 전달되지 않는다.






4) 교육과 청년 세대의 적용



청년 세대가 직면한 또 다른 현실은 ‘정체성의 위기’다.


AI가 일자리를 대체하는 시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더욱 절박하다.

사회는 끊임없이 자기 브랜딩, 퍼스널 이미지, 소통 능력을 요구한다. 이는 소피스트적 능력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단지 외적 포장만 추구하면, 스스로 공허감에 빠질 수 있다. 여기서 소크라테스적 “내 삶의 진짜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대학 교육, 진로 교육, 시민 교육에서 우리는 두 전통을 동시에 가르쳐야 한다.


소피스트적 역량: 논리적 글쓰기, 스피치, 미디어 활용 능력.

소크라테스적 역량: 비판적 사고, 자기 성찰, 윤리적 판단.


이 둘을 통합할 때 청년 세대는 단순히 ‘잘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잘 말하면서도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






5) 종합적 메시지



결국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의 대립은, 오늘날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화두를 던진다.

소피스트의 교훈: 어떻게 말해야 사람들이 이해하고 움직이는가?

소크라테스의 교훈: 무엇을 말해야 올바른 삶과 사회를 이룰 수 있는가?


청년 세대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붙들 때, 그들의 목소리는 단순한 자기표현을 넘어 사회적 변화를 이끄는 힘으로 발전한다.







현대 청년 세대 토론 장면 삽입




1) 장면 설정



서울의 한 대학 강의실.
‘철학과 현대 사회’ 수업을 듣는 20여 명의 청년들이 원탁에 앉아 있다.
오늘의 주제는 “진리와 설득, 무엇이 더 중요한가?”


교수는 딱 한 마디만 던지고 자리를 비켰다.
“여러분이 직접 토론해보세요. 오늘의 철학자는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입니다.”






2) 첫 번째 발언 – 소피스트적 관점



민수(경영학과, 3학년):
“솔직히 요즘 세상에서 진리보다 중요한 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에요.
회사 면접장에 가서 ‘저는 진리를 추구합니다’라고 말해도, 면접관을 설득하지 못하면 떨어지는 거잖아요?
결국 중요한 건 ‘어떻게 말하느냐’지, ‘무엇을 말하느냐’는 부차적인 거라고 생각해요.”


그의 말에 몇몇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취업 준비생들은 현실감 있는 이야기라며 속으로 공감했다.






3) 반대 발언 – 소크라테스적 관점



지연(철학과, 2학년):
“하지만 그렇게만 보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요즘 가짜 뉴스, 허위 정보가 판치는 이유도 다 ‘설득 기술’이 뛰어나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을 현혹시킬 수 있는 말솜씨가 있다고 해서, 그게 옳은 건 아니잖아요.
결국 중요한 건 ‘그 말이 진짜인가, 옳은가’를 묻는 거죠.”


지연의 발언은 순간 분위기를 바꾸었다.
학생들 사이에서 “그럼 어느 쪽이 더 본질적일까?”라는 속내가 오갔다.






4) 현실 경험에서 나온 목소리



수진(사회학과, 4학년):
“저는 청년 정치 모임에서 활동했는데, 진짜 현실이 복잡하더라고요.
비전을 제시하면 사람들이 ‘좋다’고 하지만, 동시에 ‘이게 가능하겠냐’고 물어요.
결국 정치에서는 이상(진리)과 설득(기술)이 동시에 필요하더라고요.
그런데 우리는 종종 한쪽만 강조하다가 실패해요.”


민수와 지연이 서로 바라보며 잠시 침묵했다.
현실 경험이 두 입장을 동시에 인정하게 만든 것이다.






5) 제3자의 개입 – ‘균형’을 모색하다



태호(미디어학과, 3학년):
“생각해보면,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는 둘 다 필요한 것 같아요.
소피스트적 능력이 없으면 좋은 생각도 묻히고,
소크라테스적 질문이 없으면 설득만 남아 허망해져요.
AI 시대에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AI가 아무리 많은 데이터를 보여줘도, 그걸 어떻게 설명할지와 그게 옳은지를 함께 고민해야 하니까요.”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이제 대화는 단순한 대립이 아니라 ‘어떻게 두 전통을 결합할 것인가’라는 쪽으로 이동했다.






6) 토론의 전환 – 청년 세대의 질문



혜린(디자인학과, 1학년):
“근데 우리 세대의 진짜 문제는 정체성 같아요.
우리는 늘 스스로를 ‘브랜딩’하라고 배우잖아요. 인스타그램에 나를 멋지게 포장해야 하고, 면접장에서는 자신을 매력적으로 말해야 하고.
근데 그러다 보면 ‘나는 진짜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사라지는 것 같아요.
소크라테스라면 분명 이렇게 물었을 거예요.
‘너는 네 삶을 성찰해본 적 있니?’”


순간 강의실에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누구도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7) 정리 – 교수의 마무리 멘트



토론이 끝날 무렵, 교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학생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대화는 바로 고대 아테네에서 벌어졌던 장면과 똑같습니다.
한쪽은 ‘어떻게 말할 것인가’를 강조하고, 다른 쪽은 ‘무엇을 말할 것인가’를 묻죠.
현대 청년 세대는 이 두 가지 사이에서 늘 고민합니다.
AI와 디지털 미디어는 여러분에게 ‘소피스트적 능력’을 요구하지만, 동시에 삶의 의미를 찾으려면 ‘소크라테스적 질문’이 필요합니다.


결국 중요한 건 두 가지를 통합하는 삶의 방식을 찾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리를 탐구하면서도 설득의 기술을 익힌다면, 그 목소리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것입니다.”






✨ 정리 메시지



이 토론 장면은 단순한 대화가 아니라, 청년 세대가 겪는 정체성 위기와 사회적 요구 사이의 긴장을 드러내는 철학적 드라마다.

소피스트는 기술과 생존의 언어를 상징한다.

소크라테스는 성찰과 의미의 언어를 상징한다.

청년 세대는 이 두 언어를 동시에 배워야 한다.








철학적 해설 + 현대 청년 세대 적용 심화




1)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의 대립 구도 재정리




고대 아테네의 토론장은 단순한 말싸움의 공간이 아니었다.

- 소피스트들은 기술적 언어와 설득을 통해 권력과 명성을 얻으려 했다. 그들의 세계에서 ‘진리’는 상대적이었고, 중요한 것은 청중을 움직이는 능력이었다.

- 소크라테스는 반대로 끊임없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통해, 개인이 진리와 자기 성찰을 떠나는 것을 철저히 경계했다.


결국 이 둘의 대립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기술 vs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성찰”이라는 두 축으로 정리된다.






2) 현대 청년 세대의 상황: 기술과 성찰 사이의 긴장



오늘날 청년 세대는 이 고대의 논쟁을 새로운 방식으로 반복한다.

-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대학생들은 스펙을 쌓고, 면접 기술을 익히며, 자신을 ‘팔리는 상품’처럼 포장한다. 이는 소피스트적 생존 기술의 현대적 형태다.- SNS와 자기 브랜딩: 인스타그램, 틱톡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가꾸고 팔로워를 확보하는 과정은, 설득의 기술이 삶 그 자체가 되는 현장이다.

- 그러나 동시에, 많은 청년들이 “나는 누구인가,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정체성의 위기를 경험한다. 이는 소크라테스적 질문의 부활이다.



청년 세대의 삶은 두 언어(설득과 성찰)를 동시에 배워야 하는 이중 과제 놓여 있다.







3) 사례 분석 – 청년들의 고민 속에서 드러나는 두 길



1. 취업 준비생 A의 사례
A는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때 “기업이 원하는 답”을 맞추는 데 집중한다. 친구들의 합격 자기소개서를 벤치마킹하며, 화려한 표현으로 포장한다. 하지만 면접에서 진솔한 대화가 오갈 때는 오히려 당황한다. 이는 소피스트적 전략이 한계에 부딪히는 지점을 보여준다.


2. 창업 준비생 B의 사례

B는 스타트업을 준비하며, 투자자를 설득하기 위한 피칭을 연습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내가 왜 이 사업을 하는가, 이 일이 사회에 어떤 의미를 주는가”를 묻는다. 이 과정에서 그는 소크라테스적 성찰을 기반으로 한 설득의 힘을 경험한다. 단순한 기술이 아닌 ‘내적 진정성’이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것이다.


이 두 사례는 현대 청년 세대가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를 결합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점 잘 보여준다.






4) 철학적 해설 – ‘진리 없는 설득’과 ‘설득 없는 진리’의 위험



- 진리 없는 설득: 소피스트적 언어만 추구할 경우, 세상은 정보와 이미지로 가득 차지만 의미가 사라진다. SNS 속 화려한 자기 브랜딩이 공허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설득 없는 진리: 반대로 소크라테스적 성찰만 강조할 경우, 세상은 ‘내면의 진리’를 추구하지만 사회와 소통하지 못한다. 청년들이 “나만의 길”을 외치다가 고립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현대 청년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성찰을 기반으로 한 설득’이다. 즉, 진리와 의미를 찾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능력을 동시에 길러야 한다.







5) 현대적 적용 – 대학, 직장, 사회에서의 실천



1. 대학: 학생들은 비판적 사고를 통해 자신이 무엇을 믿는지, 왜 그것을 믿는지를 묻는 소크라테스적 훈련을 해야 한다. 동시에 프레젠테이션, 글쓰기, 토론 훈련을 통해 소피스트적 기술을 습득해야 한다.


2. 직장: 단순히 ‘성과’를 보여주는 보고서가 아니라, 그 성과가 가지는 의미를 설명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소피스트적 능력과 소크라테스적 성찰이 동시에 발휘되는 자리다.


3. 사회: 가짜 뉴스, 혐오 담론, 정치적 선동 속에서 청년 세대는 ‘비판적 질문’을 던지는 소크라테스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의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소피스트적 기술을 가져야만 사회적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다.






6) 정리 – 청년 세대에게 던지는 과제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는 대립이 아니라 ‘통합의 과제’로 읽혀야 한다.
현대 청년 세대는

- 설득 기술만 좇아 공허해지지 말고,

- 진리 탐구만 하다 고립되지도 말고,

- 성찰에서 출발해 설득으로 나아가는 삶의 균형을 배워야 한다.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소크라테스적 질문 위에,
“나는 어떻게 세상을 설득할 것인가?”라는 소피스트적 기술이 더해질 때,
청년 세대는 의미 있는 목소리로 사회를 바꿀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배워야 할 균형





고대 아테네의 광장에서 펼쳐졌던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의 논쟁은 단순한 철학사의 장면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거울이다. 우리는 여전히 설득의 기술과 진리의 성찰 사이에서 흔들리고, 그 균형을 찾지 못한 채 갈등한다.


소피스트적 능력은 분명 현대 사회에서 필수적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표현해야 하고,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며, 협상과 설득의 장면에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러나 만약 그 기술이 내면의 진리와 가치와 분리된다면, 결국 그것은 공허한 외침으로 사라지고 만다. 반대로 소크라테스적 성찰은 우리에게 깊이를 주지만, 그것만으로는 세상을 움직이기 어렵다. 생각만으로는 삶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배워야 할 과제는 “성찰 위의 설득”이다. 즉, 먼저 자신에게 묻고, 스스로의 진리를 확인한 뒤, 그것을 세상과 나누는 기술을 익히는 것이다. 이 과정은 단순히 개인의 생존을 넘어,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청년 세대가 직면한 위기—취업 시장의 압박, SNS에서의 이미지 경쟁, 불확실한 미래—모두 이 균형을 요구한다. 진리 없는 설득은 불안정한 자기 브랜딩을 양산하고, 설득 없는 성찰은 고립된 개인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두 길이 합쳐질 때, 한 사람의 목소리는 사회를 바꾸는 울림이 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나는 어떻게 말할 것인가?”라는 과제를 동시에 붙드는 일이다. 이 두 축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기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도 세상과 연결될 수 있다.


고대의 논쟁은 오늘의 교훈으로 다가온다. 소피스트의 언어는 기술이 아니라 도구일 뿐이고, 소크라테스의 성찰은 출발점이지 종착점이 아니다. 현대의 우리는 그 둘을 균형 있게 엮어내야 한다. 그 균형이야말로, 불확실성과 경쟁의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가장 절실한 철학적 유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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